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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91197205132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2-03-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이론 : 문명 전환과 그림의 새로운 시작
1장 문명 전환의 향방, 사물화 대 인격화
2장 그림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장 지각의 생태학과 미적 미메시스
4장 안정기의 예술과 이행기의 예술
5장 민중미술과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미학
2부 전시 : 다성적-민중적 리얼리즘의 감각과 서사
* 전제 :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 기획 과정의 난점과 의의
1장 민중의 다성적 리얼리즘 감각하기
1층 : 자연생태계 위기의 감각과 교감
최진욱, <괴물, 언어, 재난공동체의 기호들-삼부작 중 오른쪽>
김경주, <새들은 무등의 새벽을 깨우고>
유연복, <고래의 꿈>
이명복, <곶자왈(제주의 숲)>
박진화, <어느 날>
이종구, <감자밭-해남 농부들>
2층 : 인간생태계 위기 속 몸과 마음의 풍경
박영균, <오후4시의 완벽한 여름햇빛>
박은태, <철골-여보세요>
이윤엽, <밤에 출근하는 사람>
김태헌, <‘주차방해물’ 연작>
황세준, <무대>
김지원, <맨드라미>와 <인물화>
민정기, <구보의 이발2>와 <구보의 이발3>
이선일, <그 너머의 풍경II>
신학철, <젊은 날>
정정엽, <방탄할메>
3층 : 사회생태계 위기의 역사지리적 풍경
김영진, <승자독식>
주재환, <유전무죄 무전유죄>
김천일, <용광로>
김정헌, <산업화의 꿈>과 <산업화의 말로에 나는 소리>
이태호, <종을 6번 울려주세요-무명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한 비>
김재홍, <거인의 잠-장막>
임옥상, <4·3레퀴엠>
박흥순, <쇠똥구리>
박불똥, <돈월이비해피>
에필로그
심광현, <천년의 은행나무>, <느티나무 숲(화양)>, <폭우 속의 인왕산>, <방학동의 아침>
2장 <그림의 새로운 시작> 전시의 서사지도
나가며
미주
작가약력
참고문헌
책속에서
80년대 민중미술은 전시장 바깥의 가두시위나 민중적 삶의 현장과 결합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제도가 강제로 분리시킨 그림과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결합하기도 했다. 양자를 탁월한 유머와 해학으로 결합한 작가들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민중미술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해주는 디딤돌이 되었다. 주재환의 <몬드리안 호텔>(1980), 김정헌의 <냉장고에 뭐 시원한 거 없나>(1984)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 미술사적인 평가보다 오늘의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런 작업들이 오늘의 문명 전환의 분기점에서 환기시켜주는 ‘그림-이야기의 역사지리-인지생태학적 가치’다. 손으로 그리는 행위에 내재한 역동적인 감성적 활력과 현대미술의 권위와 시대의 모순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을 언어의 유희를 통해 자유롭게 연결하는 다중지능 네트워크의 역량이 그것이다. ‘그림(과 이야기의 결합)의 새로운 시작’이란 이런 작가들이 수십 년 동안 암묵적으로 실천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그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시동을 걸었던 ‘감성적 리얼리즘’과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민중적 리얼리즘’의 풍부한 역량들을 명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결합해 보자는 것이다. (…)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그리는 행위가 각자의 개체발생적인 다중지능 네트워크를 사회적인 계통발생적인 네트워크와 선순환시키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그런 그림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새롭게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들어가며 중에서)
에세이 「이야기꾼」(1936)에서 벤야민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이야기꾼이자 소설가였던 레스코프가 당시에는 사라진 이런 이야기의 전통과 현대 소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이야기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집약했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꾼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의 발판들을 마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이 자유자재로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아래로는 지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이르고 위로는 구름에까지 닿아있는 이 사다리는 집단적 경험의 이미지다. 이 집단적 경험에는 개인적 경험의 가장 깊은 충격인 죽음조차도 아무런 충격이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벤야민1, 447쪽)
이런 이야기꾼은 미술이나 문학, 영화와 연극 같은 장르적 틀에 구애 받지 않고, 개인의 내면이나 사회제도나 지구생태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자연과학적인 지식의 권위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알기 쉽고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폭력과 고난 앞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다성적이고 민중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오늘날 이런 성격의 이야기가 리얼리즘적인 그림과 새롭게 결합한다면 1차의식과 고차의식의 순환을 활성화하여 개체발생의 다중지능 네트워크와 계통발생의 다중지능 네트워크가 연결-선순환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그림-이야기를 실천해온 전문 작가들과 화려한 영상콘텐츠와 각종 게임에 친숙한 오늘의 관객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이 비대칭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일종의 ‘이야기꾼-작가’라 할 필자의 아내 유진화의 ‘그림-이야기’를 매개로 이 간극을 좁혀보고자 한다.
화가 주재환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생태주의 운동의 오랜 슬로건을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는 더 큰 화두로 확장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기도 힘든데 우주적으로 사고하자니!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쁜 일상의 차원에서 보면 너무 거창한 요구다. 하지만 ‘인터넷, 우주, 친환경 에너지’를 창업 이념으로 내세우며 ‘스페이스 X’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얘기가 아니다. 물론 전자와 후자의 사고와 행동의 방향과 성격은 상반된 것이다. 하지만 공간적 범주의 확장은 비슷해 보인다. 이 범주적 유사성은 이제 인류 문명이 중대한 분기점에 이르렀음을 함축하고 있다. ‘우주적으로 사고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일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