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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496400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1-06-21
책 소개
목차
차례
9 들어가며
1
16 조니 미첼의 여행기
20 수프얀 스티븐스의 아름다운 기억
25 빛바랜 보석함의 반짝임을 닮은 음악
29 1977년 베를린에서 보위는 자신의 영웅들과 함께 있었다
<“Heroes”> David Bowie
34 킹 크룰의 성가신 것들
39 걸작 이후의 걸작
Radiohead
45 요한 요한슨의 오르페우스 이야기
51 모범적인 밴드, 유투
54 카마시 워싱턴의 두 가지 세계
57 과잉된 사회
<22, a Million> Bon Iver
2
62 산후우울증 영화 툴리는 나의 산후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다
66 크리스틴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70 도시의 드라이한 속성
74 켄드릭 라마의 욕은 욕이 아니라 랩이다
78 존 콜트레인의 마스터피스는 숭고하다
John Coltrane
81 역사적인 재즈 공연이 남긴 것
84 언니라 부를게요, 니나 시몬 언니
&
88 구도자의 음악
93 보사노바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97 너바나의 거대한 매력
3
102
라디오헤드라는 삶
106 인터넷을 통해 모인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
109 런던의 컨템포러리 재즈
113 막스 리히터의 잠을 통과하는 앨범
117 샤데이의 다이아몬드 음악
121 쿠루리의 음악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중 물고기들에 속할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 Soundtrack> Quruli
125 재능 있는 여성 뮤지션들의 트리오
128 XL 레코딩스와 길 스캇 헤론
131 마이샤는 그곳에 한 공간을 만들었다
4
136
수프얀 스티븐스? 수프얀 스티븐스!
140 스캣 여왕의 교과서 같은 앨범
143 보사노바 이전의 스탄 게츠
146 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150 비틀즈는 끝났지만 폴 매카트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153 두 사람의 빛과 그림자
157 토속성은 재즈의 미래 양식?
160 올더스 하딩의 창의적인 음악 세계
164 맨발과 회색
169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Kid A> Radiohead
라디오헤드라는 삶
<Kid A>의 커버는 조금 괴기스러워 보인다. 라디오헤드 앨범의 아트워크를 주로 담당해 온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와 보컬 톰 요크는 한 웹 사이트에서 본 녹아가는 빙원에 관한 통계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 코소보 전쟁 당시 찍힌 사진도 영감이 되었다. 라디오헤드가 환경에 대해 염려하는 태도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본격적으로 내비친 것은 이때부터였다.
돌이켜보면 <Kid A>가 발표된 2000년 무렵에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그들의 히트곡 Creep이나 2집에 들어 있는 다소 우울한 곡들을 즐겨 듣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라디오헤드는 계속해서 실험적이거나 대중적이지 않은 앨범들을 내놓았다. 메이저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환멸감은 그들에게 실험적인 개척 정신을 계속해서 요구했던 것 같다.
작년 <A Moon Shaped Pool> 앨범에 관해 글을 쓰면서 라디오헤드의 지난 디스코그래피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 당시 내게 이 앨범은 조금 생경한 것이었지만, 전체 디스코그래피를 놓고 보았을 때 <Kid A>는 얼터너티브, 그리고 아트 록 밴드 라디오헤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앨범임을 알 수 있었다. <Kid A>에는 라디오헤드가 추구해 온 철학적 사색이 담긴 음악, 창의성과 진정성을 쫓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앨범은 전작 <Ok Computer>와는 음악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같은 시기에 녹음된 후속작 <Amnesiac>과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밴드는 <Ok Computer>의 성공 이후 일종의 번아웃(Burnout) 상태를 겪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톰 요크는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과 오테커(Autechre) 등의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움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밴드 악기 중심이던 세팅에서 프로툴즈나 큐베이스 등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든 음악으로 대체된 부분이 많다.
몽환적인 건반 음으로 시작되는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는 이 레코드의 첫 곡이다. 가사에서 반복되는 중얼거림이 분절되고 이 형태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비춰진다. 이 곡과 Kid A만 들어보아도 <Ok Computer>와의 차이점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기계적이고 드라이한 분위기를 드리우기보단 깊은 사색에서 배어 나오는 인간적 속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느낌이다. 정교함에 대한 미학적 추구가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고에도 깊이 배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How to Disappear Completely는 고뇌에 찬 화자가 자기 존재를 지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곡들에 비해 어쿠스틱하게 전개되는데, 여기에 사용된 악기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가 진폭이 큰 사운드를 들려주면서 잔향 가득한 앰비언트 무드를 조성한다. 가사가 없는 곡 Treefingers와 Idioteque를 거쳐 <Kid A> 속 라디오헤드의 윤곽을 더욱 선명히 그려내는 Morning Bell에 이른다. 이 곡은 파트너와, 혹은 자기 자신과의 불화를 담고 있는데 가구, 자동차, 아이 등의 소재들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불러들이는 한편, 나를 해방시켜(release me), 돌아다녀(run around), 걸어 가(walking) 등의 반복 구절들은 현실이 부과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라디오헤드는 <Kid A> 이후에도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며 예측을 벗어났고, 규정되거나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예술관을 구축해나갔다. 그 결과 마스터피스라 여겨지는 앨범들을 여러 번 내놓기도 했고, 또 가장 최근 앨범인 <A Moon Shaped Pool>에서는 삶의 절망적인 부분들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며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길을 마련했다. 아픈 이에게 누군가, 가장 정확한 진단과 그에 합당한 치료를 해줄 수 있다면 원인을 찾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진정한 치유의 길로 도약할 수 있는지 모른다. 라디오헤드를 치유하는 사람은 라디오헤드 자신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하는 삶. 라디오헤드,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