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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7641497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2-09-16
책 소개
목차
추천하는 말
들어가는 말
1. 농부의 딸, 바지를 입고 배에 오르다
잔 바레Jeanne Barret (1740-1807, 프랑스) 여성 최초로 세계 일주(1767)
2.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여자
멜리타 벤츠Melitta Bentz (1873-1950, 독일) 최초의 종이 필터 발명(1908)
3. 백작부인과 알고리듬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 백작부인’Ada Byron (1815-1852, 영국) 최초로 컴퓨터 프로그램 고안(1842)
4. 광대한 우주에 나 홀로
발렌티나 테레시코바Valentina Terechkova (1937-, 러시아) 우주에 간 최초의 여성(1963)
5. 한없이 행복한 수학의 시간
마리암 미르자하니Maryam Mirzakhani (1977-2017, 이란) 여성 최초로 필즈 메달 수상(2014)
(......)
85. 코르셋으로부터의 해방
에르미니 카돌Herminie Cadolle(1842-1924, 프랑스) 브래지어 발명(1889)
86. 우먼 파워!
로즈 베르탱Rose Bertin 외 패션계를 빛낸 여성들(18세기)
87. 여성들 간의 공감과 연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1973-, 미국) 미투 운동을 처음 시작하다(2006)
88. 부부의 미덕에 허락된 것
소피 베르틀로Sophie Berthelot(1837-1907, 프랑스) 프랑스 여성 최초로 팡테옹에 안장(1907)
89. 이사벨라 카날리 안드레이니Isabella Canali Andreini(1562-1604, 이탈리아) 최초로 연극 무대에 선 여성(1589)
90. 다음 단계를 위한 의미 있는 출발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1964-, 미국)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2020)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1. 농부의 딸, 바지를 입고 배에 오르다
잔 바레Jeanne Barret(1740-1807, 프랑스) 여성 최초로 세계 일주(1767)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부르고뉴의 한 시골 마을에 살던 잔 바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지자 식물학자인 필리베르 코메르송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필리베르에게는 출산 도중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젖먹이 아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서로를 위로해 주다 사랑에 빠진 잔과 필리베르는 아직 어린 그의 아들 아르샹보를 다른 가정부에게 맡기고 함께 파리로 떠난다.
필리베르 코메르송이 루이 15세의 식물학자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학자들과 더불어 세계 일주를 준비 중이던, 프랑스 해군 제독이자 탐험가인 루이앙투안 드 부갱빌Louis-Antoine de Bougainville의 지명으로 필리베르가 항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목표는 기항지마다의 식물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표본을 만들어 프랑스로 가져오는 것.
잔은 필리베르와 함께 항해를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 어쩔 줄 몰랐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잔은 읽고 쓰는 법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당시 소작농 집안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는 한편 어머니와 갖가지 효능을 지닌 약초를 채집하기도 했다. 이후 코메르송의 가정부가 되었고, 그의 연인이 되었으며, 식물학자의 조수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잔은 코메르송에게서 식물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곧 식물학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항해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필리베르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탓에 그런 상태로 세계 일주 여행을 하려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조수로서 때로는 간호사가 되어, 잔은 항해 내내 필리베르를 돌본다. 필리베르가 자신을 도울 사람을 데려가게 해 달라고 부갱빌과 협상한 끝에 동의를 얻어 낸 것이었다.
잔 바레는 이렇게 1767년 2월 에투알호號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최초의 여성이 된다. 위장 신분이었다. 당시 여성은 국왕의 함선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잔은 어떻게 배를 탔을까? 그녀는 장 바레Jean Bare(장은 잔의 남성형 이름-옮긴이)가 되기로 한다. 꽁꽁 싸맨 가슴에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필리베르의 시종이자 조수 임무를 정식으로, 그것도 탁월하게 수행한 것이다. 부갱빌이 이때의 기록『세계일주여행Voyage autour du monde』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선원 차림을 한 잔의 ‘짐승 같은’ 체력 때문에 그들 중 누구도 잔이 여자이리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고. 물론 수염 없는 이 작은 몸집의 기묘한 조수에 대한 몇 가지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발한 술책과 기상천외한 해명으로 위기를 잘 모면해 온 잔은, 결국 타히티인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만다. 하지만 부갱빌은 아무 말 없이 잔으로 하여금 항해를 계속하게 한다. 이후 1785년, 부갱빌의 추천을 받은 루이 16세가 잔의 공로를 치하하며 연금을 수여하는데, 이때 ‘비범한 여인femme extraordinaire’이라는 칭호도 함께 부여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잔과 필리베르 커플(두 사람은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이 채취한 식물 종種 하나에는 부겐빌레아Bougainvillea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데, 프랑스의 위대한 탐험가 부갱빌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2012년, 유타 대학 소속 생물학자 에릭 티프는 자신이 남아메리카에서 발견한 꽃을 솔라눔 바레티애Solanum baretiae라고 부르기로 한다. 바레티애, 잔 바레를 기리는 의미다.
2.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여자
멜리타 벤츠Melitta Bentz(1873-1950, 독일) 최초의 종이 필터 발명(1908)
요즘은 원두커피보다 캡슐 커피가 더 많이 팔리는 추세다. 전 세계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프랑스는 캡슐 커피에 정복당한 듯 보인다. 40대 이상에게 커피는 초록과 빨강의 멜리타 포장지와 세트를 이룬다. 작가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그러했듯, 이 빨강초록 필터 포장지는 그들에게 유년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다.
‘멜리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커피 필터, 그리고 그 포장지이리라. 말하자면 길다. 이는 커피에 있어 진정한 혁신의 이름에 다름 아니다. 한데 이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가?
이야기는 20세기 초 독일 드레스덴의 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35세의 주부 멜리타 벤츠는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다. 그런 그녀를 매일 아침 절망케 하는 건 커피 찌꺼기. 잔에 가라앉은 찌꺼기가 커피 맛을 점점 더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갖가지 기술과 방법을 강구하던 멜리타는, 1908년 어느 날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다. 아들 빌리의 공책에서 압지를 한 장 떼어 구멍을 여러 개 낸 다음 놋쇠 주전자 안쪽 깊숙이 넣은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여과를 거친 커피 맛은 이전보다 훨씬 나았다. 멜리타는 이 종이가 상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길로 독일 특허청에 가서 상표 등록을 마친 멜리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엠 벤츠M. Bentz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린다. 가족회사였다. 이듬해인 190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 나간 벤츠사는 종이 필터 1천200 장을 팔았다. 그리고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수십만 장의 필터가 팔려 나갔다.
이후 멜리타라 불리게 된 이 필터는 종이 부족 사태와 경기 불황, 양차 세계대전을 겪어 내며, 1950년 고안자인 멜리타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순조로운 길을 걷는다. 회사는 멜리타의 손주들이 물려받았으며, 현재 독일 라인란트 지역에 본사를 둔 4대까지 이어진 회사가 되었다.
3. 백작부인과 알고리듬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 백작부인’Ada Byron(1815-1852, 영국) 최초로 컴퓨터 프로그램 고안(1842)
에이다 바이런은 시인 바이런의 딸이다. 어쩌면 문학 분야에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에이다 나이 겨우 한 살일 때 에이다의 엄마와 헤어진 바이런이, 그 길을 가려는 딸에게 격려의 말을 해 줄 일은 없었을 터. 열정과 터무니없음으로 점철된 관계는 끝났고, 바이런은 그렇게 딸과도 관계를 끊었다.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은 문학이 아닌 다른 언어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전문가들에게는 ‘에이다Ad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산업혁명기, 성차별이 만연한 영국 사회에서 이는 쑥덕공론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에이다는 어머니 쪽을 닮은 편이었다. 학식이 풍부한 귀족 출신 어머니는 특히 수학에 푹 빠져 있었는데, 바이런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평행사변형 공주’라는 별명까지 붙여 줄 정도였다. 그런 어머니인지라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딸이 지나친 감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과학에 보다 흥미를 가져 주기를 바랐다. 에이다가 열여섯 살에 이미 과학을 그림과 함께 시적으로 표현한 책 ‘시적인 과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자 했으니, 그녀의 노력은 보답을 받은 셈.
에이다는 사교계 살롱에서 찰스 베비지를 만난다. 그는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한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고안한 인물이다. 자신이 꿈꾸던 해석기관의 성능을 향상시키고자 에이다는 베비지와 공동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1842년 기계로 실행되는 최초의 프로그램인 최초의 알고리듬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신체를 분자 실험에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신경과학과 연계된다 하겠는데, 오늘날의 신체 부착형 의료기기와 비슷한 것을 고안해 보려는 시도였다. 애석하게도 영감은 그 이상으로 발전되지 못한다. 그녀가 경마 베팅에 활용할 만한 알고리듬을 만드는 데 정신을 뺏겼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경마광’ 수준이었다니 알 만하다. 후에 백작부인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
한동안 잊힌 이름이던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현재 주기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합중국 국방부는 1979년 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에이다라 명명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는 에이다라 불리는 슈퍼계산기가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린 허시먼 리슨은 자신의 영화 「컨시빙 에이다Conceiving Ada」를 1997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선보인다.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이 에이다를 연기했다. 최근 것으로는 파리 소재 디지털 아트센터, 라 게테 리리크La Gaite Lyrique의 전시회 ‘컴퓨터 거ㄹㄹㄹ즈Computer Grrrls’를 들 수 있다. 디지털 분야에 기여한 여성들을 기리는 전시회로서 역시 에이다에 대한 존경을 보여 주었다. 에이다가 봤으면 틀림없이 흡족해했으리라. 2017년, 파리 13구에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거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