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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서양문화읽기
· ISBN : 9791197641459
· 쪽수 : 34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4
카메라 들고, 파리지엔을 만나다 8
옮긴이의 말 343
책속에서
1921년 생 미셸
“내가 진짜 파리지엔이야. 이젠 기억하는 게 많지 않지만. 보다시피 늙었으니까.”
“내가 자란 동네는 특권층 사람들이 살던 지역이었지. 하지만 난 말이야, 부르주아처럼 행동하진 않았어.”
잊을 수 없는 드골 장군의 연설. 피레네산맥을 가로지르는 3일 낮, 3일 밤의 행군. 남편 장이 며칠을 보내야 했던 감옥. 포르투갈에서 영국행 배에 올라 런던에 터를 잡고 통역 일을 시작했던 것……. 전쟁이 끝나고 작은 화면의 TV가 처음 방영되어 열광했고,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이 열린 1953년에도 그는 영국에 머물며 쭉 통역사로 일했다. 그는 TV 프로그래머로도 일했다. 베니힐쇼2)의 성공과 셰익스피어
시리즈 실패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가 행복한 추억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친한 친구 알베르 카뮈와의 여행이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카뮈는 쉬지 않고 파리지앵을 놀려 댔고, 그 역시 그것을 즐겼던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진 과거 곁에는 쓰디쓴 현재 또한 존재한다. 먼저 떠난 아들의 빈자리는 현재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그리고 기억은 망각을 닮은 침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1960년 생 파비엔
“우리 가족은 짧게 잡아도 루이 16세 시절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파리지앵이에요. 부계 모계 모두요.
혁명 200주년에 시행한 파리지앵 가족 집계로 확인된 부분이죠.”
파비엔의 가족은 18세기 이래 파리에 살고 있다. 나시옹 지역에서 자란 그는 청소년 시절 그림을 그리거나 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가 영화 학교나 장식 미술 학교에 지원하는 데 있어 가족의 반대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에 휩싸인다. 곧 가족 전통이라 할 법학과 정치 학교로 좌표를 튼다. 쇠약해진 아버지가 치료가 힘든 병으로 결국 돌아가시고, 그간 아버지와 그의 동생들을 돌보느라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슬프지만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 변호사가 된 파비엔은 화려한 사무실에서 법률 책임자로 일을 시작한다. 이후 생제르맹데프레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뒤이어 몽소 공원 쪽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운 좋게도 그는 언제나 직장 근처에 살았다. “파리에서 가장 큰 사치를 두 개 들자면 ‘시간과 공간’일 겁니다.” 지적재산권과 신기술에 특화된 그는 예술가들과도 상담한다.
딸이 태어났을 때 연극이 다시금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운명적 신호’로 다가왔다. 파비엔은 연극 수업에 등록했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꼈다. 이는 가족과 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연극 〈위험한 관계〉에서 냉소적인 자유연애주의자 역을 맡은 그는 현재 파리 변호사 극단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에너지를 딸에게서도 발견한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조각도 시작했다. 더불어 온라인 매체에 미술 전시회 비평도 기고하고 있다.
1970년 생 나탈리
“난 파리를 결코 떠나지 않아요. 요즘 말로 ‘집순이’죠.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선생님이자 파리지엔인 나탈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열정적인 팬이기도 하다. 마르티르 거리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교외에서 살다가 열아홉 살에 파리 시내로 돌아왔다.
“박사 과정까지 파리 소재 대학에서 마쳤어요. 아버지가 공부하셨고, 내가 입학할 때 아주 자랑스러워 하셨던 루이르그랑 고등학교에서 그랑제콜 준비반에 있었지요.”
파리지엔으로 남기 위해 맞서야 할 일이 많았다. 테제베 왕복 티켓을 끊어야 했고, 런던 금융가에서 딸을 키우는 것도 거절했다. 대학 일자리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리를 향한 그의 내재된 사랑을 이야기해야 한다. 외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 할 소박한 사람들의 도시 파리, 러시아에서 피난 와 프랑스를 발견한 아버지가 보여 준 지적인 파리, 그가 어린 시절부터 탐독해 온 작가들의 도시 파리에 대한 사랑 말이다.
“난 파리를 결코 떠나지 않아요. 요즘 말로 ‘집순이’죠. 며칠 동안 외출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나탈리는 죄수의 삶을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을 이룬 책 더미가 그에게 세상을 보여 준다. 활기찬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문학 산책을 떠난다. 아니 에르노를 다룬 학술 기사를 읽고 학술 발표회에 참여한다. 단편 장르에 대해서는, 여전히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네요. 끝내기가 너무 두려워요!”라고 말한다.
유머냐 정제된 표현이냐 사이에서 나탈리는 본질로 돌아온다. 학업의 괴로움과 억압적인 교육제도에 반대하는 그로서는 유머를 택한다. 지나치게 관대한 점수를 받고 놀라는 학생들에게 그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산수에 약하거든.” 좋은 선생님은 늘 조금은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