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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843266
· 쪽수 : 282쪽
· 출판일 : 2025-08-3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 6
추천의 글| 김상길(선교사, 알마티 시온선교센터 센터장) • 8
이복규(서경대 명예교수) • 12
Ⅰ부_ 내가 만난 고려인
고려인과의 첫 만남 • 20
고려인 예술축제 • 24
고려인이 세운 도스타르 국제학교 • 28
고려인 돌잔치 • 33
고려인 청년과 위구르족 처녀의 결혼식 • 38
고려인의 한식날 • 43
우슈토베, 바스토베 • 47
류종귀 할아버지의 사연 • 54
고려말 박사 박넬리 교수 • 60
천재 음악가 정추 선생 작곡발표회 • 65
양원식 선생과의 만남 • 71
고려인 어르신들의 한글 교실 • 77
한국, 이렇게 좋은 나라인 줄 몰랐어요 • 85
고려인들과 함께한 설악산 단풍 여행 • 93
Ⅱ부_ 한국 독립을 위해 싸운 고려인 이야기
내가 만난 홍범도 장군 • 102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 • 108
간도 15만 원 사건의 주역 최봉설과 손녀 최 마야 • 112
알마티에 메아리친 대한독립 만세 • 116
순국선열의 날 •121
고려인 광복절 • 126
고려일보 창간 90주년 •131
민족문화 지킴이 고려극장 • 136
Ⅲ부_ 황무지에 꽃을 피운 고려인 이야기
김 스베틀라나 • 144
김 스베틀라나 니꼴라예브나 • 155
김 예브게니 페트로비치 • 161
김옥자(김 나제스다 니콜라예브나) • 166
김 타마라 디미트리예브나 • 171
리 블라디미르 니골라예비츠 • 177
민 타찌야나 산보예브나 •1 86
박 뽈리나 • 192
서 게르만 • 198
서 엘레오노라 보레노브나 • 201
서 펠릭스 알렉세예비치 • 206
신 이리나 자하로브나 • 216
심 타마라 니콜라예브나 • 223
염 니나 테렌티예브나 • 230
유 타마라 페트로브나 • 234
정 발레리 아나톨리예비치 • 242
차 림마 • 247
채 예브게니야 벤세고브나 • 258
최 자랴 • 262
한 스베틀라나 막시모브나 • 270
현 잔나 미하일로브나 • 276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슈토베, 바스토베
- (생략)-
도대체 우슈토베는 어디쯤일까? 다시 두어 시간을 더 달렸다. 앞을 보니 두 갈래 길이 보이면서 키릴문자로 ‘УШТОБЕ’라는 커다란 글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 드디어 목적지 우슈토베에 왔구나!’ 우측으로 난 도로를 10여 분 더 달려서 마을 한복판에 미국에서 온 한인 선교사가 세운 ‘우슈토베 청년센터’에 도착했다.
점심 후 옆에 있는 예배실로 이동하여 모두 자리에 앉았다. 88세인 천 미하일 고려인 할아버지로부터 강제 이주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우린 개, 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았어. 개나 돼지는 주인이 먹을 것도 주고 잘 곳도 만들어주지만, 우린 그냥 버려졌어. 저 허허벌판에……. 지금 우린 잘 먹고 잘살아, 우리 부모님은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어…….”
강제 이주 당시 12살이었다는 천 미하일 할아버지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자기가 겪은 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짐승이나 싣는 열차 한 칸에 5, 6가정씩 넣고 달렸는데 밤엔 너무나 추워서 이불로 몸을 둘둘 감았는데 이가 바글바글해서 잠을 못 잤다는 것이며, 소 대변이 마려우면 참고 있다가 열차가 잠깐 쉴 때 재빨리 밖에 나가 누거나, 어린애들은 참지를 못해 열차에서 그냥 싸기도 했다는 것이다. 누가 죽으면 열차가 쉴 때 밖으로 내다 눈 속에 파묻고 떠나야 했고, 열차가 멈춰 서면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 난장판이 되기도 했고, 열차가 급히 떠나는 바람에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했다는 것. 가족을 잃고 울다 실성한 사람도 있었고, 기차 안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다는 것 등등 참으로 끔찍하고도 놀라운 체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라를 잃고 강제 이주와 굶주림 속에서 겪어야 했던 한민족의 비극을 이역만리 낯선 땅 이곳에 와서 듣다니….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어린 시절 6·25 전란 때 피난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난 후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라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바스토베로 향했다. 비포장도로인 시골길을 한참 달려 야트막한 민둥산 아래로 갔다. 누렇게 말라버린 갈대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은 주변에 집 한 채 없는 사막이나 다름없는 황량한 들판이다. 고려인들의 무덤 이백여 기가 뒤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고, 커다란 표석(標石) 두 개가 서 있는데, 표석의 하나에는 한글로 다음과 같이 씌어있고 다른 표석에는 러시아어로 씌어있다.
“이곳은 원동에서 강제 이주 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이다.”
혹한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노인과 어린아이 등 1만 5천여 명이 이송 도중 열차 칸에서 죽었고, 장장 6,000km를 짐짝처럼 실려와 여독도 풀지 못한 채, 우선 맨손으로 주거할 공간인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갈대를 꺾어 지붕을 얹어 겨울을 났다. 겨울을 나는 동안도 힘없는 노인과 아이들이 많이 죽었는데, 움막 뒤편 민둥산 언덕에 매장했다.
우리 학생들과 교사 일동은 표석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움막집 흔적을 살펴보고, 무덤을 둘러보았다. 무덤 앞에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석에는 한글과 러시아어로 망자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해의 날짜를 기록해 놓았다. 그중에는 70여 년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에 깎이고 닳아 알아보기 힘든 철판 비문도 있었다. 고려인들의 고난 흔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학생들과 함께 걸어서 민둥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 서서 멀리 고려인 거주 촌락과 그들이 일군 논과 밭, 들판을 바라보면서 고려인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정과 어려움을 극복한 그분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찬바람과 함께 냉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아무렴 80년 전 고려인 강제 이주 당시에 비교할 수 있으랴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데 추워서 나오는 눈물인지 슬픈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모르겠다.
강인한 의지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버티고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을 맞이하면서 황무지 땅을 일구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다가 농사일을 시작했다. 원동에서 가지고 온 곡식과 채소 씨앗을 심고 정성껏 가꾸어 수확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벼농사는 고려인들의 손에 의해 시작되었고 큰 성과를 내어 과거 소련 시절 노력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이 많았다. 불모지 허허벌판이었던 이 지역은 약 10만 명의 고려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큰 마을로 발전했는데 현재는 이들 후손 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농업용수를 끌어오기 위해 만든 수문을 보러 출발했다. 바스토베에서 약 2km 정도 되는 거리에 냇물을 가두는 수문이 있다. 이 수문은 먼저 러시아인 기술자가 만들기 시작했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을 고려인들이 덤벼들어 완성했고, 여기 고인 물을 오리(2km)나 되는 수로를 만들어 끌어들여 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수로와 수문을 돌아보면서 한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고려인의 억척스러운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끈질긴 노력과 성실성에 가슴 벅찬 감동이 일었다.
러시아인도 겁내어 공사를 포기했던 댐과 수로를 거의 맨손으로 건설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고 농사를 지어 소련 시절 인정받는 콜호스(집단농장)를 건설하여 한민족의 위대함을 보여준 고려인들!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고려인들은 점차 이 땅에서 인정받는 소수민족이 되었고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카자흐스탄 130여 민족 중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존중받아 왔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의 고려인 젊은 세대들은 과연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그 명성을 이어 나갈 의지와 노력이 보이는지? 앞선 고려인 세대가 쌓아온 명성이 이제는 많이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위해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