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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신앙생활
· ISBN : 9791198182951
· 쪽수 : 354쪽
· 출판일 : 2023-07-29
책 소개
목차
축하글 • 4
저자의글 • 6
신부님 서품 성구 • 9
1부 생명의 길
주님 부활 대축일
창조 때부터 그 사랑이 • 17
부활 제2주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22
부활 제3주일
두려움 너머로 참 기쁨을, 부활의 선물 • 27
부활 제4주일
사랑하면 알리라! 우리 하느님! 우리들의 성소 • 32
부활 제5주일
무엇을 위하여 종을 울리나? • 38
부활 제6주일
가장 확실한 과학 • 43
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의 승천과 그 유산 • 47
성령 강림 대축일
새 계명, 그 사랑의 보호자 • 50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인간의 분별심 • 56
성체 성혈 대축일
예수님의 제사, 우리의 제사, 예수님의 꿈나무 • 61
연중 제11주일
방어기제와 하늘나라 • 66
연중 제12주일
이제야 당신을 뵈었습니다 • 71
연중 제13주일
나눔, 참 생명의 길 • 75
연중 제14주일
멈춰버린 사람들 • 80
연중 제15주일
하느님의 선택, 우리에겐 은총 • 85
연중 제16주일
길(道)위의, 그 수동성이여! • 89
연중 제17주일
우리 시대의 예언자 • 93
연중 제18주일
전두엽, 은혜로운 상상력 • 98
시 기린봉에서 • 103
2부 사랑의 길
연중 제19주일
해 질 무렵 더해지는 절실함 • 107
성모 승천 대축일
한 여인에게서 놀라운 역사가 • 111
연중 제21주일
자신에게 넉넉한 복된 베드로 • 116
연중 제22주일
무리, 조직의 암세포 • 121
연중 제23주일
기적, 하느님의 자애, 사랑의 교회 • 126
연중 제24주일
죽음, 그 궁극(窮極) 너머로 • 13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온 세상을 얻고도 • 136
연중 제26주일
운명(運命)과 숙명(宿命) • 141
연중 제27주일
모세의 이혼장, 시대의 표징과 하늘나라 • 146
연중 제28주일
전두엽, 지혜를 탐하다 • 151
연중 제29주일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 • 156
연중 제30주일
무엇을 믿는 것일까?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 161
연중 제31주일
사랑하라, 알게 되리라 • 167
연중 제32주일
하늘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 172
연중 제33주일
단 한 번의 제사, ‘자기’를 살아가신 예수님 • 177
그리스도왕 대축일
미명(未明)과 자유(自由) • 182
대림 제1주일
구원과 로또 • 187
대림 제2주일
파편화된 개인들 • 192
대림 제3주일
명품과 행복 • 197
대림 제4주일
섭리하시는 하느님 • 202
주님 성탄 대축일
사랑이 오셨다! • 207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사랑을 낳으신 어머니, “신앙의 신비여!” • 211
주님 공현 대축일
말구유에 누우신 구세주 하느님 • 216
시 세상에서 • 221
3부 자유의 길
주님 세례 축일
하늘의 문을 열다 • 225
연중 제2주일
교회를 망치는 아첨꾼과 충성꾼, 하느님의 의로움 • 230
연중 제3주일
참 종교와 거짓 종교 • 235
연중 제4주일
성경, 종교적 지평 초월• 240
연중 제5주일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 246
연중 제6주일
누구나 돈을 좇지는 않는다 • 252
연중 제7주일
길 잃은 아담에게 길을 묻다 • 258
연중 제8주일
좋은 나무, 선한 사람 • 263
사순 제1주일
예수님, 악마의 유혹, 그 헛소리에 맞서다 • 268
사순 제2주일
주님은 참 좋으신 분, 신앙의 성실성 • 273
사순 제3주일
재앙보다 더 큰 재앙 • 279
사순 제4주일
탕자의 자기 부정, 위대한 가난으로 • 284
사순 제5주일
율법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의 의로움• 28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거룩하다 십자나무 • 295
주님 부활 대축일
부활, 드러난 세상의 비밀 • 299
부활 제2주일
감각과 깨달음의 차이 • 305
부활 제3주일
부활! 그 새로운 시작! • 310
부활 제4주일
목자의 목소리, 그분을 따르다 • 315
부활 제5주일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 320
부활 제6주일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325
주님 승천 대축일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 330
성령 강림 대축일
오소서 성령님 • 335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 하느님과 구원의 신비,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 • 341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와 성혈,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 346
시 겨울과 여름 사이에 • 350
시 운명 • 351
저자소개
책속에서
신앙은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하느님의 초대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손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완성하신다. 그래서 신앙은 선물이다. 인간의 자유는 신앙 안에서 완성되고 성취된다.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8ㄴ) 하셨나 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ㄴ) 하시며 끊임없이 제자들을 돌보시는 예수님께서 앞으로도 교회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못에 뚫린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 주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영광스럽게 된 교회, 우리는 그분의 상처로 구원의 은총을 얻었다. 그분과 만남은 참된 기쁨의 원천이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ㄴ) 한 처음, 창조하실 때처럼 숨을 불어넣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다. 이제 새로운 창조는 성령과 함께하는 여정이요, 용서를 완성해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죄의 용서는 ‘권한’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과업’의 문제다. 우리가 풀지 못할 용서가 있다면 하늘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는 엄중함을 상기시킨다. 이제 우리는 용서와 사랑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우리의 자비가 신앙의 증거가 될 것이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여러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는 ‘지구적 차원’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만큼 어느 한 지역이나 사회,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발전이란 지금의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안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다. 빈부 격차는 우리의 염려만큼 줄어들지 않고 사회는 양극화되어 간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큰 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빈곤은 단순히 물질적 빈곤을 넘어 의료적 빈곤, 문화적 빈곤 등 삶의 총체적인 빈곤으로 확산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분열은 그 끝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와 무분별한 자원 사용은 인류에게 커다란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재앙도 초래하였다. 원자력과 핵물질은 양날의 칼이다.
이러한 인류에게 사랑만이 가장 확실한 답이다. 끝없는 풍요와 발전이 인류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소유로 서로 나누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생활 등, 서로의 사랑만이 인류에게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광범위하여 지금은 명쾌하게 과학적이며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인류는 사랑만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과학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변화는 불안정 상태다. 흐르는 물은 불안정하고 고여 있는 물은 안정되어 있다.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한다. 고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새로운 것은 신선하지만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니, 낯설고 불확실한 것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외면당하고 폐기처분당하기 쉽다. 고향에 돌아온 예수님을 보고 모두 ‘저 사람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외면하지만,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낯설고 불확실하여 외면한다고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외면해도 그것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신앙에 영향을 끼친다. 많은 사람이 불안정하지만, 변화에 따라 적응하려 애쓰고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위험과 시련이 따르겠지만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은가? 교회라고 해서, 신앙인이라고 해서 다른 길이 있는가? 언제까지 외면하고 회피하며 보전하는 길을 가려 하지만 진정 보전할 수 있겠는가? 적응하지 못하면 퇴보하는 것임을 왜 모른척할까?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일으킬 수 없었던 예수님,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마르 6,5-6) 전하지만 놀라서 놀라신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도 놀라실 만큼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감정, 자기생각에 빠져있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지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놀랄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매우 불행하고 아무런 기적의 은총도 받지 못한 고향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은총에서 멀어질 것이다. 불확실하지만 도전하고 시도하며 자기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신앙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