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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언론/미디어 > 언론인
· ISBN : 9791198896919
· 쪽수 : 652쪽
· 출판일 : 2025-11-20
책 소개
언론의 정도(正道)를 걸으며 ‘언론 선비’에서 ‘투사’가 된 언론인,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했던 역사학자, ‘청암’ 송건호
‘청암’ 송건호, 그의 삶은 곧 한국 민주언론의 수난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민족과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언론의 정도(正道)를 걸으며 민주언론의 기틀을 세운 참 언론인, 시대의 등불이었다. 시대는 그를 평범한 언론인에서 언론학자로, 현대사 연구의 새 길을 연 역사학자로, 저명한 논객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만들었다. ‘청암(靑巖, 푸른 바위)’이라는 호처럼 그는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푸른 이끼 덮인 큰 바위’였다. 고문과 징역의 시련 속에서도 욕심과 삿됨이 없는 품성으로 지사적 언론인의 길을 잃지 않았다.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도 줄곧 ‘정론직필’의 길을 걸으며 ‘곡필언론’을 연구한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이다. 그가 이 평전을 통해 송건호의 중요한 글과 저서의 핵심을 짚어 논평하고, 송건호의 삶과 사상을 들려준다. 저자는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던 지식인과 언론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우리가 익히 아는 ‘송건호’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그 격렬했던 투쟁의 현장과 고독한 사투를 생생하게 복원해서 들려준다. ‘언론 선비’였던 송건호가 어떻게 군부 독재의 폭압 속에서 ‘투사’로 거듭났는지, 송건호가 남긴 민주언론의 유산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또 독재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맞서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 지식인의 정신과, 고문 후유증으로 망가진 육신을 이끌고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송건호의 기개를 보여 주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말다운 말의 회복’을 위해 삶을 바친 ‘참 언론인’
한국 현대사에서 ‘언론인’이라는 이름이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송건호는 ‘푸른 이끼 덮인 큰 바위’처럼 권력의 폭풍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실의 표상으로 자리를 지켰다. 평전의 대가답게 저자는 한 언론인의 일대기를 넘어, 참 언론인의 투쟁과 헌신이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 웅장하게 기록했다. 한 인간의 고독한 투쟁이 어떻게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 되었는지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송건호라는 인물을 통해 해방 이후부터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굽이치는 격랑과 민주언론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자 역시 군사정권 시절 당했던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으며 한 몸 가누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지면서도 시대를 기록하기 위해 펜을 놓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송건호 평전』은 권력의 폭압이 펜을 꺾으려 할 때 시대를 직시한 기자정신의 기록이고, 거짓이 진실을 덮으려 하던 시대에 ‘말다운 말의 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언론인의 고뇌와 투쟁의 기록이다. 세계 최초의 국민 주주 신문 《한겨레신문》(오늘날 《한겨레》) 창간의 숨겨진 영웅 이야기이자, 혹독한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지식인의 증언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병리를 파헤치고 분단 극복의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했던 역사학자의 깊은 통찰을 보여 주고, 고문에 못 이긴 허위 자백으로 김대중이 사형 선고를 받자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이었다며 고백하고 평생 괴로워하며 시대의 업보에 맞선 양심의 고백이다. 이름 없는 기자에서 20세기 한국 최고 언론인으로 우뚝 서며 펜으로 시대를 바꾼 한 인간의 드라마이며,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새 길을 연 개척자이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했던 역사학자의 치열한 역정이다.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송건호 평전: 시대가 ‘투사’로 만든 언론선비』의 개정판이다. 책의 전체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나 일부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중복된 내용을 가지치기했으며, 판형과 디자인은 새롭게 바꾸었다.
<책의 내용>
시련 속에서 단련된 진실의 칼날
송건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고통의 순간들과 맞물려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 그는 한평생을 ‘기자’로 살아갔다. 얌전하고 학구적이고 조용조용한 성격이었고 대쪽 같은 ‘선비’였다. 스스로 “나는 천성적으로 투사가 될 수도 없고 운동가도 될 수 없습니다. 나는 가만히 놔두었으면 평범한 신문기자로 늙어 죽을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언론 선비’라고 불렀다. 시대는 그를 순수한 ‘기자’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겪으며, 그는 언론이 봉사해야 할 대상은 정권이 아니라 민중이며, 언론의 사명은 ‘진실’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을 ‘진실의 목소리’를 외쳤던 불굴의 성품은 청년 언론인 시절부터 단단하게 자리 잡았고, 이때 강직한 언론인으로 성장할 기반이 이미 다져졌다.
행동하는 지식인, 역사의 기록자
1960년대 초반,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기며 송건호는 본격적으로 시대의 비판자로 나선다. 1960년대 내내 그는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글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1970년대, 언론의 자유가 질식당하는 암흑기가 찾아왔을 때 그는 언론인으로서 정권의 강압 조치에 끊임없이 비판하며 ‘언론 자유’의 정도(正道)를 걸었다. 자신이 쓴 ‘사설’ 때문에 정보기관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었으나 그의 펜은 꺾이지 않았다.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이 노골화되자 1975년에 《동아일보》를 떠나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는 결단을 내린다. 이 시기에 그는 단순히 시대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저항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쳤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날카로운 역사가로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점을 해부한다. 당시 독재정권의 근간이었던 보수 세력의 정치적 배경과 관료제의 성격 등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는 당시 재야운동 진영에 독재정권의 뿌리를 이해하고 싸울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했다. 또 ‘조국 근대화’의 구호가 지닌 허점을 꿰뚫고 민족 주체적 근대화론을 역설했다. 이처럼 그는 언론뿐만 아니라 역사학 분야에서도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언론계 ‘해직’이 오히려 그에게 ‘역사학자’라는 또 다른 날개를 달게 해 주었던 셈이다.
독재 시대 지식인이 짊어진 ‘시대의 업보’
1980년 신군부의 5·17 쿠데타 이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조작된 혐의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이때 그가 겪은 고통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때문에 훗날 ‘파킨슨병’과 다리 신경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 당시 그를 괴롭힌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도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을’ 고통의 한계 속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허위 자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선고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송건호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잘못을 했다”라고 스스로 고백할 만큼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았다. 우리는 종종 투사를 이상화하지만, 이 대목에서 송건호는 극도의 고통 앞에서 굴복했던 한 인간의 나약함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위대함은 그 좌절의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이 뼈아픈 실수를 평생 안고 살아가며, 독재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언론을 살리기 위해 다시 일어섰기 때문이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복역한 시간은 그에게 좌절이 아닌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민주언론의 기적을 만들다
언론의 자유가 말살되고 언론이 죽은 1980년대, 그는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를 이끌고, 한국 언론운동사의 기념비적인 이정표인 《말》지를 창간한다. 이 작은 잡지는 이후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등 새로운 언론의 씨앗을 뿌렸다. 《말》은 억압받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고, 이는 곧 한국 민주언론 운동의 단단한 디딤돌이자 해방구가 되었다. 이렇게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는 마침내 《한겨레신문》 창간이라는 결실로 빛을 보았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국민 주주 방식으로 신문을 창간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그의 숙원이었던 ‘민주언론’의 이상을 실현했다. ‘물욕, 권력욕, 명예욕’ 없는 언론인으로서 《한겨레신문》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언론이 되도록 구조적 토대를 다졌다.
20세기 최고의 언론인, 영원히 펜을 놓다
혹독한 고문 후유증과 파킨슨병으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송건호는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글쓰기와 강연을 지속했다. 그가 소장했던 도서 1만 5천여 권은 한겨레신문사에 기증되어 ‘청암문고’로 재탄생했다. 송건호는 1999년에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2001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기자협회보》가 선정한 ‘20세기 최고 언론인’에 뽑혔다. 긴 투병 생활 끝에 2001년 12월 21일에 영면에 들어갔다. 송건호가 걸었던 험난한 길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언론 민주주의의 토양이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푸른 이끼 덮인 큰 바위 5
1. 한국 언론 풍토에서 송건호의 위상 17
2. 일제 말기에 보낸 소년 시절 46
3. 해방과 전쟁, 그리고 대학 생활 72
4. 언론인으로 사회 진출하다 87
5. 논설위원으로 소장 논객 활동 시작 109
6. 언론계 실직·복직 되풀이하면서 논설 집필 159
7. 박정희의 폭압 조치에 저항 191
8. 기자 대거 해직에 항거해 편집국장 사퇴 222
9. 언론인에서 점차 언론학자로 248
10. 반독재 재야운동과 저술 활동 282
11. 현대사 연구의 새 길을 열다 305
12. 유신 말기 재야 활동과 비판적 글쓰기 331
13. 지식인 선언을 주도하다 361
14. 투옥과 혹독한 고문 388
15. 망가진 육신 붙들고 활동 재개 414
16. 5공 격동기의 활동과 저술 455
17. 언론이 죽은 시대, 새로운 언론이 태동하다 487
18. 6월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다 522
19. 국민 주주의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 546
20. 20세기 최고 언론인, 펜을 영원히 놓다 589
나오는 말: 몰상식에 도전한 상식적 지식인 628
주註 634
저자소개
책속에서
‘들어가는 말’ 중에서
“송건호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강직한 성품과 지사적 풍모를 보여 주었다. 저명한 논객이자 열렬한 민주화 운동가였다. 박정희의 폭압으로 언론이 침묵할 때 함석헌의 《씨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NCC의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비서를 시작으로 네 차례나 입각 제의와 유정회 국회의원직 제의를 받았고, 5공 때도 10여 차례나 비슷한 유혹을 받았다. 유명세를 탄 언론인과 대학교수들이 줄줄이 각료가 되거나 국회와 정부 요직으로 들어가던 시대에 독재정권이 민심 호도책으로 내세우기 위해 욕심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송건호 선생은 달랐다. 그의 아호 ‘청암’대로 ‘푸른 이끼 덮인 큰 바위’는 권력에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송건호 선생을 지켜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그의 투철한 시대정신과 왕성한 지식 욕구였다. 유신 체제와 5공의 광기가 계속되면서 지식인들은 현대사 연구를 외면했다. 마치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근현대사를 전공하던 학자 대부분이 전공을 고대사나 중세사 연구로 바꾸었듯이, 한국 상황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신 체제와 5공 체제를 다루다가 권력과 충돌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전공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송건호 선생은 다른 이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걸었다. 그는 유일하게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개척자 역할을 했다. 당대인들이 숨 쉬고 있는 현대사의 황무지를 송건호 선생이 개척했다.”
“송건호 선생은 유능한 논객이나 현대사 연구가의 소임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권력과 유착한 제도언론과 싸우고, 해직언론인들이 중심이 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발족했으며, 진보 정론지의 상징이 된 《말》의 발행인으로 군사독재와 싸우다 연행되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때마다 정·관계의 유혹이 따랐으나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송건호 선생의 존재는 다양한 출신, 이질적인 성향의 언론인들이 모인 《한겨레신문》에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진보 정론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한겨레신문》의 탄생과 성공은 지사 언론인 송건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송건호 선생 평전을 쓰는 것은 그의 청렴한 글쓰기 정신을 오늘의 기회주의, 속물 언론인, 학자, 지식인들에게 전범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고난 속에서도 불의한 감투와 녹봉을 거부하고 의롭게 산 청절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