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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길

사랑의 길

(나라다의 박티 수트라)

스와미 프라바바 난다 (지은이), 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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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길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사랑의 길 (나라다의 박티 수트라)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힌두교
· ISBN : 9791199350137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5-04-01

책 소개

나라다는 우리에게 “헌신의 길은 신을 얻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말한다. 산스크리트로 박티 요가라 불리는 “헌신의 길”은 사랑을 통해 신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박타는 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 대한 신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계속적으로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목차

저자의 글
서문
서론
나라다
수트라들
옮긴이의 글
용어풀이
참고도서

저자소개

스와미 프라바바 난다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는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세기의 전환기에 시작한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라마크리슈나의 직계 제자들이 미국으로 파견한 선구적인 스와미 중 한 명이다. 스와미는 1893년 12월 26일 인도에서 태어났다. 1914년 캘커타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인도 라마크리슈나 교단에 가입했고, 슈리 라마크리슈나의 직계 제자였던 스와미 브람마난다에 의하여 입문했다. 1923년 스와미 프라바바난다는 미국으로 왔다. 샌프란시스코 베단타 협회의 부사제로 2년을 보낸 후, 포틀랜드 베단타 협회를 설립했다. 1929년 12월,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이듬해 남부 캘리포니아 베단타 협회를 설립했다. 스와미의 유능한 보살핌 아래, 이 협회는 서양에서 가장 큰 베단타 협회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할리우드와 트라부코 캐년에 수도원이, 할리우드와 산타바바라에 수녀원이 있었다. 스와미 프라바바난다는 문학가이자 신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도의 영적 고전을 서양 독자들에게 알리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그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나 프레데릭 맨체스터의 도움을 받았다. 철학과 종교에 대한 그의 포괄적인 지식은 올더스 헉슬리와 제럴드 허드와 같은 제자들을 끌어들였다. 바가바드 기타, 우파니샤드, 파탄잘리 요가, 베단타의 관점으로 본 산상 수훈을 포함한 그의 출판물은 오늘날까지도 관심을 끌고 사람들을 베단타 철학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스와미 프라바바난다는 19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200주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바친 사람에게 어울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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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미 프라바바 난다의 다른 책 >
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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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2. 박티는 정말이지 신을 향한 강렬한 사랑이다.

나라다는 신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부정 중성 명사 “이것”을 사용 한다. 그리고 수트라를 영어로 번역할 때, “이것에 대한 강렬한 사랑” 이 의도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고쳤다. 나라다가 왜 신, 브람만, 아트만, 라마, 크리슈나 또는 다른 신성한 어떤 이름 대신에 “이것”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한 가지 이유는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완전히 비종파적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저것”과 대조적.....


3. 이 신성한 사랑은 불멸의 희열 또한 준다.

이 불멸의 희열의 진정한 성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절대적 행복과 황홀경의 상태이다. 나의 스승이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상적인 것과 열정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기쁨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신에게 자신을 바치고 그의 안에서 달콤함을 찾는 자들만이 인생의 참된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다.” 산스크리트에는 마다바 즉 다정한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신의 이름들 중 하나이다.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 우리는 읽는다. “나 존재Self-Existent는 행복의 성품이다. 그 희열의 나가 가슴의 연꽃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숨을 쉴 수 있겠는가? 기쁨을 주는 자가 바로 그이다.”


4. 그것을 얻으면, 그는 완벽과 불멸을 얻는다. 그는 지극히 만족한다.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내가 번역한 산스크리트 단어 싯다는 또한 신 비한 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미는 여기에서 는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헌신자 즉 진정한 영적 수행자는, 추구 하지 않아도 신비한 힘들이 그에게 올 수 있지만, 그것이 영적 성장과 성취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 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도 요가 철학의 아버지인 위대한 요기 파탄잘리가, 어떤 집중의 수련을 따름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많은 신비한 힘들을 다룬 후에, “이것들은 세상적 의미에서 힘이지만, 가장 큰 힘은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지적하면서 마무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영적 수행자를 신의 길로부터 멀어지게 꾀어내는 너무나 많은 유혹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가슴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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