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1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1

라마나 마하리쉬 (지은이), 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30,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7,000원 -10% 0원
1,500원
25,5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23,333원 -10% 1160원 19,830원 >

책 이미지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1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힌두교
· ISBN : 9788991596849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5-06-10

목차

옮긴이의 글 · 7

제1장 1936년 7월 5일 · 11
제2장 1936년 7월 6일 · 26
제3장 1936년 7월 7일 · 41
제4장 1936년 7월 9일 · 75
제5장 1936년 7월 10일 · 85
제6장 1936년 7월 11일 · 92
제7장 1936년 7월 12일 · 109
제8장 1936년 7월 13일 · 124
제9장 1936년 7월 14일 · 134
제10장 1936년 7월 15일 · 147
제11장 1936년 7월 16일 · 168
제12장 1936년 7월 17일 · 177
제13장 1936년 7월 18일 · 196
제14장 1936년 7월 19일 · 247
제15장 1936년 7월 20일 · 274
제16장 1936년 7월 21일 · 316
제17장 1936년 7월 23일 · 325
제18장 1936년 7월 24일 · 328
제19장 1936년 7월 25일 · 338
제20장 1936년 7월 26일 · 343
제21장 1936년 7월 27일 · 353
제22장 1936년 7월 28일 · 355
제23장 1936년 7월 30일 · 367
제24장 1936년 8월 1일 · 377
제25장 1936년 8월 2일 · 388

저자소개

라마나 마하리쉬 (엮은이)    정보 더보기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는 1879년 12월 30일 남인도 티루출리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죽음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1896년 7월에 그는 갑자기 찾아온 매우 강력한 죽음의 공표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늘 깨달음의 상태에 있었다. 1896년 9월 1일, 그는 아루나찰라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인 라마나스라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는 여생의 마지막ᄁᆞ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말과 침묵으로 가르치다가 1950년 4월 14일 마하 사마디에 들었다.
펼치기
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정보 더보기
뭄바이 근처에 있는 알란디에서 바가바드 기타를 처음 접하였다. 게스트 하우스 안내원이 나를 지하실 서고로 안내하더니 갸네쉬바리 기타를 보여주었다. 갸네쉬바라는 그 지방의 시인이자 성자였다. 그 성자가 바가바드 기타 주석서를 썼는데 그 책이 갸네쉬바리 기타다. 녹음이 짙은 오쇼 아쉬람에서 그분은 청중들에게 “그대는 순수한 금입니다. 그대는 순수한 금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라는 지혜의 말을 전해주셨다. 보통의 인간으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 그 말씀은 엄청난 선물이었다. 내가 붓다라니........어쩌면....... 산타크루즈 요가 연구소에서 성자 요겐드라지를 만나 질문을 하였다. “마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휘청이게 하는 천둥이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하다가 내면에 있는 빛의 바다로 들어갔다. 마음은 어두운 무엇이다. 그 안에 눈부신 무엇이 있다니.... 너무나 놀라 그곳의 성자 고엥카 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사마디입니다. ” 나는 그때 사마디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산타크루즈 요가 연구소에서 한 외국인 연구원에게 물었다.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 어디입니까?” “티루반나말라이의 라마나스라맘”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있는 라마나스라맘에서 그제야 난 평화를 느꼈다. 인도에서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 희귀한 아쉬람이었다. 수행은 마음이다. 힐링을 주는 소울 음식들, 초록색 허브 잎이 담긴 버터밀크, 커피, 아삭아삭하게 부수어지는 크레커 ... 오, 천상의 음식들...... 그 무엇으로 보답을 할 수 있을 런 지.... 공작새들이 지상과 지붕 위를 다니며 내는 지상을 떠난 소리들, 다가와 한가롭게 가까이 앉는 개들, 늘 움직이는 원숭이들... 지붕과 울타리를 타고 있는 남국의 웃는 꽃들 고요, 침묵이 넘치는 낙원이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라마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1948년생이고 라마나님은 1950년에 돌아가셨으니..... 그 즉시 나의 숙소로 가는 길목의 숙소에 나나가루라는 성자를 보내주셨다. 그 성자 분께서는 헌신자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 기회를 가졌지만 난 그때는 그분의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는 성숙한 영혼은 아니었다. 인도를 다니다보니 그 거대한 영성의 체계가 어렴풋이 들어왔다. 그것을 알고 나는 놀랐다. 이제까지 너무 안이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 생애에는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여정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뉴델리로 갔다. 이 영혼의 나라를 그냥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수첩을 뒤졌다. 하리드와르 아쇼카 로드에 있는 아라야 니야스. 파파지. 붓다가야의 미얀마 사원에 머문 적이 있었다. 룸에 있다가 떠들썩한 대화를 듣고 호기심이 일어나 나가보았다. 검은색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주위로 외국인들의 무리가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구루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구루는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나도 그 구루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가는데 구루께서 허락하신다면 답을 드리겠다고 한 나그네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스승님이 머문다는 주소를 네게 보냈었다. 그래서 그 주소지로 나는 가고 있었다. 그 주소는 파파지께서 하리드와르에 오시면 묵는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은 마당에서 어망을 손질하시다가 파파지께서 계신다면서 이층을 가리키셨다. “어디를 다녔습니까?” “많은 곳들을 다녔지만 라마나스라맘에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저는 피곤합니다.” “아, 그렇다면 저 아래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샤워하고 쉬십시오.” “저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피곤합니다.” 파파지께서는 놀라운 눈빛으로 “아, 그대는 마음이 아닙니다.....” 난 파파지의 자애로운 은총으로 내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마음이 없으면, 기쁨과 고통이 없으며, 세상이 없으며, 그 아무 것도 없다. 이제야 그 단어의 의미가 살아있는 모습이 되었다. 마음은 일어난 것이니 사라질 수도 있는..... 마음이 정말로 사라지자 하, 앞에 계시든 스승님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방이 사라졌다. 나의 몸이 사라졌다. 이제까지 붙들고 있던 ‘나’라는 괴물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다른 차원으로 가고 있었다. 갔다....... 거기에는 눈부신 희열의 바다, 빛의 바다..... 그것만이 있었다. 찬란한 바다만이.... 그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체험이 아니었다. 체험은 별개의 ‘나’가 있고 그 ‘나’가 빛을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빛만이 있었다.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나는 모른다. 시간을 아는 존재가 없었으니.......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시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자 ‘나’가 느껴지고 룸이 보이고, 앞에 앉아 계시든 자애로운 스승님이 보이셨다. 이런 모든 과정을 지켜보셨을 스승님은 기쁨에 젖은 채 웃고 계셨다. 난 웃음을 머금은 채 돌아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안에 진리가 있다는 말을 경전들을 통해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고개를 갸우뚱 했을 내가 그것과 하나인 놀라운 경험을 하고 돌아오고 있었으니..... 웃음을 가득 머금은 사람으로 돌아오자 앞에 계시든 파파지께서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깨달았습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구도를 그만두고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서울의 직장에 다닐 때 물질적 성공의 길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 맞는지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까? 단번에, 손가락을 퉁기면서 “물론입니다.” 난 당황스러웠다. 좀 있다가 답을 주실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수초 만에 답을 주시다니...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방랑인으로 수덕사 근처의 조용한 곳으로 갔다. 그러다가 2년 정도 제주살이를 하였다. 지금 보니 그것은 명상보다도 더 깊은 수행이었다.
펼치기

책속에서

헌: 라마나마자팜(“라마”라는 이름에 대한 지속적인 묵상)은 마음의 파괴를 가져옵니까?
라: 당신이 라마에게 무조건 복종 했다면 그렇습니다.

헌: 초보자에게 있어서 대상에 대한 명상이 탐구를 수행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라: 그렇습니다. 수행자가 마음의 한 점 집중(에카그라타)을 얻으면, 그는 탐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헌: 그러면 수행자들이 아직 초보인 동안에는 탐구를 시작하는 것을 단념해야 합니까?
라: 그에게 가장 매력적인 방법이나 길을 시작하도록 각자에게 맡겨 둡시다. 만약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모든 여러 방법들은 결국 오직 탐구로 이어지게 됩니다. 탐구는 수행자가 안으로 향하는 마음과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 후에야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하며, 그의 마음이 헤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자마자 서둘러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피하고 안으로 향하는 마음 안에 있습니다.
헌: 어떻게 저는 바이라기야(포기, 초연)를 얻을 수 있습니까?
라: 행복의 실제 내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당신을 그것으로 이끕니다. 지금 당신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이 바깥 세계로부터 당신에게로 흘러들어오거나 당신의 마음이 외부의 대상 세계로부터 행복을 흡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리는 무엇일까요? 현현으로 나타난 것은 행복을 유발하기는커녕, 우리의 모든 참담함의 원인입니다. 마음과 감각 지각 대상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얻어지는 즐거움 또한 고통이라는 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욕구는 옳지만 당신은 아비디야마야(무지라는 환영)에 의해 고통과 연관된 일시적인 쾌락이 진짜 행복이라고 현혹되어 왔습니다. 감각 지각들은 단기적인 쾌락을 낳으며, 더욱이 그것은 그 후에 고통을 유발합니다. 고통과 쾌락은 세상에서 서로 번갈아 나타납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고통과 연관된 행복과 나의 최고의 행복 사이의 차이를 알아내고, 현명하게 자신을 후자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바이라기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각적인 매혹에 대한 추구가 당신을 단지 고통으로만 이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당신은 그 방향으로 갑니까? 그것은 마음의 오래된 습관(바사나)들이 끌어당기는 힘 때문입니다. 이 습관들이 사라진 후에, 당신은 지속적인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그 습관들은 하루에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랜 기간의 아비야사(수행)와 꾸준한 바이라기야에 의해서만 사라질 것입니다.
헌: 마음을 안정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 구루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라: 구루는 단지 그대는 그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고 제안할 뿐입니다. 그는 당신이 얻지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을 당신에게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헌: 마음은 잠시 동안만 평화롭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래된 짓궂은 경향성이 마음을 지배하여 그것이 빗나가게 합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 당신은 계속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을 그 근원에 유지하는 것에 성공할 것입니다. 마음이 그 근원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가 그것의 자연적인 상태입니다. 그 자연적인 상태를 되찾기 위해서는 엄청난 싸움이 불가피합니다.
헌: 싸움에서 우위에 있기 위해서 제가 제대로 알아야 할 하나의 사실은 무엇입니까?
라: 당신의 의식의 영역 안에 놓이는 어떤 것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 마음이 안으로 이르게 하는 길로부터 당신을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헌: 그렇다면 비전들이 반드시 영적 진보의 징후는 아닙니까?
라: 비전들에 속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마십시오. 마음이 끊임없이 가슴의 빛 속에 잠기게 하는 일에만 계속해서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가슴의 빛 안에 영원히 잠겨 있으십시오.
헌: 그것(마음을 끊임없이 가슴의 빛 속에 잠기게 하는 일)을 위해서는 구루의 은총이나 신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라: 마음이 안으로 향하는 것과 은총은 똑같은 것입니다. (원어) 왜 밖에서 은총을 찾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헛되지 않습니까? 당신의 바깥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헌: 그러면 은총은 제 노력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라: 노력은 당신이 은총을 얻도록 허락은 하지만, 그럴 자격은 없습니다not deserve it.
헌: 어떤 사람이 신의 은총이나 나의 은총에 대한 선택된 수혜자라는 표시는 무엇입니까?
라: 당신이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은총의 개념화에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이 안으로 향하는 것과 은총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은총은 안으로 향하는 마음에 내린다고 합니다. 은총은 본질적으로 나와 동일합니다.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이 포스팅은 쿠팡파트너스 및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