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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의식

불멸의 의식

라마나 마하리쉬 (지은이), 맥 마틴 (엮은이), 크리슈나다스(김병채) (옮긴이)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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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의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불멸의 의식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힌두교
· ISBN : 9788991596993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4-10-30

책 소개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바가반의 주된 가르침이며 직접적인 길이자 의식인 “난 야르(Nan Yar,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2부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변함없는 의식을 다루고 있다. 3부는 자기 탐구, 자아, 마음, 환생과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목차

제1부

1. 베다
2. 내면의 구루
3. 구루의 은총
4. 난 야르
5. 브라만
6. 부마
7. 가슴
8. 실재
9. 자각
10. 고요하라
11. 희열
12. 은총
13. 침묵
14. 홀로 있음
15. 평화
16. 나
17. 나에 머무르기
18. 시간 너머의 나
19. 행복

제2부

1. 사랑
2. 신
3. 삿
4. 의식
5. 존재
6. 있음
7. 그것
8. 이다
9. 보는 자
10. 투리야티타
11. 자그라트 수숩티
12. 세 가지 상태
13. 갸니
14. 성자의 고요
15. 신의 발아래
16. 깨달음
17. 나는 항상 깨달아 있다

제3부

1. 길
2. 나 망각
3. 무지
4. 마야
5. 몸
6. 자기 탐구
7. 나 생각
8. 자아
9. 마음
10. 바사나
11. 만트라
12. 타파스
13. 환생
14. 고통
15. 아루나찰라
16. 프라닥쉬나
17. 나마스카라
18. 지혜의 이슬

저자소개

라마나 마하리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는 1879년 12월 30일 남인도 티루출리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죽음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1896년 7월에 그는 갑자기 찾아온 매우 강력한 죽음의 공표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늘 깨달음의 상태에 있었다. 1896년 9월 1일, 그는 아루나찰라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인 라마나스라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는 여생의 마지막ᄁᆞ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말과 침묵으로 가르치다가 1950년 4월 14일 마하 사마디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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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마틴 (엮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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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크리슈나다스)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포항이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마음의 행복 이상의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윗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을 만나면 그것이 충족될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더 확신을 갖기 위하여 믿음이 가는 수녀님에게 물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다. 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제주도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주로 서귀포에서 살았다. 자유로운 생활은 했지만 찾고자 했던 행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모한 생활을 시도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서 장터의 상인이 되고자 하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너무나 놀랍게도 대학의 친구가 제주시 삼도동의 나의 주소지로 찾아왔다. 그는 제주시의 나의 주소를 모른다. 어떻게 물어 찾아왔다. “지도교수님께서 오라신다.” 너무나 고마운 두 분이다. 특히 나의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은인이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했다. 몇 년 뒤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 “산과 들에 있지요.”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어느 산 어느 들 말입니까?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알란디로 가세요.” 알란디의 숙소의 관리인께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지하의 서고로 안내되었다. 책을 한 권 꺼내 드니 나에게 내밀었다. 갸네쉬바리 성자가 쓴 바가바드 기타였다. 처음으로 바가바드 기타와 마주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배웠다.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묘한 상태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윗입술 위에 집중했다. 전적으로 집중하자 명상하는 자가 사라지고 그곳의 세포가 살아 움직였다. 숨을 내쉬자 세포가 산 같이 커졌다. 들이쉬자 산이 없어졌다. 이 신기한 현상에 온통 몰입되었다. 그때는 오전이었다. 오후 명상 시간에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자마자 곧 거대한 산이 있다가 없다가 하다가 드디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상자는 사라졌다. 광활한 빛의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엑스터시의 바다에 빠졌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곳의 성자분께 달려가 물었다. “그것은 사마디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성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면 이 경험을 한다고 알고 곧 잊어버렸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구루와 한 무리의 제자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진리에 이른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파파지를 만나러 갔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에 계시 든 분이 사라졌다. 방이 사라졌다. 질문하고 있던 본인이 사라졌다. 이 현상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 같은 것만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이 현상계에 돌아오자 방이 보였다. 앞에 스승님이 보이셨다. 질문하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붓다라는 말은 자신의 바탕을 안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자신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누구나 붓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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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0. 고요하라

있는 그대로 있어라

* 슈리 바가반은 기도나 영적인 훈련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고요히 있음으로써 진리를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대가 할 일은 그냥 있는 것이지, 이것 혹은 저것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은 “고요하라.”로 요약됩니다.

나는 그저 있는 것입니다. 있으십시오! “나는 이다.”를 경험하는 것은 고요히 있는 것입니다. 나는 신입니다. “나는 이다.”는 신입니다. 나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고요히 있는 것뿐입니다. 무엇이 이보다 더 쉬울 수 있겠습니까?

고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대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이름과 형상이 괴로움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나’는 나입니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것은 자아입니다. ‘나’가 단지 ‘나’로서만 유지될 때, 그것이 나입니다. ‘나’가 옆길로 벗어나서 “나는 이것 혹은 저것이다.”, “나는 이러저러하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자아입니다.

있는 그대로 있으십시오. 필요한 것은 오직 자아를 잃는 것뿐입니다. 늘 있는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도 그대는 그것입니다.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일단 태어나면 그대는 무엇인가에 이릅니다. 그것에 이르면, 그대는 또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수많은 말들을 떠나십시오. 있는 그대로 있으십시오. 그대가 누구인지 보십시오. 그리고 태어남도 없고, 오고 가거나 되돌아감도 없는 나로 머무르십시오.

성경에서는 “고요하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고 말합니다. 신인 나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고요함뿐입니다.

“고요하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여기서 고요함이란 개별성이 흔적조차 없는 완전한 복종입니다. 고요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아십시오. 그러면 고요함이 가득해지고 마음의 동요가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동요는 욕망과 행위자 의식, 성격의 원인입니다. 마음의 동요가 멈추면 고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아는 자, 아는 과정, 아는 대상이라는 셋을 포함하는 상대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고요히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놓아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으로 향하십시오. 마음의 근원이 찾아지면, 마음은 사라지고 나만이 남을 것입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대 자신으로 있으십시오!

나를 깨닫는 것은 고요히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깨달아 있습니다. 내면을 보십시오. 그리고 고요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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