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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99369788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5-12-10
책 소개
목차
만찬 초대장 5
시점 9
쓸모 있기 13
두고두고 되씹게 되는 25
흩어져 하나 되다 37
닫힌곡선 43
첫 피실험자 68
죽음 앞의 말 70
생의 질 84
꺼지려 켜진 불 87
시간 그물 103
돋을새김된 죄 107
단꿈에 빠진 아홉 숟가락 120
특이 손상 125
끝마저 지워질 끝 133
냉장고에 보관된 고래 135
천사의 자전거 타기 150
검게 먹혀든 거울 155
같이 보고 싶어 164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할 순간 169
무엇과 겨루고 있니 186
나를 위해 너를 씻기다 190
부패 그 본연한 흐름 195
제자리걸음의 방향 200
두려움을 나눌 존재 207
어긋난 제구실 214
나도 모르는 나의 꼬리 220
눈 맞기 224
취한 폐가 229
잃었기에 만나는 232
호수의 제안 239
무거운 발 가벼운 머리 241
손님 감상 246
길 잃은 자를 위한 식탁 253
은빛 만찬 262
은비버섯의 여행 271
통과 283
잠 294
저자소개
책속에서
코가 붉다.
얼핏얼핏 뺨이 빛난다.
감긴 눈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지하철의 긴 좌석 중앙에 어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반듯이 세우고 앉아 눈물짓는다. 바로 맞은편에 방금 착석한 윤오는 의문스럽다. 교실에서 예의 2교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여기에서 저러고 있는지. 더구나 저 나이에 눈까지 감고 소리도 없이 울다니.
하도 조용히 우는 나머지, 아이 양옆의 승객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긴 흑발을 얼굴에 휘장처럼 드리운 여자는 긴 다리를 내뻗고 깊은 잠에 빠졌다. 반바지 아래로 허벅지를 드러낸 근육질의 청년은 손바닥 크기의 휴대전화에 빠졌고. 딴 세계에 빠진 둘 사이에 아이가 책갈피처럼 껴 있다. 윤오가 머리를 갸웃한다. 워낙 아이가 가늘어서, 있는 줄도 모르고들 앉은 것인지.
지금 나의 발치에 돋은 식물이 그 버섯이라면?
부위마다 내가 들은 대로이다.
영롱한 은색 갓에 연보라색의 우둘투둘한 점들이 솟았다. 갓 밑면은 미묘한 색이 어우러져 복잡하고도 세밀한 미로를 형성하였다. 걀쭉한 흰색 자루에 달린 턱받이는 작은 구슬이 알알이 박힌 모양이다. 진주 목걸이를 건 것 같다. 밑동은 통통한 물고기가 자루를 덥석 문 듯한 형태이다.
내 눈길을 특히나 사로잡은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갓에 형광 물질을 발라 놓은 양, 둥근 갓만 동동 뜬 것처럼 보인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 버섯도 어스름 속에서 땅 위에 살짝 떠 있다. 앙증맞은 우주선 모형 같다.
무시하고, 가던 길로 내처 가는 것이 나을까.
죽을 쑤려면 곡식이 필요하겠으나 나에게는 버섯과 물뿐이다. 고로 이 두 가지만으로 죽을 만드는 중이다. 은비버섯은 9인분의 죽이 되기를 원하였으니까. 우물에서 길어 온 물을 버섯이 담긴 큰 솥에 반쯤 차게 붓고, 긴 나무 주걱을 한 방향으로 저었다. 그리하자 신기하게도 차츰차츰 점성이 생기어 제법 죽의 됨됨이를 갖추어 갔다. 어쩌면 제 몸에 으늑히 곡식을 품은 버섯이었는지도.
반 뼘밖에 안 되던 버섯은, 다 찢고 나니 제 몸체의 스무 배쯤으로 불어났다. 찢으면 부피가 늘었다. 몇 번 더 찢으면 늘기를 그쳤다. 스스로 9인분을 어림이라도 하듯이 적당한 양에 이르면 더 이상 붇지 않았다. 가리가리 찢길 적마다 가지각색의 향을 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