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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9495401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5-10-20
책 소개
목차
밤섬
바다
벼랑
무중력
여름 숲
대청
책 무덤
문
방
응시
우주
자국
불꽃
속삭임
숲속의 집
언덕 위 하얀 집
바다가 보이는 숲
투명한 창에
연주
흰나비
담벼락
알
굴
아무것도
눈
태풍
신호
그런 밤
점멸
다른 사람
경주
한낮
라디오
자전거
편지
작은 연주회
경로
문장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름비가 지나간 숲에 들어섰다. 막 요리가 끝난 오븐을 연 것처럼, 스팀을 잔뜩 먹인 옷을 안아 든 것처럼 훈기가 끼쳐 온다. 엽록인 짙어진 잎이 내쉬는 숨이 느껴진다. 생명의 기운. 그런 기운을 형상화한다면 눈앞의 풍경이 될까. 한 발을 내딛는다. 희부연한 물의 기운이 몸을 감싼다. 호흡이 확장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더 길고 가뿐해진다. 원시의 산소를 마시는 것처럼.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숨만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숲에서. 살아있다고 느끼면서. -「여름 숲」 중에서
짚을 꼬아 이엉을 엮고 지붕을 올린 집. 흙을 바른 벽과 구들장을 깐 바닥. 대청마루와 광이 딸린 기역자 모양의 집. 중간방과 끝방 앞에는 아궁이가 각각 있고 솥을 걸어두었다. 불을 뗄 때는 창호지 바른 문으로 드나들 수 없어서 끝방에서 중간방으로, 중간 방에서 대청으로 미로처럼 지나다닌다. 끝방 벽에는 찧어 말린 묵은 콩 냄새가 배어 있고 중간방에는 칠이 바랜 궤가 있다. 궤는 잠겼다. 여름이면 대청의 양문을 앞뒤로 열어 바람길을 만든다. 겨울에는 아무리 아귀를 맞추어 닫아도 희미하게 문 우는 소리가 난다. 대청에 누워 할머니 간식함에서 옥춘당 꺼내 먹는 오후. 귀뚜라미 운다. -「대청」 중에서
소파에 몸을 푹 기대어 앉아 지면의 세계에 빠져들어간다. 끝이 없는 것처럼 두툼한 책은 깃털만큼 가뿐하고 어깨도 팔목도 전혀 뻐근하지 않다. 눈은 깜빡이지 않아도 촉촉하고 커피잔은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영차 일어나 춤을 추며 신나게 걸어 들어온다. 차례로 도착한 단어들은 머릿속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원을 돌며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열린 세계는 처음 만난 세계지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 모든 게 전혀 버겁지도 힘겹지도 않고 자연스럽다. 그 속에서 나는 환희에 가득 찬다. -「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