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 (내가 만난 경력단절 여성 이야기)
김정 | 호밀밭
12,420원 | 20210926 | 9791190971638
“오랫동안 세상과 연이 끊어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완성되지 못한 이력서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만난 경단녀 이야기
A는 미대생 시절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출산 후 전업주부로 지낸 지 9년이 되었다. 아이의 스케줄을 고려해 시간 조절이 가능한 강사 일을 알아보았지만, 일에 적응하고 배우는 동안은 무급이다, 우리 입장에 맞춰 즉시 출근해달라, 연구와 회의는 의무이며 무급이다 등의 얘기를 들으며 결혼과 출산, 육아로 멈춘 자신의 시계를 힘없이 바라본다. B는 대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취업해 일에만 매진해왔다. B는 주말에도 회사 산악회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 상사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던 사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내던 사람이었지만, 출산 후 매일 이유식, 기저귀, 쓰레기봉투를 붙잡고 씨름해야만 했다. 13년 차 가구디자이너 C는 8살과 6살, 두 아이의 엄마다. 친정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는 덕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도 안간힘을 쓰고 버티고 있으며 아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업주부 D 역시 두 아이의 엄마다.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어 퇴사했고, 어느새 8년이 흘렀다. 아이를 가까이서 챙겨줄 수 있지만, 그뿐이었다. 아이들이 클수록 돈은 더 필요하다는데, D는 자신의 구직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에 관한 담론은 사회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통계 혹은 데이터로 존재할 뿐이며,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논의가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사연과 이야기들은 조명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 여성의 형태는 다양하다. 회사와 육아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경력을 계속 쌓아나가는 여성, 육아 문제로 전업주부가 된 여성, 아이를 키우며 구직활동을 하는 여성. 간신히 재취업에 성공하며 경력을 이어나가는 여성도 있지만,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회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임신과 출산, 육아가 민폐로 치부되는 조직 내 분위기 속에 움츠러든다. 일과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언제 경력단절 여성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생각지도 못한 높고 두꺼운 벽 앞에서 무기력하게 주저앉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에는 벗어날 수 없는 돌봄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본인이 경력단절 여성이기도 한 저자는 우연한 기회로 책을 쓰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주위에는 홀로 아픔을 삭이는 이들이 여전히 많았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비슷한 지점을 함께 지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으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