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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 잡지 > 기타
· ISBN : 9772765484005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6-04-01
목차
연초공장 005
그래드 풀빵이었잖아 039
정희 075
라운드테이블 111
책속에서
어르신은 연초 공장 입구에 문지기처럼 차렷 자세로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미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굄돌에 지지되어 있는 자전거가 쓰러졌다. 자전거에도 영혼이 있다면 자전거는 지금 미래를 엿보고 기절한 것이다. 언젠가 자전거가 외계에 쏠려 있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 시차 잃은 시점을 갖게 되겠지만, 그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게 하고, 많은 것이 곤란해지고 말 것이다. 이쯤 해두고 어르신의 정신에 다시 불을 켜자.
아내는 거대한 콩나무였다. 아무리 흔들어도 콩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온양온천으로 떠난 신혼 첫날밤 아내는 자신의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고 손찌검을 하는 순간 가위를 들 것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아내의 손이 자신의 깊은 곳에 닿을 때는 좋으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쓸모 없고 쓸모 없는 그것을 더 깊은 곳에 숨겨두어야 할지 몰랐다. 아내에게 버럭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 손찌검이 자랑은 결코 아니지만 다들 자랑처럼 손찌검을 했노라 떠들곤 했다. 어르신은 손찌검 운운하는 세계에서 떠나고 싶었지만, 연초 공장도 아내도 떠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아내가 던진 표주박이나 총채에 맞았을 때도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새벽에 깨어 보릿물 자리끼를 마시다 무심코 흘리곤 했다. 밖에 추우?
펭귄은 내가 말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두어 시간쯤 말없이 붕어빵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했다. 원래 저런 녀석이 아니었는데 뭔가 일이 있으리라는 건 분명했기에 나도 최선을 다해 녀석을 방관했다. 아쉬운 사람이 먼저 말 꺼내겠지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간간이 나를 보고 웃어주는 녀석의 미소만큼은 여전했다. 얼굴 한가득 분칠 아니 녹칠을 한 채로 나를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이 하도 해맑아서 하마터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다 없던 것들이었다고 착각할 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