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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01079318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08-04-01
책 소개
목차
1807년 유럽, 아프리카 지도
제1부
제2부
제3부
시포 출루카 들라미니의 <츠와나 왕국 간략사> 전3권에서 발췌 (1838년)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연대표
리뷰
책속에서
앞마당으로 나온 그는 최근 공작 작위를 받은 넬슨 경을 보고도 침울한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정복을 갖춰 입은 넬슨 경은 피부에 붙어 있는 메달들로 한층 위엄 있게 보였다. 그 메달들은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불을 뿜는 스페인 용이 넬슨이 타고 있던 기함에 불을 붙였을 때 그 열기로 살에 녹아 살에 달라붙은 것이었다. 당시 넬슨은 심각한 화상을 입어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었고 초기에는 사망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다행히 부상을 극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렌스는 많이 회복된 넬슨의 모습을 보자 반가웠다. 턱에서부터 목을 지나 외투의 목깃 안쪽으로 불그스름한 화상 자국이 보였지만 넬슨 경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를 둘러싼 몇몇 장교들에게 성한 한쪽 팔을 활기차게 흔들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흥분한 이스키에르카는 몸을 똘똘 말고 앉아 있었고 야생용들과 테메레르도 숲 너머로 목을 길게 빼고 구경했다. 제인은 모자를 겨드랑이 아래 끼우고 어린 카지리크 용을 단호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흠, 이스키에르카. 네 비행사에게 들으니 네가 이제 정식 복무를 할 때가 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네가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던데 어찌 된 일이지? 명령을 따르지 않는 용을 전투에 내보낼 수는 없어.”
“아!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나도 누구 못지않게 명령을 잘 따를 수 있다고요. 그런데 아무도 내게 멋진 명령을 내려주질 않아요. 싸우지도 말고 그저 얌전히 앉아서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먹이를 먹으라고만 하고. 멍청한 소는 더 이상 먹기도 싫어요!”
이스키에르카는 우울하게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야생용들은 자기네에게 소속된 장교들의 입을 통해 방금 이스키에르카의 말을 전해 듣고는 소가 싫다니 말도 안 된다며 나지막하게 웅성거렸다. 잠시 후 그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제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재미있는 명령뿐만 아니라 따분한 명령에도 따라야 해. 네가 말을 잘 들을 때까지 그랜비 대령이 언제까지고 이 공터에 죽치고 앉아 기다려줄까? 아마도 테메레르에게 돌아가서 전투에 참여하려고 하겠지.”
그러자 이스키에르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마치 용광로처럼 가시돌기에서 수증기를 쉭쉭 뿜어냈다. 그리고 온 몸으로 그랜비를 두 번 칭칭 감았다. 그랜비는 찜통에 들어간 바다가재처럼 푹 삶아질 처지가 되었다. 이스키에르카는 그랜비에게 애원했다.
“나를 떠나지 마! 안 떠날 거지, 그렇지? 나도 테메레르처럼 잘 싸울게. 그리고 아무리 멍청한 명령이라도 따를 거야.”
그리고 이스키에르카는 서둘러 단서를 달았다. “재미있는 명령도 같이 내려주기만 한다면.”
“너 돌아왔구나. 중국은 재미있었어?”
“어, 응. 그래. 하지만 너희들 모두 아파 누워 있는데 나만 여기 없었던 게 마음에 걸려. 정말 미안해.”
테메레르는 이렇게 말하고는 비참하게 머리를 푹 숙였다.
“그냥 감기인데 뭘.” 막시무스는 또 다시 한 바탕 기침을 한 후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곧 다시 건강해질 거야. 분명해. 그저 좀 피곤한 것뿐이야.”
막시무스는 도로 눈을 감고 혼수상태에 빠지듯 다시 잠이 들었다. 날갯짓 소리에 깨지 않도록 테메레르는 날아오르는 대신 조용히 공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버클리는 로렌스를 공터 밖까지 데려다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리갈 코퍼들이 제일 지독하게 앓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체중 때문이지요. 식욕이 떨어져 통 먹질 않으니 근육을 지탱할 수가 없고 그러다가 호흡까지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이미 이 병으로 리갈 코퍼 네 마리가 죽었습니다. 치료약을 찾아내지 못하면 라에티피캇도 다가오는 여름을 살아서 맞지 못할 겁니다.”
라에티피캇보다 막시무스가 먼저 가진 않겠지만 곧 뒤따라 죽게 될 거라는 말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일 테니까. 테메레르가 힘주어 말했다. “우린 치료약을 찾아낼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반드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