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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01092119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09-02-0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우리 시대를 만든 10인의 사상가를 만난다
1. “내게 배운 것을 발설치 마라” : 피타고라스
최초의 철학공동체를 세우다|“개와 곰도 나의 친구일세”|만물은 수로 이루어진다|피타고라스의 유산
2. 플라톤은 왜 호메로스를 질투했을까? : 호메로스
분노하는 아킬레우스|재산보다 소중한 것|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트로이를 찾아
3. 이데아 제국을 격파하라 : 아리스토텔레스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형이상학』의 탄생|『시학』, 창조의 근원을 이야기하다|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사람이 사람다운 사회를 위하여
4. 왕에게 삿대질하는 노인 : 맹자
여민동락과 역성혁명|오륜의 탄생|떠나가는 맹자|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길|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5. 태양을 멈춘 사나이 : 코페르니쿠스
교회 안에서 자란 혁명의 씨앗|지구중심이론의 역사|누더기가 된 지구중심이론|목숨을 건 주장, 태양중심이론의 탄생|진리는 숨겨지지 않는다
6. 갈릴레이가 의대를 중퇴한 까닭은? : 갈릴레이
첫째 날의 대화:지구중심이론의 세 가지 모순들|둘째 날의 대화:지구는 스스로 돈다|셋째 날의 대화: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다|절망을 딛고 일어서다
7. 순결한 15억 영혼의 지도자 : 무함마드
이슬람은 기독교의 형제|이슬람교의 탄생| 진정한 무슬림의 길|문명의 전달자, 이슬람
8. “전하, 통촉하시옵소서!” : 세종
한글, 너는 내 운명|비밀리에 진행된 한글개발 프로젝트|전하, 아니되옵니다!|훈민정음 속에 깃든 철학적 원리
9. 진리의 바닷가에 살았던 소년 : 뉴턴
흑사병의 역설|거인의 어깨에 올라|만유인력의 씨앗|천재는 없다|케플러, 우주의 음악을 듣다|과학혁명, 완성되다!|진리의 바다 앞에 선 소년
10. 공자, 남녀상열지사를 편집하다 : 『시경』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다|거짓 없는 옛사람의 마음|만리장성의 눈물|옛사람들의 삶과 노래|우리 안의 『시경』
에필로그: 그대 아직도 떠나지 않았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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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뉴턴과 만유인력의 발견》
1637년 마침내 참된 운동법칙이 발견됨으로써 천문학의 난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였다. 위대한 천재들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사건건 뉴턴과 대립했던 로버트 훅, 크리스토퍼 렌, 그리고 혜성에 이름을 남긴 에드먼드 핼리가 중력법칙 증명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법칙은 알았지만 그걸 증명할 길이 막연하던 핼리는 뉴턴에게 그걸 물었다.
“이봐 뉴턴 자네, 만약 태양에 끌리는 힘(만유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행성은 어떤 모양의 궤도를 그리면서 돌게 될까?”
“그거야 타원이지.”
“자넨 그걸 어떻게 아는가?”
“계산해본 적이 있거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책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명 『프린키피아』)는 이렇게 태어났다. 뉴턴은 그 증명을 핼리에게 보냈고, 그것이 엄청난 것임을 직감한 핼리는 뉴턴에게 그걸 발표하라고 조른다. 1684년부터 거기 매달리기 시작한 뉴턴은 3년간 쓴 끝에 훨씬 더 거대한 지적 우주를 탄생시킨다. 1687년,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와는 완전히 작별하고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우주를 열기 전까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지적 혁명이 완성된다.
자연과 자연법칙은 모두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때 신께서 “뉴턴이 있어라!” 하시매 모든 것이 밝아졌다.
Nature and Nature’s law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알렉산더 포프
- 본문 중에서
《비밀리에 추진된 ‘한글개발 프로젝트’》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세종은 자신의 연구 과정을 신하들에게 숨겼던 것 같다. 비밀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1443년 세종 25년.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날짜는 12월 30일이다. 희한한 일이다. 왜 한 해의 마지막에 발표했을까?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에 조선 사람들은 웬만한 일은 다투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기사는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것도 단 두 줄의 문장으로 처리되었다.
“세종 25년 계해년(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정월은 새것을 맞이하는 일로 분주하다. 사대부들은 만나 야단법석을 피웠을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글자가 어디 있느냐고. 어험! 왕이 황당무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 조정의 질서를 어지럽히니, 이를 어이할꼬? 단죄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여 떠들었던 모양이다. 최만리(崔萬理)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붙자.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