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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현대철학 일반
· ISBN : 9788901165905
· 쪽수 : 252쪽
책 소개
목차
이 책에 관하여, 또한 추천의 글을 대신하여_스티븐 마세도
제1부_강의
―-첫 번째 강의_삶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강의_삶은 왜 중요한가
제2부_논평
―첫 번째 논평_무모한 열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_존 쾨테
―두 번째 논평_뭔가를 성취해야만 삶은 의미 있는가_로버트 애덤스
―세 번째 논평_객관적인 가치를 담아야만 의미 있는 삶인가_노미 아르팔리
―네 번째 논평_중대한 관여와 벌집 심리학_조너선 하이트
제3부_답변
―논평에 대한 답변_객관적으로 의미 있는 삶_수전 울프
고마움을 전하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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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방문하거나,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거나, 밤을 새워 아이의 할로윈 의상을 만들 때 나는 이기적 또는 도덕적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실에서 잔뜩 예민해진 동생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온종일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절대로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허리를 다칠 각오로 친구네 집 소파를 나르거나, 내 아이가 나비 의상을 입어야 해서 ‘의무감’에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것도 아니다. 이런 행동은 자기이익을 충족시키거나 도덕적인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위해 뭔가 기여하겠다는 사명감 때문도 아니다.
다시 말해 자기이익이나 의무감 또는 비인격적이고 공평한 동기를 갖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실천이성의 이원론적 입장이 우리가 ‘사랑의 근거(reasons of love)’라고 말하는 동기를 배제하는 것처럼, 내가 보기에 이원론적 입장들은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개인을 초월한 목표를 추구하도록 자극하는 다양한 동기들까지 배제하고 있다. 가령 글을 쓰고 첼로를 연습하고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경우와는 달리, 우리가 개인의 차원을 떠나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pp.28-29(‘첫 번째 강의: 삶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어떤 활동이나 과제가 삶의 의미에 잠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객관적인 가치를 확보하고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철학적인 입장이나 이론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삶의 의미와 관련해 아무런 답변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또는 그렇게 보이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여러분이 삶의 의미에 관한 기존 생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측면에 집중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그저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느끼는 공허함을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리의 가족과 동료들이 이런 고민을 통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아마도 그 변화는 간접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적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주요한 활동이나 과제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된다.
---pp.97-98(‘두 번째 강의: 삶은 왜 중요한가’ 중에서)
나는 실패한 계획 속에서도 얼마든지 최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전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실패 사례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Jesus)의 삶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실패 사례로는 나치(Nazi)로부터 독일을 구원하고자 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의 히틀러 암살 계획 ‘발키리(Valkyrie)’ 작전을 들 수 있다. 쿠데타를 꿈꾸었던 슈타우펜베르크의 야심찬 계획은 1944년 7월 20일 운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고, 그로 인해 슈타우펜베르크 자신은 물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특히 그의 마지막 삶은 그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그리고 내게) 무척 고귀한 것으로 보인다.
슈타우펜베르크 스스로는 실패한 자신의 계획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발견했을까? 그에 관해 읽었던 내용에 비춰보면 그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실패의 순간에 크게 낙담한 나머지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져 좌절감에 빠졌다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이 경우 우리는 그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pp.138-139(‘두 번째 논평: 뭔가를 성취해야만 삶은 의미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