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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01220673
· 쪽수 : 676쪽
· 출판일 : 2017-12-21
책 소개
목차
1~32장.
리뷰
책속에서
왕자가 나를 제압했다. 그러자 정말 겁이 나서 도망치고만 싶었다. 내가 그의 손을 밀어내며 외쳤다.
"왕자님, 저는, 제발요, 잠깐만요."
말이 뚝뚝 끊어지며 외마디 소리처럼 나왔다. 예상치 못한 저항에도 왕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조금 조급해졌을뿐이다.
"자, 자, 괜찮대도."
왕자는 말에게 고삐를 씌워 진정시키듯이 내 손을 양옆으로 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내 원피스의 허리끈은 단순한 나비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왕자는 이미 끈을 느슨하게 풀었고 이제 치마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치마를 내리고 왕자를 밀치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소용 없었다. 그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나를 잡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바지로 손을 뻗자 다급해진 내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바나스탈렘."
내 몸 밖으로 부르르 힘이 뿜어져 나갔다. 코르셋과 진주 단추가 손아래서 주르륵 닫히고 벨벳 치마가 우리 사이를 벽처럼 가로막았다. 왕자가 급하게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벽에 기대어 몸을 떨며 숨을 고르는 나를 왕자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어조였다.
"넌 마녀로구나."
"진즉에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나는 깜짝 놀라 카시아를 바라보았다.
"너한테는 항상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거든. 넌 숲으로 들어가면 제철도 아닌 과일이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꽃들을 따오곤 했어. 어렸을 때는 소나무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내게 전하기도 했고. 너희 오빠가 상상 놀이를 한다고 비웃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리고 네 옷은 항상 엉망이었잖아……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그 정도로 더럽힐 순 없거든. 그리고 난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한번은 나뭇가지가 네 치마를 잡아채는 걸 본 적도 있어. 정말로 가지를 쭉 뻗어서……."
내가 움찔하며, 말도 안 된다고 하자 카시아가 말을 멈췄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 안에 마법이 흐르고 있었다는 말을, 그러므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카시아를 놓아줘!"
나무에게 날카롭게 외쳤다. 진흙이 범벅이 된 주먹으로 나무의 몸통을 두드렸다.
"카시아를 놓아줘. 안 그러면 널 쓰러뜨릴 거야! 풀미아!"
분노에 차서 외친 나는 다시 땅으로 몸을 던졌다. 내가 주먹으로 내리치는 곳마다 빗발이 내리치는 강물처럼 솟아오르고 부풀어 올랐다. 마법이 내 안에서 급류처럼 쏟아져 나왔다. (중략)
갈라진 틈새로 손을 넣어 껍질을 옆으로 벌리고 카시아를 잡았다. 팔이 무겁게 축 늘어져 있었다.
내가 카시아의 손목을 잡아당기자 카시아가 헝겊 인형처럼 허리를 접으며 시커먼 틈새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무겁게 늘어진 카시아의 손목을 양손으로 잡고 뒤로 끌어당겨 카시아를 눈 위에 눕혔다. 피부가 병적으로 창백했다. 햇빛이라고는 한 번도 쐬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봄비 냄새가 나는 녹색 수액이 흥건하게 몸을 덮었다. 카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