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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25534077
· 쪽수 : 246쪽
책 소개
목차
1부 빅터의 정체를 밝혀라!
2부 무단침입 걸(Girl), 캐시의 활약
3부 죽음과의 싸움
역자후기
리뷰
책속에서
1월 30일, 낮
(원숭이의 시간)
* 어젯밤 남친에게 차였다.
* 오늘 아침 엄마와 피 터지게 싸웠다.
* 오후에 볼 수학 시험을 까먹고 있었다.
<일그러지는 화면. 우리의 주인공 캐시의 아침 장면을 회상하기 위한 플래시백 음향 효과 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야간 교대를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팔꿈치 안쪽에 생긴 가렵고 아픈 자국을 긁고 있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엄마에게 손목을 잡혔다. 그 튼튼한 간호사의 손으로 어찌나 억세게 잡았던지,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변했다.
“왜 이래요? 아프잖아요!”
엄마는 내가 긁던 자리를 철썩 때렸다.
“내가 주사바늘 자국을 모를 것 같니? 내가 바본 줄 알아?”
“하, 웬일이야. 그니까 지금 내가 마약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억울했다.
“엄마 요즘 다시 술 마셔요? 날 그렇게 몰라요?”
엄마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양호 선생님한테 주사를 맞았다고 하려는 거야? 엄마가 전화해볼 거야, 캐시. 빨리 짱구 굴려라. 그럴싸한 거짓말을 생각해내.”
“정말 짜증나!”
나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소리를 꽥 지르고 밖으로 나왔다. 쾅, 현관문을 요란스레 닫으면서.
엄마는 현관 앞에 서서 온 세상에 다 들리도록 고래고래 악을 썼다. “매일 밤 응급실에서 너 같은 골빈 애들을 본다고! 너 학교에서 잘리고 싶니? 예술가라도 될 거야? 이게 세상의 현실이야, 캐시. 너 누가 이 집을 샀는지 알기나 해? 내가 샀어. 너희 아빤 내가 돈을 벌어오니까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그림만 그렸어. 그러면서 빈둥거렸지. 너도 학교를 때려치우는 게 소원이라면 좋다, 이거야. 맘대로 해. 난 그저 네가 겨우 졸업이나 하면 남자친구가 사람 좀 만들어주려나 했어. 근데 어쩐다니, 넌 졸업을 못 할 텐데.”
-> 엄마에게 말했어야 하는데. “걱정 말아요, 엄마. 안 그래도 차였으니까.” 플래시백 - 1부 중에서
노파는 100달러짜리 비슷하게 생긴 지폐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분명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나 미얀마 돈인 것 같았다. 대통령이나 왕의 얼굴 대신 절반은 호랑이 같고 절반은 말 같은 이글거리는 짐승을 탄 대머리 아기가 그려져 있다는 점만 빼면. 그리고 윗부분에 ‘Hell Bank Note’, 즉 황천은행지폐라고 적혀 있었다.
“저에게 황천 돈이 필요하다고요? 물론 필요하겠죠. 당연하죠. 근데 왜요?”
“넌 돈이 필요해. 나도 돈이 필요해.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들, 그들도 돈이 필요하지.”
“왜요?”
노파는 어깨를 으쓱했다.
“죽은 사람들도 물건을 사잖아. 음식도 사고 옷도 사. 그리고 천국에도 가지.”
주인 노파는 어지간히 둔한 계집애를 다 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죽은 사람들이 천국 갈 때 공짜로 간다고 생각하니?”
노파는 만국 공통 보디랭귀지로 돈을 뜻하기 위해 손가락을 마주 비볐다.
“천국 문지기도 돈을 원해. 너희 죽은 자들은 그에게 황천 돈을 쥐어줘야 해. 가져가.”
내가 꿈쩍도 안 하자, 노파는 조급하게 몇 장을 떼어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가지라니까!”
“이걸로 뭘 어쩌라고요?”
노파는 가게 안의 후미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잠시 뒤 작은 철제 화로를 가지고 돌아왔다. 화로 뒤편에는 조그만 위령탑이 납땜으로 붙어 있었다. 그것은 숯불 화로보다 약간 작은 장난감 탑이었다. 주인 노파는 그것을 유리 진열장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이제 불을 붙여!” - 2부 중에서
빅터는 칼을 들고 그녀를 향해 달렸다. 그는 빨랐다. 믿을 수 없을만큼 빨랐다. 그녀는 더 빨랐다. 흐릿한 하얀 덩어리의 움직임. 은빛 날개를 가진 나비의 반짝거림. 그들은 자리를 바꾸었다. 빅터의 얼굴 양쪽에서 붉은 피가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아무렇지 않게 남자를 때릴 수 있어.”
준이 말했다.
빅터는 피로 범벅이 된 뺨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알아.”
뤼 조부는 검은 머리카락이 쏟아져 나온 항아리 옆에 무릎을 꿇었다. 빅터가 그를 향해 달려갔다. 노인은 바로 옆에서 준이 빅터의 얼굴 한쪽을 정통으로 걷어차는데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빅터는 샌드백처럼고꾸라졌다.
“아버지의 유물을 내버려두라고 경고했을 텐데.”
준이 말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버지는 아주 감상적이 되셔. 살아 있는 것들한텐 별로 그러시지 않지만.”
준이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이봐, 캐시. 네 남자 친구를 좀 보라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분명 칼로 베인 빅터의 얼굴 상처에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청동 칼을 쥐고 있는 손의 불에 덴 자국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총을 그렇게 맞았는데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죽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3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