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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기타 명사에세이
· ISBN : 9788925556017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5-04-30
책 소개
목차
1장 야구라는 무모한 도전
개구쟁이 알에서 야구선수가 깨어나다 / 표정이 아닌 공으로 말하라
지름길로만 갈 수는 없다 / 미련한 끈기도 뛰어난 재능이다
돌파구는 합리적으로 찾자 / 바닥을 찍어야 다시 뛰어오를 수 있다
친구 송산과의 인연 / 마침내 프로의 문이 열리다
2장 9회말 인생의 시작
프로의 비정함을 맛보다 / 앞으로 할 수 있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
완벽한 데뷔전 / 9회말 인생이 시작되다 / 데뷔 첫해 한국시리즈에서
쉽지 않은 상대에게 이겨야 하는 이유 / 우승을 하면 좋은 것 / 이승엽 선배와 맞대결
팀 전체의 눈빛이 달라졌다 / 기적은 그리 멀지 않았다 / 가장 짜릿했던 세이브의 여운
3장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아시아 최다 세이브 신기록 / 우승은 돌부처도 춤추게 한다 / 시한폭탄에 불이 붙다
동거남들과의 즐거운 경쟁 / 벼랑 끝의 절박함 / 마무리캠프의 교훈
오~승환 세이브 어스 / 10초 동안의 블론세이브
4장 넓은 무대로 떠날 자격
경기장 밖에서 저지른 블론세이브 / 트리플크라운 달성 / 6실점의 악몽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 / 경기를 지배하는 순간 / 해외 무대를 향한 시선
250세이브의 통과점 / 단 하나의 피안타에 승패가 엇갈리다 / 확률 제로의 좁은 문을 뚫다
5장 이 순간은 나의 것이다
해외 무대를 향한 첫걸음 / 가족이 되기 위한 노력 / 돌부처의 부드러운 커브
대호와의 일본 첫 맞대결 / 시즌 막바지의 연투 / 클라이맥스 시리즈 개막
한신과 요미우리의 라이벌 전쟁 / 나는 마무리투수 오승환이다
칼럼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는 누구인가
리뷰
책속에서
아들만 둘을 보신 부모님은, 셋째가 딸이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1982년 7월 5일, 전북 정읍의 한 산부인과에서 셋째마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아쉬움이 무척 크셨던 것 같다. 얼마나 아쉬우셨는지, 큰형과 작은형이 아기였을 때 입은 옷들이 있었음에도 여자 아기 옷을 새로 구해 나에게 입히셨다. 세 살 때쯤인가는 예쁜 쌍꺼풀이 생기라고 눈에 테이프를 붙여 주셨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다. 원피스를 입고 머리까지 양쪽으로 곱게 땋은 4살 때의 내 사진이 남아 있는데, 사진 속의 나는 영락없는 ‘막내딸’로 보인다. 그러나 나의 ‘막내딸 노릇’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모님의 희망과는 반대로, 나는 너무나 전형적인 개구쟁이 사내아이였다.
프로지명을 앞두고 미래가 결정될 시기에 투수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평생 홈런은 딱 한 개에 발 빠른 것 빼곤 잘하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외야수에게 관심을 가질 프로팀은 없었다. 고3에게 프로 신인 지명은 인생을 바꿀 사건이지만, 내겐 남의 일이었다. 눈과 귀를 닫고 운동만 했다. 어느 날 혼자 운동장을 뛰고 숙소로 돌아오니 동기들이 아무도 없었다.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다 같이 PC방에 갔다고 했다. 게임하러 갔나 싶어 나도 PC방으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이 모니터 하나에 다 매달려 있었다.
“무슨 일 났냐?”
“너 어디 아프냐? 오늘 프로 신인 드래프트날이잖아”
차라리 끝까지 모르는 게 나을 뻔 했다. 모니터에 동갑내기 친구들 이름이 차례로 떴지만, 내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른 학부형들로부터 “승환이가 어쩌다 저렇게 됐어요”라는 질문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인사처럼 듣고 다니셨다. 불과 2년 만에 나는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유망주에서, 모두가 불쌍히 여기는 낙오자로 추락한 것이다.
잠시 스트레칭을 멈추고 후지카와와 이종범 선배의 대결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2스트라이크에서 3구째를 맞춘 타구가 이종범 선배의 정강이를 때렸다. 보는 내 입에서 절로 ‘악’ 소리가 났다. 한참 고통스러워하던 이종범 선배는 간신히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순간 우리가 경기하고 있는 이 큰 경기장이 무등경기장인 것만 같았다.
“이! 종! 범! 이! 종! 범!”
아픈 다리로 스윙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선배가 공을 쪼갤 듯 방망이를 휘둘렀다. 후지카와의 빠른 직구가 그보다 더 빠른 스윙에 걸려들었다. 총알 같은 타구가 유격수 키를 넘어 좌중간을 갈랐다. 2점을 얻었고, 이종범 선배는 3루까지 내달렸다가 야구 역사상 ‘가장 환한 웃음의 주루사’를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포효하며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