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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호러.공포소설 > 외국 호러.공포소설
· ISBN : 9788925574431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4-11-14
책 소개
목차
결산의 관
선택의 상자
귀환의 항아리
분노의 돌
황금잔
천부의 재능
무결의 인간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어머, 고상한 맛이네.”
이 말은 곧, 간이 약하다는 소리다.
“그렇게 아끼지 말고 소금이든 설탕이든 더 써라. 어머님이 절약을 많이 하셨나? 얼마 전에도 고상한 차림이었지?”
이 말은 곧, 우리 집과 어머니가 가난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말이야, 아무래도 이치카가 말이 너무 느린데 진찰을 받아보는 게 좋겠어.”
남편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남편은 더러운 소리를 내며 된장뭇국을 후루룩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정리된 옷 서랍에 주저 없이 손을 쑥 집어넣더니 양말을 움켜쥐었다.
남편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와 이치카와는 눈 한번 맞추지 않고 나가버렸다.
내가 엉망진창이 된 서랍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어머니 기미코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시냐고 묻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네 설교라고 그런 식으로 무시하는데 말이다.”
기미코는 남편과 얘기할 때와 달리 나와 얘기할 때 목소리가 한 톤 낮다.
“무시할 리가 있겠어요.”
애써 밝게 대답했으나 내가 생각해도 목소리가 너무 떨렸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간사이 사투리가 전염된다. 간사이 사람들은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이 쓰는 사투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화가 난다는 길거리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하물며 기미코는 결혼하고 간토에서 산 세월이 더 긴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투리를 고수하는 사람이다.
예상대로 기미코의 성을 돋우고 말았다. 안 그래도 가는 눈을 더 날카롭게 뜨고 나를 노려본다.
“아주 개무시를 하지.”
맞아요. 당신을 정말 멍청한 늙은이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그 정도로 강한 성격이라면 얼마나.
“그렇지 않아요.”
입가를 힘껏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입가가 긴장해 부들부들 떨렸다.
기미코는 내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노인네라고 무시하지? 아, 정말 세상 무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