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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27417002
· 쪽수 : 552쪽
· 출판일 : 2016-04-15
책 소개
목차
할아버지의 가르침
PART 1. 뉴욕
내 이름, 독수리 심장
PART 2. 루트 66
아버지의 피
PART 3. 애리조나
창공을 나는 날개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마후유(眞冬), 이름이 왠지 춥게 느껴지네.”
그 말이 지금도 귓속에 남아 있다.
아버지가 죽어 보스턴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할 새 친구 시노자키 마후유예요.”
편입해 들어간 초등학교의 담임선생이 교단 옆에 그녀를 세워 놓고 소개한 후, 마치 사족을 갖다 붙이듯 그렇게 말했다. 이름이 왠지 춥게 느껴지네.
그녀의 일본말을 이상하게 여긴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친구끼리 따돌리면 안 되죠. 사이좋게 지내요”라는 말을 염불 외듯 반복할 뿐, 결국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선생. 둔감해서 그랬지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지금은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물론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다니기 시작한 첫날부터 마후유는 학교도 일본도 딱 싫어졌다.
뉴욕 시티.
처음 이 도시를 봤을 때의 인상을 마후유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거대하고 험준한 산을 연상케 하는 맨해튼의 빌딩들. 햇살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나는 유리의 도시.
영화 등에서 보아 익숙한 것과 똑같은 광경이 수백, 아니 수천 배 스케일로 눈앞에 펼쳐졌다. 적어도 열 가지 이상의 인종을 태운 버스가 빌딩 숲 사이로 멀어져 가면 그녀는 자신이 나무 둥치를 기어 다니는 벌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응축시킨 도쿄를 백배 정도로 확대해 놓은 듯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인종의 도가니’ 따위의 말은 이미 고리타분하다. 서로 다른 인종이 쉽게 섞일 리 없으니, 섞이기를 굳이 거부하며 각 민족의 색깔을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지금은 ‘인종의 샐러드 볼’ 또는 ‘모자이크’라는 표현이 쓰이고 있다. 마후유가 매력을 느낀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고, 뉴욕 대학교를 선택한 것도 원래는 사는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서였다. 그야말로 일본적인 사고방식, 의리, 교제, 배려, 침묵, 얼버무림, 비아냥 …… 그런 것들을 다 떨쳐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 도시에서 살면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비는, 좋아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마후유는 생각했다.
비는 평소의 더러운 거리를 아름답게 변모시킨다. 눈에 익은 광장이 불현듯 낯선 표정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눈에 거슬리는 배경은 전부 거무칙칙하게 가라앉고 선명한 색감만 떠올라 모든 것의 윤곽이 종이에 번진 잉크처럼 애매해진다. 그렇게 현실감이 사라진 풍경은 열에 시달리며 꾸는 꿈처럼 두서없다. 그런 불안함이 오히려 기분을 차분하게 해 준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조국에서 추방된 나그네처럼 불안해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이 이방인이 아닌 것처럼 여겨져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