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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27802044
· 쪽수 : 104쪽
· 출판일 : 2011-04-28
책 소개
목차
명자나무 우체국
민물고기 주둥이
스위치
나뭇잎/나뭇잎들
사물 A/B
겨울섬
평생(平生)
부음
사막에 숨는다면
투루판의 포도
테라코타
진흙 얼굴
봄밤
저녁의 나귀
다행이다
천둥 같은 꽃잎
뻐꾹채라는 음악
빈 둥지
사막의 강을 와디라 부른다
낙타와 낙타풀
양이두로 상상하기
나무로 만든 옛 편지, 목독
어떤 꽃은 차라리 짐승이고
또 어떤 벌레는 차라리 꽃에 가깝다
그때 백열등이 늘 켜져 있었다
의자를 기다린다
맛있다
숲
초롱꽃
진눈깨비
고양이 키우기
느린 발자국
등
개
회색과 노란색
내 몸에서 연어를 잡다
전봇대로 남은 새
소금쟁이
육체라는 푸줏간
표준어와 방언이 뒤섞인 오래된
백과사전의 나무 항목에서
충수염
검은 산
경계
알(?)
잎새들
청춘
피아니스트
외투
파미르 고원
눈 위의 발자국
무너진 다리
호수
국경
하루 종일
내 사랑은 런던에 있다
촐타크라는 산에서 만난 절망
얌드록초 호수
할아버지 병문안 가기
귀
붉은 기와
베네치아를 떠나자
구름
순수
해설 감각의 흐름, 이후 · 박수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부음
죽은 자의 육체가 누런 봉투처럼 납작해졌다
육체란 이처럼 자유로울 때가 있어야 하는 법
갑작스런 부음이 내 귀에 혓바닥을 날름거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불온하게 속삭인다
각을 뜬다는 말이 짐승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장의차는 사각형, 금방 죽은 자에게서 떼어낸 깁스한 다리이다
내 몸의 옹이는 모두 닫히지 않는 문짝에 모여 있다
마치 해빙을 되풀이하며 추운 밤과 햇빛의 성질을 모두 간직해야 하는 생선의 육질 같아 자꾸 가렵다
내가 토악질을 한 가로수에서도 가지 부러진 곳을 제쳐두고 많은 옹이가 눈에 뜨인다
다른 나무가 건드린 물집이다
창문을 지나가는 덩굴이 멈칫거리는 건 너무 많은 불빛과 마주쳤던 탓인가
다행이다
다행이지 않은가 모든 삶을 알지 못하는 것이,
시선이 닿지 못하는 첩첩 산 뒤가 후생인 것처럼,
의심투성이 고비 사막에서 티베트까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이 좌우로 나누는 것도 생이다
먼지로 상징되는 건 전생이고 신기루로 나타나는 건 후생,
다음 생이 후생이기 전, 이미 그 생들은 서로 어루만지고 위로하고 있다란 느낌은 길 없는 사막에선 흔하디흔하다
저 희박한 산소라면 내 몸의 일부는 아가미일 것이고
내 죄마저 헐떡거리는 날숨에 앞자리를 내준다
창탕 고원에 도착했을 때 목숨 같은 초록이 달려와서 펼쳐놓은 이끼류에 나도 엎어졌다
사막이 숨는다면
내 몸에 터 잡은 사막이 느껴지는데
어디건 맘껏 울음 터뜨릴 저수지라도 쌓아볼까
뱃속의 책을 다 끄집어내어 햇빛에 말릴까
나, 없어지면
모래구릉 하나 봉분처럼 솟거나
모래웅덩이 움푹 파일 텐데
필생의 소리 한 번 내고 부서지는 종(鐘)의 울음이 들렸다면
어느덧 나는 모래사막에 숨은 거라
나, 지금 바닥도 없고 위도 없는 중심을 이해하는 중이다
신기루에 경첩 달아 문 열고 싶은 거라
날 삼키고 지평선과 노을마저 합쳐질 때
사막은 제 몸의 물기 다 퍼내고
여윈 몸으로 묵언을 준비하는데
나, 견디지 못하고 철들면서부터 줄달음쳐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