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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

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

(영천문학지도)

김희준, 백무산, 손진은, 송재학, 이종문, 이중기 (지은이)
  |  
신생(전망)
2023-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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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

책 정보

· 제목 : 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 (영천문학지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작가론
· ISBN : 9788979736205
· 쪽수 : 288쪽

책 소개

영천은 주변 어느 지역보다 걸출한 문장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각각의 작가들이 시대와 개성과 경향을 달리하지만 지역성으로 꿰어보는 시도로 ‘영천문학지도’ 『조홍감 붉은 가을 울음 깊은 들녘이여』를 기획했다.

목차

책을 펴내면서

01 노계, 입암에서 노래를 꽃피우다
02 몸으로 쓴 근대, 파격의 자기혁명사
03 북으로 간 시인, 정희준은 누구인가?
04 그 ‘외나무다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05 슬픈, 그러나 따뜻한 한 편의 동화
06 영천포로수용소 세탁부 갑례와 반공포로 남편
07 자양면을 무대로 한 세 편의 소설
08 하근찬 문학의 뿌리, 치문학교
09 장편 소설 『도동 사람』의 영천지역 시공간을 걷다
10 시장, 그 낮은 삶의 예배 처소
11 영천 생각
12 『영천아리랑』 ‘억수 무덤’과 『시월』의 ‘진혼가’

저자소개

백무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 『그 모든 가장자리』, 『폐허를 인양하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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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과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198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이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소월시문학상과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 얼굴』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날짜들』 『검은색』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등의 시집과 산문집 『풍경의 비밀』 『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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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시집 『식민지 농민』을 펴내고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 『다시 격문을 쓴다』, 『오래된 책』, 『시월』, 『영천아리랑』, 『어처구니는 나무로 만든다』가 있으며, 연구서 『방랑자 백신애 추적보고서』와 『원본 백신애 전집』(편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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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저녁밥 찾는 소리』 『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 『묵 값은 내가 낼게』 『아버지가 서 계시네』 『그때 생각나서 웃네』 등과 시선집 『웃지 말라니까 글쎄』, 산문집 『나무의 주인』이 있다. 한국시조작품상,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역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계명대 한문교육과를 정년 퇴임하고, 성주 가천의 가야산 농막에서 칠불봉 쳐다보며 잘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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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산문집 『눈 내리는 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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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옛날 주소, 영천군 영천읍 교촌동 251번지

우리 소설 중에서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된 작품이 있다. 그게 어떤 작품일까? 만약 당신이 이 질문 앞에 세워졌다면 어떤 표정을 짓겠는가? 참 난감할 것이다. 그래서 생뚱맞은 이 말은 당신을 향한 질문이 아니다. 외다리 젊은 사내가 외나무다리 앞에서 난감한 상황일 때, 외팔이 사내가 등판을 내미는 그 소설이 어떻게 생각나겠는가 말이다.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소설은 딱 두 나라만 읽지 않는다. 어딜까? 2011년 늦은 가을 영천, 한 여인이 말했다. 쿠바! 북한! 이 모든 말들은 분명 그이의 남편 하근찬에게 들었을 터.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으나 「수난이대」로만 수렴되는 작가, ‘교과서 문학 작가’로 일컬어지는 하근찬이야말로 불행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수난이대」는 중등교과서들이 가장 많이 호명한 작품이고, 또 과거 출판시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소환당하면서 수없이 고쳐진 소설이다. 고쳐 쓴 작품으로 최인훈의 『광장』이 거론되곤 하지만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작가 생전에 그 작품이 수록된 단행본이 얼마나 발간되었는지 헤아리긴 어렵다. 「수난이대」가 최초로 수록된 『신춘문예당선소설집』(신지성사, 1959)부터 작가가 마지막으로 손질한 『산울림』(한겨레출판사, 1988)본까지.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인터넷에서 하근찬을 불러내면 온통 ‘수난 2대’의 난바다가 펼쳐진다. 어쩌면 하근찬이라는 작가가 「수난이대」로만 수렴되는 건 분단국가라는 상징성 때문이고, 그래서 작가는 명부(冥府)에서조차 등단작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또 하근찬에게 덧씌워진 ‘50년대 작가’라는 오해도 수정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도 축복일 수 없는 「수난이대」는 그러나 옹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건 하근찬 작품에 대한 짧은 안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가는 곳마다 상이용사 쇠갈고리 손들이 민중을 위협하던 1950년대의 「수난이대」(1957)로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진 「헌책에서 대전집으로」(2002)까지, 45년 동안 이어진 작가의 큰 작업을 살펴볼 때 하근찬의 단편 미학은 실로 우뚝하지 않는가. 주구장창 「수난이대」만 대표작으로 내세우는 이 획일적인 세태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올바른 평가도 아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오해’를 지적하는 이정숙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근찬은 문학사에서 모종의 ‘오해’를 벗지 못한 작가이기도 한데, 전쟁 경험을 전승하는 역사적 방법이 지나치게 ‘민족 이야기’의 문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근찬을 읽는 독법에서도 동질적으로 적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근찬의 작품을 그렇게 읽는 것은 명백히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독법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민족 이야기’의 문법은 피해와 수난이라는 이분법적 지형에서 전쟁을 이해하는 인식틀에 갇혀 있는 독법이기 때문이다. 하근찬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분명 이와 다른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민중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일상의 모습을 관찰하고 복원해내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면모를 현미경식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이정숙, 「전쟁을 기억하는 ‘리얼리티’의 윤리와 하근찬의 문학세계」, 『흰 종이수염』, 산지니, 2021)

「수난이대」는 굳이 줄거리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 버려서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하근찬 하면 대번에 떠올리는 작품이 「수난이대」 아닌가. 그래서 오히려 식상해버린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유치해져 버릴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다.
옛날 주소, 영천군 영천읍 교촌동 251번지. 이 문장은 한국문학사에 고딕으로 새겨놓아도 좋다. 지금은 사라진 영천극장 근처, 공동수도가 있던 곳. 1956년 12월 어느 날, 바로 그 집에서 하근찬은 「수난이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1928년 백신애가 영천에서 「나의 어머니」를 쓴 후 31년 만에 영천에서 창작된 두 번째 소설이다. 그 집이 몇 년 전 도시계획에 의해 헐려나갔다. 「수난이대」의 산실이 사라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수난이대」 산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도 문명은 그 산실을 보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영천군 영천읍 교촌동 251번지. 그 집은 ‘용머리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마현산 자락에 있었다. 정수장이 있어서 ‘수도산’이라 불렀고, 70년대에는 ‘꽃동산’으로도 불렸던 그 마현산 자락에서 문학청년 하근찬은 「혈육」과 「메뚜기」를 습작하며 문장을 단련했다. 뒷날 「혈육」은 「기아선상에서」로 개제되었고, 「메뚜기」는 「온혈적」으로 개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6년 12월 30일 하근찬은 교촌동 그 집에서 머지않은 성내동 197번지에 신혼살림 솥단지를 건다. 이 신혼집은 아내 이종순이 기왕에 살고 있던 자취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신혼집에서 「낙뢰」, 「육식동물」(「이지러진 입」으로 개제 후 재발표)을 썼다. 1958년 발표한 「산중 고발」(「산중 우화」로 개제)은 폐결핵에 걸려 입원한 밀양의 육군병원 근처 무덤에서 썼다고 산문 「무덤 곁에서의 집필」(『내 안에 내가 있다』, 엔터, 1997)이 밝히고 있다.
하근찬이 「수난이대」를 착상한 때는 1956년 가을이었다. 영천과 부산의 동아대학교를 오가던 동해남부선 삼등열차에서였다. 먼저 기차 속에서 “우리가 누굴 위해 이렇게 됐는지 모르갔수?” 협박하듯 쇠갈고리 손으로 물건을 강매하는 숱한 상이용사들에게 시달리며 주제를 얻었고, 그 기차에서 읽은 한 기행문이 「수난이대」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기행문의 저자는 유럽에서 구두 수선을 했는데, 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 한쪽을 잃은 신기료장수는 2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었다. “옳지,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경우에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대에 걸친 수난”은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고 하근찬은 「상이군인에서 얻은 영감과 외나무다리의 결합」(『소설, 나는 이렇게 썼다』, 평민사, 1999)에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산문 「수난이대, 산에 들에」(『내 안에 내가 있다』)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그 ‘외나무다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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