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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27802822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1-12-12
책 소개
목차
고별사
마지막 初夜
폭파 직전
남과 여
日蝕
푸른 새를 낳다
얼음 소나타
나무와 비
남쪽 끝
첫 번째 시
여름의 광대 ―달
여름의 광대 ―가로수길
여름의 광대 ―밤 고양이 조서
여름의 광대 ―장마가 멈춘 자리
단 한 차례의 멸종
활
月蝕
나는 신이다, 라 적힌 일기를 읽은 날
샛별이 뜰 때
설인의 마지막 꿈
그의 화장술
사물의 원리
사람의 소리를 벗은, 사람의 말
레이디호크
유리병 속 거미 한 마리
폭설의 인과율 ―조연호에게
적들의 사랑
이슬
멀고 먼 이승 -보선에게
선인장 입구
첫사랑‘들’
지나간, 그리운 오열
밤의 어둡고 환한 줄기들
인형놀이
기나긴 마중
불구
그것의 정체 ―다시, 준규에게
해설|적막을 장전한 키메라 · 조강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두 개의 내가 있다고 합니다
둘은 하나의 상대어일 뿐,
알고 있는 모든 수의 무한 제곱일 수도 있습니다
허기가 폭발할 땐 쇠든 돌이든 턱없이 삼켜
스스로 불이 되려고도 한답니다
주여, 이 씹새끼여, 외치며
호방하게 술잔을 비운 다음
어두운 괄호 같은 게 되고 싶어도 한답니다
몸 안의 모든 욕구를 비워
풀잎의 살랑임에도 바스라지는
깨끗한 적막이 되려고도 한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배가 고플 때엔
혼자 받는 밥상이 순연한 노동처럼 귀히 여겨져
조용히 입 다물고 마른침만 삼킵니다
그저, 당신의 여윈 몸만 한없이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전쟁의 포성 아래에서도 풀이나 뜯는 노루 같은 게 되어
이 세상과는 사뭇 다른 흙 속의 비밀로
순한 문신을 새기고도 싶어집니다
내겐 예쁜 무늬만 보면 늘 마음 아파지는 착한 소녀도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계속 멀리 눈감고 계셔도 됩니다
(…)
별들이 무한 제곱으로 밤길을 새로 가설합니다
나는 걷습니다
내 걸음의 시작과 끝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걷습니다
무한 제곱으로 찢어지는 발걸음들이 각자의 몸을 찾을 때까지
이 정처 없음은 나의 유일한 정처일 뿐,
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오래도록 나를 향유하셔도 됩니다
버리거나 즐기는 것도 당신의 몫입니다
나는 짓밟히는 게 천분이 된, 그저 하나의 길일 뿐입니다
단 하나의 어두운 길로 영원히 불타오르길 바랄 따름입니다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집니다
벼락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내 종족의 눈빛,
천공이 제 몸을 열어 나를 받습니다
나는 나를 기억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긴 울음의 엄밀한 정도(正道)만 흙 속에 새겨놓을 것입니다
―'고별사' 부분
나는 차라리 없는 너를 끄집어내려
애꿎은 내 몸을 찢는다
나는 허공에 입술을 짓이긴다
공기의 입술에서 푸른 수액이 흘러나온다
나는 공기의 젖을 빤다
너는 적막 뒤에서 가랑이를 벌린다
붉고 탱탱한 백열등, 어둠의 음부가 신음한다
빳빳하게 곤두선 시간의 응어리를 불속에 담근다
뻥, 하고 가슴속 울혈들이 팀파니를 울린다
쓰디쓴 화약 냄새가 풍긴다
네 몸에서 시큼한 생리혈 냄새가 난다
몇천 굽이로 휘어진 시간의 벌 떼가
몸의 점막들을 들쑤신다
아퍼, 아퍼, 너는 소리 지른다
너의 비명이 어떤 정서와 닿아 있는지 나는 안다
사랑은 서로의 고통을 갈취하려는 노역,
‘나는 모른다’가 늘 나의 응대법이다
더 세게 고통받기 위해 나는 너의 목덜미를 깨문다
피 맺힌 절규가 아니라면
그 어떤 하모니도 스스로를 비워낼 수 없다
―'푸른 새를 낳다' 부분
시간이 이 세상 밖으로 구부러졌다
시여, 등을 굽혀라
고양이 새끼가 운다
어미 고양이를 삼키고 사람이 되려고 운다
급류를 삼킨 노을이
노을이 아빠가 되려고 운다
떠돌다 지친 다리가
다른 인간의 눈이 되려고
멀고 먼 샅으로 기어올라온다
빛이 어디 있는가
뒤집어진 어둠의 골상을 판독하려
한나절의 시름이 그다지 깊었다
못 나눈 정을 전염시키려
낮 동안 오줌보는 그토록 뾰로통했다
혈관에 흐르는 오래된 문자들을
고양이의 꿈이 딛고 지나는 이마 위에 처발라라
팔다리는 공기가 멈춘 나무
낭심 아래엔 죽은 별 무더기
구부러진 어깨를 펴라
갈빗대에 힘줄을 얹어
마지막 숨을 길게 당겨라
발끝으로 세계의 끝을 밀어내고
이승 바깥에서 돌아 나오는
흰 새벽의 눈알을 찔러라
터져 나오는 세계의 명치에 구름을 띄워
이면이 없는 幻을 쳐라, 고요히 실명하라
실명하라
―'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