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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27804604
· 쪽수 : 148쪽
· 출판일 : 2013-07-25
책 소개
목차
1부
눈송이 지층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나는 피와 흙이다
고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은
모래사장에 남는 물결무늬처럼
Homo Erectus의 회상
윤곽
겨울비 지적도
거울에 대하여
가야 토기
인체 해부도
골목
간절곶 등대
집중
순백의 졸음
맨드라미 정오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2부
말머리성운
별이 내리는 터전
외로운 벼랑
벼랑에 대하여
사랑의 별빛
추락
낙화암
날개에 대하여
확산
3부
그럴 수 없이 투명한 푸름
바다 물빛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야생의 빗소리
시간의 상흔
아프리카 감탄사
버드나무 잎 하나의 시간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바람의 기슭
달빛 귀뚜라미 소리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것은
4부
바다
워낭 소리
모과
절개지
의자의 교감
부재의 거울
5부
비의 동행
암스테르담의 헌책방
하루살이의 날개
저녁노을 식탁
이란의 가을
뿔의 기억
오백 광년의 노을
제주도
제주도 추억
섬진강 물방울
밀양강 둔치에서
철길에 대한 에스키스
소나기가 지난 뒤의 풍경
세잔의 시론
눈동자 거울
물질은 이유를 초월한다
순서
6부
균열
석유 냄새의 방정식
전후의 내력
7부
나는 시의 현장이다
흰 종이의 전율
불타오르는 가을 숲까지
나비의 이륙
해설 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_최현식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근접하면 동상을 입는 세계의 극한을 찾는 여린 언어다. 예니세이 강을 건너 알타이에 이른 나의 언어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파토스의 얼음이다. 자작나무 숲 흰 줄기 사이에서 뿌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적설량보다 순수하다. 시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한겨울 바람 앞에서 내 언어는 땅 밑에서 파릇파릇 돋는 봄풀이다. 온몸으로 가늘게 떠는 연약한 한 줄기 감수성. 역사의 발에 밟힌 끝에 대답처럼 다시 본래의 체위를 찾고 마는 초록색 풀의 강인함.
나의 언어는 우주를 횡단하며 휘어질 줄 모르는 별빛의 직선이다. 영하의 겨울 하늘 별자리의 명석한 깜박임이다. 정신과 육신이 갈라서기 이전의 캄캄한 소용돌이가 내뿜던 은빛 시간의 물보라. 불멸을 허용하지 않는 시간의 물보라에 젖었던 광물의 침묵. 기어이 꽃잎처럼 입술에서 떨어지는 최초의 언어를 낳고 마는 침묵의 인내. 나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의 고독과 호명되기를 애절하게 기다리던 미지의 꽃 이름 틈새에서 치열하게 내리는 폭설처럼 타오르는 언어의 불길이다.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전문
어둠이 없이 빛이 빛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빛의 순수. 그것은 절망이 아닌 외로움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사물도 외로움으로 자신의 윤곽을 간신히 견디고 있다. 접시 위에 놓여 있는 한 덩이 모과의 연두색 침묵을 보라.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강철 구조물의 아름다운 휘어짐을 보라. 명석한 자기 윤곽을 찾아 하늘을 헤매는 구름을 보라.
―「윤곽」 전문
나는 골목길을 택했다. 골목에는 녹슨 양철 처마와 불빛 꺼진 꾸부러진 창과, 팔짱 낀 발자국 소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신의가 있다. 골목 끝에 간신히 그곳만이 환한 가게가 있다. 잠드는 일을 태만이라 믿는 반질반질한 사과 알들이 베개맡 책갈피처럼 잠들지 않고 있는 심야의 가게. 지워진 어릴 적 기억 속 풍경의 한 단 면이 망각의 깊이 밑바닥에서 정다운 오렌지 빛 삼투압을 띄고 조용히 수면 위에 떠오르는 별빛 얼어붙는 겨울 하늘 골목 끝.
―「골목」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