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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27805502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나는 너무 오래 눈물을 썼다
한 쌍이 낯설다
폭포 소리가 나를 깨운다
웃는 울음
바람은 몇 살이야?
물결무늬 자국처럼
구급차를 기다리며
어둠은 빛보다 어둡지 않았다
꽃점 치던 시절
여식 보아라
회화나무
백지 위의 시
만약이란 없다
지나가자, 지나가자
행복은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다
농담의 힘
두근두근 내 심장
무엇이 성공인가
두 바퀴
마음 빚다
연처럼 띄워라
詩 통장
그 한마디
다 쓰고 갑니다
뒤편을 보라
고독이 고래처럼
얼굴
독서하다와 사랑하다
자기만의 습관
꽃부터 보고 오세요
나의 잔
심장이 나보다 먼저 뛰네요
그 자리
내 생의 대안
웃음 끝에 서러움이
거대한 수족관
새 옷 입는 날
바람 아래 해변과 몽산포
슬픔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다람쥐를 놓아주다
이름 짓기
사라지는 것들
마음속 절 한 채
나는 첼로 곡을 좋아한다
아버지의 술에는 눈물이 절반
비겁 비겁 울다
솔개가 날고 있을 때
하늘을 꿈꾸는 섬
이것이 내 시의 비밀이다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
극약 같은 짧은 시
뒷발의 강력한 힘으로
다른 눈을 뜨게 하는 비밀
내 손을 잡아다오
귀 울음과 코골이
물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느냐
손으로 뿌리고, 눈으로 거두는
나에게 세 가지 한이 있으니
커피와 시
야생화 향기 같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혼자 산 지 오늘로 39년 10개월째다. 지독한 세월을 지독하게 견뎠다. 혼자 사는 것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며, 이 세상은 나 혼자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것을 체득하는 일이다. 숟가락도 하나 젓가락도 하나 무엇이든 하나만 쓰다 보니 ‘한 쌍’이란 단어가 낯설다. 남녀 한 쌍, 바늘과 실 한 쌍, 숟가락과 젓가락 한 쌍이 무슨 복잡한 관계처럼 느껴져서 사람의 인연이란 대체로 악연이란 생각에까지 이른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생각까지 바꿔버린다.
―「한 쌍이 낯설다」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직소폭포를 찾은 것은 1979년 7월이었다. 33년 전의 일로 내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다. 혼자 산 지 5년이 흐른 뒤였다. 서울에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갔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다 ‘직소’라는 단어에 이끌려 무작정 길을 떠난 것이다. 이왕이면 선비의 정신처럼 곧은 직소에서, 직언하는 충신처럼 생을 끝내고 싶었다. 직소폭포는 내소사에서 30분쯤 걸어가 길이 끝나는 곳에 있었다. 비 온 뒤라선지 작은 폭포지만 소리는 우렁찼고 물길은 생각대로 수직으로 곧았다. 물의 길도 곧아야 숭고해 보인다.
그때 그 산(내변산)엔 아무도 없었고 폭포 소리만 ‘천추의 큰 울음’처럼 우렁찼다. 끝없이 넓은 들판을 보고 연암 박지원이 ‘호곡장’이라며 울기 좋은 곳이라 했고, 이를 읽은 추사 김정희가 ‘천추의 큰 울음’이라 했다는데, 비록 작은 폭포지만 나에게 직소폭포는 ‘내가 울기 좋은 곳’이었다. 폭포의 곧은 물줄기를 바라보다 굽은 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나는 폭포처럼 울었다. (…)
몇 시간을 바위 위에 바위처럼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몸이 옆으로 조금 기우뚱했다. 그때 마치 빛이 눈을 뚫고 들어온 듯 앞이 탁 트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라운 것은 지금껏 어둑했던 마음이 환해지면서 처음으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너는 죽을 만큼 살아보았느냐’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아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고 들리는 것은 폭포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는 내게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소리였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나만의 신비한 체험이었다.
―「폭포 소리가 나를 깨운다」 중에서
오래전 봄날, 네 살짜리 아이와 손을 잡고 언덕을 올랐을 때 마침 바람이 불었다. 그때 아이가 불쑥 “바람은 몇 살이야?” 하고 물었다. 어쩜 저 어린것이 바람에도 나이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신기해서 한참이나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궁색한 대로 “바람은 나이가 없단다. 잘 날이 없으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랬던 그 아이는 바람에 불려간 것인지 지금 내 곁에 없다.
언제부턴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이며, 모든 것을 이기던 사랑이며, 시가 베푸는 낙이며, 나의 지음들이며…….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들에 기대어 오늘을 살았다. 이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삶 구석구석에 편린처럼 박혀 있다. 설명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거의 몇십 년을 말을 줄이고 살았다.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 보면, 그 말할 수 없어 침묵한 것들이 내 영혼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바람은 몇 살이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