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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31010732
· 쪽수 : 344쪽
책 소개
목차
검은색노트
흰색노트
회색노트
회색노트를 거꾸로 해서 그 여백에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부터 써 넣는 나만을 위한 기록
아내의 편지
작가와 작품 해설
리뷰
책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치나 정신분열증 환자의 표정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통로를 막아둔 채로 있으면 결국에는 통로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자신을 일로 몰아치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라도 한번 뒤집어 써보자. 우선 귀 밑의 돌기를 떼어내고 턱 아래를 느슨하게 하고 입술이 젖힌 부분을 약간 뜨게 하여 콧구멍의 튜브를 빼내면 가면은 판에서 완전히 제거되어 덜 마른 얼음주머니처럼 매끈한 막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 순서를 반대로 해서 조심스럽게 얼굴에다 겹쳐 본다. 기술적인 실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익숙한 셔츠같이 얼굴은 딱 맞게 붙었고 목에 걸린 응어리 하나가 꿀꺽하며 위속으로 넘어간 듯했다.
좋든 싫든 간에 이것이 내가 선택한 가면이다. 수개월 동안 몇 차례나 거듭하여 만들어 본 끝에 겨우 이루어 낸 얼굴이다. 불만이 있다면 다시 내 마음대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잘 만들어졌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앞으로 이 가면을 자기 얼굴이라고 순순히 인정하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나를 힘없이 몰아치고 있는 이 허탈감은 새로운 얼굴을 둘러싼 망설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롱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흐려져 가듯이 소멸되어 가는 허전함과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