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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2020679
· 쪽수 : 211쪽
책 소개
목차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진부의 송어낚시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반성문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백일장에서 내가 남의 글 일부를 훔쳐와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적이 없는 척, 어린 시절의 일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여겨온 뻔뻔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변명으로 일관된 자위를 거듭하는 동안 나는 서서히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선홍의 꽃들은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꿈을 꾸면 그 글의 원작자가 찾아와 내게 해명을 요구했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온갖 이유를 다 끌어와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어.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어. 어느 날은 학교까지 찾아왔어. 전체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나를 가리키더니 자기 글을 훔친 도둑이라고 몰아붙였어. 운동장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손가락질로 나를 가리키며 야유를 보냈어.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었어. 결국엔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려워졌으니까. 꿈에서 깨어나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 길을 걷다가 누가 등이라도 툭 치면 깜짝 놀라곤 했으니까.”
“자, 삼십 분 남았으니 이제 슬슬 정리해라.”
삼십 분? 선생님, 잡념 속에서 부리나케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아직 제목밖에 써놓지 않았으니까요. 바로 그때, 언젠가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이 선명하게 떠올랐지요.
눈보라 치는 시골 정류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얼굴이 눈처럼 흰 소녀. 그리고 저만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마을의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노인의 장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당연히 나의 이야기라고 믿어버리고 말았지요. 이윽고 소녀는 버스를 타고 떠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진 한 장. 소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들어 있는. 그 사진을 간직하는 나.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 분명 지난겨울 내가 겪은 이야기라고 확신하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펜을 잡은 오른손은 그동안 제목만 써놓은 채 비어 있던 원고지 위를 택시처럼 질주했습니다. 두어 번 정도 잠시 숨 돌리는 시간만 제외하고서. 심지어 글을 모두 쓴 뒤에는 학생잡지에서 읽은 글을 도둑질했다는 기억조차도 깡그리 잊어버렸다면 믿으시겠는지요. 다시 읽어보아도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글을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저는 유유히 강당을 빠져나왔던 것입니다.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헤실헤실 웃으며.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거라고 자부하며 교정의 시멘트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