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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2027241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십번기 9
작가의 말 170
바둑 용어 해설 17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치수 고치기 십번기가 뭔지나 알아?”
“열 판 둬서 세 판 연속 이기면 치수가 고쳐지는 거 아니에요?”
형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목소리의 어조를 한껏 낮추었다.
“인마, 그거 장난 아냐. 기라성 같은 프로 기사들도 그거 두다가 여럿 골로 갔어. 그게 일본 에도 시대에 시작된 바둑계의 끝장 대결이야.”
“끝장…… 대결이요?”
“그게 그냥 열 판을 두는 게 아니야. 둘 중 하나는 고꾸라지는 거라고. 뭔 말인지 알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두려움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발끝이 간질간질해서 나는 발가락을 세게 꼼지락거렸다.
“하, 자식. 책을 많이 읽기에 똑똑한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바보네. 대회 타이틀이야 올해 못 따면 내년에도 딸 수 있지만, 십번기는 상대방과 서열을 정하는 거야. 지면 당장 무릎 꿇고 졸때기가 되기 때문에 목숨 걸고 두는 거라고.”
나는 사범님과 삼번기를 두며 ‘바둑 십조’의 심국(審局)과 도정(度情)이 무슨 말인지 다시 생각했다. 심국은 국면의 형세가 어느 쪽이 우세하고 약한지를 자세히 살펴서 조급히 굴지 말고 적당한 방법을 취하는 게 승리의 길이라는 뜻이었다. 도정은 고요하면 그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바둑을 두는 데도 침묵하여 이편의 마음을 저편에 보이지 않으면서 여유 있는 경기를 운영하라는 지침이었다. 그는 두 가지 조항의 중요성을 실전에서 몸으로 직접 보여줬다.
“바둑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이 뭐예요?”
사범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사범님의 접시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도망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둘 수 있는 힘은 결국 유희에서 나와. 이게 어려운 숙제라든지, 완수할 책임이라든지, 막중한 사명이 되면 끝까지 하기 힘들어. 대부분 도망치고 싶지. 그러니까 끝까지 놀아야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희여야 해.”
그새 형은 내 포테이토를 다 먹고 냅킨으로 손가락의 기름을 닦으며 물었다.
“결국 끝까지 놀라는 말인데, 끝까지 놀기도 쉽지 않잖아요? 좀 특별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어떤 마음을 가지려 애쓸 필요는 없고, 차라리 마음을 비워야 해. 승부에 집착하면 손가락에 쥔 돌이 쇠처럼 무거워져. 반대로 마음을 비우면 어느 순간 돌이 반짝거리지, 유리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