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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32027753
· 쪽수 : 510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면서
1부 사회학이 예술을 만날 때
1. 왜 예술로서의 사회학인가?
예술로서의 사회학이란? | ‘문화사회학’과 ‘마음의 사회학’ | 실증주의 이후의 사회학 |
삶의 사회학 | 개성 있는 사회학 | 감동을 주는 사회학 소설과 사회학 | 시와 사회학 |
사진과 사회학 | 건축과 사회학 | ‘사회학자/작가’라는 이중의 정체성 | 소통과 인격
2. 어느 사회학자의 예술론
시적인 순간과 예술 창조 |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가? | 광기와 ‘두엔데’ | 야생의 사고와 예술 체험 | 예술과 자연 | 공감과 연민 | 학문과 예술 | 아름다움의 옹호 | 예술적 감동을 위하여
2부 사회학자로 산다는 것
1. 어떤 사제 관계 이야기-배움의 길 위에서
멀리 파리에서 | 어떤 만남 | 토론식 수업 | 민주적 자세 | 말하기와 글쓰기 | 평등 의식 | 개성의 존중 | ‘원칙의 사람’ | 이론과 역사에 대한 관심 | 학문 사이의 벽 허물기 | 한국 사회 비판 | 비판적 지식인 | 시민사회의 ‘민주적 어른’
2. 거울 앞의 사회학자-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자기분석
한 사회학자의 사회학적 자기분석 | 엇갈린 만남 | 시골 소년의 파리 상경기 | 불복종에서 시작된 알제리 현장연구 | 상처와 치유 | 결핍과 창조 | 이중의 부재 | 두 세계를 오가며 | 부르디외 저작의 해방적 효과 | 앎과 삶 그리고 성찰성 | 원초적 공동체를 넘어서 |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 부르디외가 나를 호명하는 이유
|후기| 부르디외의 흔적을 찾아서
3. ‘패자’의 윤리학-대학 밖 사회학자의 성찰적 자기분석
상처와 고통 | 스티그마와 인정투쟁 | 나의 수난기-1989?1993년 | 1990년대 대학교수 채용 관행 | 나의 수난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 | 대학 사회의 변화 | 시민운동과 자발적 망명생활 -1994?2011년 | 백의종군하는 삶-2012년 이후 | ‘사회학자/작가’의 길 | ‘패자’에게 주어진 선택 | ‘패자’가 받는 축복 | 흔들리는 마음 다스리기 | ‘패자’만의 즐거움 |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법
|보유| 사이와 너머, 초중도의 길
3부 한국 사회학의 새로운 길 찾기
1. 소통하는 사회학-노명우의 ‘대중과 소통하는 글쓰기’
사회학의 흥망성쇠 | 서평에서 사회학평론으로 | 인생을 바꾼 두 권의 책 | 한 권의 독특한 책 |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 ‘통렬한 풍자’의 문체 |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어떻게 읽히고 있을까? |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공공사회학 | 다시, 사회학적 관점이란 무엇인가? | 새로운 글쓰기를 실험하는 사회학자들 | 만인을 위한 사회학개론을 향하여
2. 기억하는 사회학-사회인간학으로 읽는 조은의 소설
사회인간학이란 무엇인가? | 실험적 글쓰기 | 사회학적 소설 쓰기 | 소설 속의 사회인간학 | 가계도 그리기 | 사라진 아버지 | 좌익 아버지들 | 실종된 아버지가 남긴 가족의 역사 | 요란한 하강, 조용한 상승 | 불행의 세습 | 불행한 사건의 재발 | 가족사의 비밀, 인생의 수수께끼 | 친일파와 빨갱이
3. ‘우물’ 밖으로 나온 사회학-송호근의 한국 근대 탐색
큰 그림을 그리는 사회학 | 신문 칼럼에서 ‘대하’ 사회학까지 | 명제 만들기 | ‘분석적 서사’의 문체 | 이름 붙이기와 개념 구사 | 책 제목은 적절한가? | 시민은 탄생했는가? | 한말 자발적 결사체는 얼마나 근대적이었나? | 서구중심주의라는 기본 틀 | 우리 학문 공론장의 문제 | 선행 연구와의 관계 | ‘탄생 연작’의 보완을 위한 제언 | 유교 전통을 보는 관점 | 과거 해석과 미래 지향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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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강단 사회학자는 논문의 편수와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권위에 의해 평가받는다. 영어로 쓴 논문을 유명한 국제 학술지에 실으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평가체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화된 영역의 학술지에 실린 연구논문들을 읽으면서 해외 학자들의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A급’ 사회학자일수록 해외 연구 동향을 참조하면서 자기 논문 쓰기에 바쁘다. 그러다보면 옆에 있는 동료 사회학자의 글마저 읽을 시간이 없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사회학을 넘어서 문학, 예술, 미학 분야의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분야의 책이나 논문을 읽는 일은 시간 낭비이거나 여가생활로 여겨진다. 그래서 점점 더 좁은 세계에 매몰되어 전공 분야의 학술논문 제조업자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강단 사회학자의 삶이다.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전공 밖의 사람들과 담을 쌓고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 그런 과정에서 사회학은 사회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사회학은 단수(sociology)가 아니라 복수(sociologies)다.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하나의 사회학이라면 예술로서의 사회학도 하나의 사회학이다. 토마스 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회학은 여러 개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복수 패러다임의 학문이다. 나는 이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벗어나 삶에서 비롯되고 더욱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회학’을 모색하려고 한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사회적 사실’을 마치 사물처럼 다루는 과학주의 사회학 전통에 눌려 있던 인간의 삶과 의미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실증주의 이후의 사회학post?positivistic sociology’이다.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인간을 사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우하는 인간주의 사회학이다. 그러기에 예술로서의 사회학은 19세기 말에 형성된 근대 주류 사회학의 자연과학적 인식 모델을 거부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해석학적-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피터] 버거는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프랑스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회학적으로 보는 데서 오는 흥분”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발자크의 소설에서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는 “인간이 하는 온갖 짓들에 대한, 특히 상류 사회에서 감추고 부정하는 행위들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버거는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 “본질적으로 불경스럽고 폭로적이고 전복적인 시각”을, 다시 말해서 ‘사회학적 시각’을 얻었다. 지금도 그의 연구실 한편에는 발자크의 캐리커처가 걸려 있다. 그 액자를 바라보면서 그는 가끔씩 이렇게 중얼거린다.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