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42466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Mazeppa | 시인의 말 | 코케인 | 말과 고기 | 신년회 | 여닫이문 | 뒤풀이 | 무의식 | 피붙이 | 피붙이 | 당신의 눈먼 아들이 되어 | 그 누구도 죽지 않았네 | 천장天葬 | 끽다거喫茶去 | 입춘 | 백수광부 | 귀신의 맛
2부
붉은 귀 | 귀신통 | 종언기 | 동백 | 유전 | 아오리스트 | 대학 시절 | 눈 이야기 | 카스토르 | 물과 자전 | Purgatorium | 죽음의 집의 기록 | 우연 | 젖은 책 | 마흔 | 이 문장을 끝내지 못한 곳에서 | 엘레지
3부
우나코르다 | 마중 | 도깨비불 | 기일 | 엠페리파테오 | 소리경 | 불이과不貳過 | 간절곶 | 여름의 빛 | 마차 타고 고래고래 | 숭고 | 회문 | 마음 전부 | 선으로부터 | 니힐리스트 | 대설大雪
해설
연옥煉獄으로의 한 걸음 · 류수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인들 몇과 만나 술을 마셨다. 우리는
제각각의 이유로
제각기 억울하고,
억울한들 취하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고, 몸속에
서로 다른 짐승들이 살고,
나무가 죽어 계절이 오가고, 눈떠보니
사람이었듯 시인인 거라서,
서로의 굽은 몸에서 이를 잡아주는 원숭이처럼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워준다.
우리가 가던 단골집들은 다 망했다고, 그런데
우리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고, 망할 것 자체가 없다고,
이 가게도 망할 리가 없지, 이미 망했으니까,
서로의 말꼬리를 물고 농을 던지다 보니 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곤 말없이
하나둘 사라졌다.
―「코케인」 부분
그는 지옥이었고 사랑이었고 희생이었으나
그는 무능력이었고 아집이었고 알코올이었으나
나는 그와 비슷한
피부 색깔과 좁은 어깨와 걸음걸이를
가진 탓에
그는 두려움이고 사방 창 없는 벽이고 천장이고
가계의 첫머리였기에
그의 신화가 죽은 화분 위에 버리는 물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피붙이」(p. 26) 부분
이념도 없고 분노도 없는 계절이 왔다. 마음이 질겨서 봄이다. 이제 나는 한 줄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한 줄만큼의 어리석음이면 족하다. 그 정도의 망신이면 족하다. 부끄러워 봄이다.
까마득한 크레인 위에서 겨우내 사람들이 얼어갔고, 젊은 청년들이 자꾸 죽었지만, 친하지도 않은 이들과 어깨 겯지르고 같이 취해 나뒹굴며 황망하게 흘러 다니다 보니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고 사무실에 앉아 버려져가는 반쪽짜리 노동이 되었다.
나는 버려지기가 무서운 것일까. 그래서 착한 척이나 하는 것일까, 하다가
그저 밤늦도록 취하기 좋으니 봄이다. 가끔 술에 취해 전화하는, 지금은 꽤 잘산다는 친구를 생각한다. 그 친구의 꿈은 아직 시인일까? 내가 생각한 것은 이따위 것이 아니었다. 나나 그 친구나 포즈만을 꿈꾸었구나.
―「입춘」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