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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프랑스사
· ISBN : 9788932043647
· 쪽수 : 155쪽
· 출판일 : 2025-04-18
목차
1장 사생아
2장 음모
3장 결단
4장 서명
5장 의장
6장 희가극
7장 반복
저자 후기
문고판 후기
서지사항
해설 | 이리에 데츠로
고귀한 ‘사생아’와 ‘가짜 백작’
옮긴이의 말 | 임재철
본편을 능가하는, B-movie로서의 『제국의 음모』
리뷰
책속에서
물론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것도 아닌 권력자의 문장을 고도의 예술적 달성으로 여길 이유는 전혀 없으며, 그 속에 감춰진 문학적 의의를 발견하는 것도 이 언설의 의도는 아니다. 여기서 목적은 내무대신과 입법원 의장을 역임한 ‘사생아’가 남긴 두 편의 텍스트 사이의 기묘하게 얽힌 관계의 해독이며, 이는 각각의 필치에 대한 질적 음미와도, 그것이 이야기하는 내용의 분석과도, 혹은 그 상징적인 의미의 파악과도 다른 독해 방식을 요청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분석 대상인 두 편의 문헌을 쓴 저자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소 갑작스럽긴 하지만 ‘들뢰즈적’인 주제 영역에 눈을 뜨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두 의붓형제가 꾸민 19세기 중엽의 음모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펜이 소묘하게 될 ‘시뮬라크르’ 개념의 윤곽에 딱 들어맞을 법한 몸짓에 의해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라면 어떤 문장의 기원이라고 여겨져야 할 서명을 집필자가 어떠한 순간에도 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그 이름이 인쇄된 대량의 복사본copy이 주변에 유통됨으로써 확실한 현실감을 획득할 때, ‘기원’을 결여한 ‘반복’으로서의 인쇄된 이름에 대해, 사람들은 들뢰즈를 따라 ‘시뮬라크르(=모상模像)’라고 이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일어나는 일은 주변에 유통되는 ‘시뮬라크르’가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기원’을 양적으로 현실화한다는 냉소적인 사태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논자가 냉소적인 인물이라고 여겼던 ‘사생아’ 드 모르니에 딱 어울리는 서명이 아니겠는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는 무엇보다도 우선 성공한 ‘음모’를 주제로 한 오페레타 부파이다. 슈플뢰리 씨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자기 이름의 명예를 지키려 하며, 그리하여 딸을 젊은 예술가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 부유한 사내에게 ‘금전’과 ‘여성’은 ‘이름’과 교환 가능한 기호나 다름없고, 여기서 ‘음모’는 그 등가성을 전제로 준비되었다고 해도 좋다. 존타그든 루비니든 탐부리니든,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름일 뿐, 그들을 연기하는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를 배경으로 이 ‘음모’는 착착 계획되어갔던 것이다.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가 ‘상연’을 주제로 한 각본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기호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으며, 교환 가능한 등가성이 성립하기 위한 기능만이 문제가 된다. 연기해야 할 역할의 우위만이 기호의 유통을 지탱하게 될 때, ‘음모’는 그 시스템을 손쉽게 활용하여 성취되며, 그리하여 이제 시스템의 변용을 시도해볼 필요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