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하르트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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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북유럽 발트해 연안 국가인 라트비아(Latvia)의 수도 리가(Riga)에서 태어나 1950년 독일 괴팅겐에서 죽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기에 걸친 격동기를 산 그는 15세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한 후, 매우 다채로운 학문적 편력을 겪는다. 처음에는 의학, 고전 문헌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1905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 정국이 불안해져 대학이 폐쇄되자, 독일 마르부르크로 학적을 옮겨 당시 신칸트학파의 선봉이었던 헤르만 코헨, 파울 나토르프 등에게서 철학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리하여 1907년에 <플라톤의 존재 논리(Platos Logik des Seins)>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09년에는 <수학의 철학적 시원에 관해(Des Proklus Diadochus philosophische Anfangsgründe der Matemathik)>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하르트만은 정보장교로 참전했고, 1920년 마르부르크대학 원외교수가 된 뒤 1922년에는 그의 스승인 나토르프의 후임으로 정교수로 취임했다. 이후 1925년부터는 쾰른대학에서, 1931년부터는 베를린대학에서, 1945년부터는 괴팅겐대학에서 강의와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1950년 괴팅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인식을 존재 관계로 파악한 《인식의 형이상학(Grundzüge einer Metaphysik der Erkenntnis)》(1921), 가치 문제를 이념적인 존재로서 다룬 《윤리학(Ethik)》(1926)이 있다. 이렇게 해서 주관적인 인식론에서 객관적인 존재론으로 사색의 전환을 이룬 다음, 《정신적 존재의 문제(Das Problem des geistigen Seins)》(1933), 《존재론의 기초(Zur Grundlegung der Ontologie)》(1935), 《가능성과 현실성(Möglichkeit und Wirklichkeit)》(1938), 《실재 세계의 구조(Der Aufbau der realen Welt. Grundriß der allgemeinen Kategorienlehre)》(1940), 《존재론의 새로운 길(Neue Wege der Ontologie)》(1942), 《자연의 철학(Philosophie der Nature. Abriß der speziellen Kategorienlehre)》(1950)을 출판해 새로운 ‘비판적 존재론’을 완성했다. 사후에는 《미학(Ästhetik)》(1953)이 출판되었다.
그의 철학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판적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존재자 일반은 이념계와 실재계로 구분된다. 이념계에는 수학적 존재, 사물의 본질, 논리적 법칙과 가치 등이 속하고, 실재계에는 무기적 물질, 유기적 생명, 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정신은 다시금 개인적 정신, 객관적 정신, 객체화한 정신으로 구분된다)이 성층을 이루고 있다. 이들 네 성층은 각기 일정한 법칙과 질서를 지니고 있는데, 하르트만은 이를 ‘범주’라고 부른다. 이 범주에 의해 근본적인 존재론적 구별이 생겨난다. 철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념계와 실재계가 서로 관계할 때 생겨나는데, 이를 저 범주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하르트만의 비판적 존재론의 핵심이다. 그의 윤리학은 비교적 초기 작품에 속하지만, 그래도 비판적 존재론 위에서 그의 윤리사상이 가장 잘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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