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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선교/전도
· ISBN : 9788932818214
· 쪽수 : 478쪽
· 출판일 : 2021-03-1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7
들어가는 글 15
1장 코헬렛의 세계 (1:1-11) 53
2장 인생에 대한 탐구 (1:12-2:26) 71
3장 시간들의 시간 (3:1-15) 115
4장 정의에 대한 회의 (3:16-22) 149
5장 더 나은 것들에 관하여 (4:1-16) 165
6장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 그리고 소유, 탐욕, 만족 (5:1-6:9) 197
7장 지혜에 대한 성찰 (6:10-8:1a) 249
8장 왕과 권력자들 (8:1b-17) 299
9장 인생의 몫 (9:1-10) 325
10장 불확실성의 세계를 살아가기 (9:11-11:6) 347
11장 빛과 어두움 (11:7-12:8) 401
12장 편집자의 신학 (12:9-14) 437
나가는 글 453
참고문헌 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혜문학 안에서 전도서의 위치
구약성경은 모세오경을 포함한 역사서 17권, 예언서 17권, 시가서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5권의 시가서 중 전도서는 잠언과 욥기?또한 시편과 아가서?와 함께 장르상 지혜문학으로 분류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하나의 거대한 구속사로 보고 창조-타락-구원-완성의 사이클 속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구속사적 해석법 혹은 언약신학적 해석법은 가장 일반적인 통합적 성경 읽기다. 이때 구약성경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역사를 재구성해 구속사의 거대한 뼈대 속에서 그 위치와 의미를 찾아간다. 하지만 잠언과 욥기와 전도서는 이스라엘 역사와의 연결고리를 정확히 명시하고 있지 않다. 욥기는 이방인의 땅 우즈에서 일어난 일이며, 잠언은 고대 이스라엘의 보편적 격언들로 구성되어 있고, 전도서 역시 명백한 역사적 시점을 기록하지 않았다. 이에 많은 학자들이 지혜문학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다소 배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지혜문학은 다시금 구약 해석에 있어 거시적인 신학의 주제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학자들로부터 재조명받고 있다. 즉 학자들은 일관된 지혜문학의 주제로 여호와 경외(Fear of Yahweh), 창조신학(Creation Theology), 언약과 질서(Covenantand Order), 의인화된 지혜(Personified Wisdom), 생명과 죽음의 두 길(Two ways), 신적 주권(Divine Sovereingty)을 말한다. 지혜문학이 정경의 일부이며 이 책들 또한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잠언은 율법과 규범, 신명기적 질서에 더 가까운 지혜문학을 드러내는 반면, 욥기는 무죄한 자의 고통을 다루면서 오히려 경건한 자의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와 목적에 대한 지혜를 진술한다. 마지막으로 전도서는 헤벨의 세상이 부조리하고 모순된 영역에 있음을 진술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에 종속된 인간의 운명과 결정론적 관점을 다룬다. 이처럼 잠언, 욥기, 전도서는 역사적 상황과 무관한 보편적 격언과 훈육 등에 대해 대단히 상이한 관점으로 지혜를 말한다.
전도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렇다면 이런 문학 구조를 가진 전도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첫째, 전도서는 상반되고 모순된 진술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1:3에서 사람이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가 무의미함에 대해 말하는 반면 12:13에서 내레이터(편집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말한다. 7:3에서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말하지만, 2:2에서는 웃음의 탁월성에 대해 설파한다. 8:15에서는 기쁨을 칭찬하지만, 2:2에서는 기쁨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모순된 상황을 보면서 독자들은 상호 모순되는 진술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도서는 독자들의 관습적 읽기를 거부한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은 성공이 보장된다’ ‘악인의 삶은 결국 종결될 것이므로 정의는 살아 있다’처럼 정해진 명제적 읽기로 전도서를 읽을 경우 낭패에 빠질 수 있다.
둘째, 코헬렛은 삶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폭로하고 이를 통해 가르침을 준다. 해 아래 새것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이해하거나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전도서에서 ‘헤벨’은 텅 빈 공간과 같은 허무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의미는 아니다. 물론 코헬렛은 일차적으로 삶이 일시적이며 이해할 수 없기에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코헬렛이 인생에 대해 설명하려는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코헬렛은 지나친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치게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7:18). 코헬렛은 삶의 모순과 가치 없음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게 한다.
셋째, 삶의 참된 의미는 언제나 현재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발견된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코헬렛은 일관되게 강조한다. 인간이 현실을 살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은 도덕주의나 금욕주의가 아니라 기쁨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물론 일시적인 헤벨의 세상에서 의미 없이 추구하는 쾌락과 신적 즐거움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넷째, 인간의 모든 일은 개개인의 가치 판단 및 행위와는 별개로 하나님이 하시는 어떤 거대한 행위와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이는 전도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하나님은 ‘시간’이라는 무한한 연속성 속에서 인간의 미래를 통제하고 신적 계획과 목적 속에서 인간의 일을 성취해 가신다. 하나님이 구부린 인생의 운명을 인간이 바꿀 수 없고 신적
행위에 대항해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섯째, 코헬렛은 세계의 헛됨에 대해 말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코헬렛은 서원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5:4-5). 경건한 삶과 미래의 심판에 대해서도 기대하고 있기에 전통적 가치관을 모조리 무시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근 연구 동향
전도서는 잠언과 같은 전통적인 지혜자들의 생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코헬렛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1:18)고 말하거나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7:16)며 과도한 지혜의 유해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혜의 유용성과 신적 속성을 언급하는 잠언과 달리 코헬렛은 지나친 지혜 추구를 오히려 경계하기에,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낀다. 전도서는 이러한 지혜의 가치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불의한 사회 현실과 신적 심판의 모순들을 지적하는데(9:14),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다채로운 열린 해석을 제시하게 하였다. 16-17세기에 역사주의 비평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전도서의 독법은 알레고리가 주를 이뤘다. 예를 들면 기원후 4세기경까지 학자들은 전도서를 알레고리로 읽으면서 코헬렛이 말하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토라와 성찬식으로 해석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인문사회학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성경이 저작된 역사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 역사주의적 읽기다. 즉 전도서의 실제 저자가 누구이며, 저술된 연대와 배경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논의는 전도서가 솔로몬에 의해 저술되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저술되었는지다.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전도서의 솔로몬 저작설에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다. 지면의 제약으로 전도서의 수용사를 자세히 진술할 수는 없지만, 독자들이 주목할 만한 최근의 전도서 연구서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일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오경에 대한 자료/편집 비평(Source/Redaction Criticism)의 발달은 전도서의 여러 불연속성을 몇몇의 다른 자료나 후대의 편집으로 설명했다. 독일 학자 카를 지그프리드(Carl Siegfried)가 소개한 이래 20세기 초의 영국과 프랑스의 여러 주석서도 이러한 접근법을 바탕으로 연구했다.
둘째, 로더는 전도서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코헬렛이 의도적으로 보여 주는 여러 정반대의 관점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8:9-15에서 코헬렛은 상반되는 두 가지 진술을 한다. 악인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따라 타당한 징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코헬렛은 8:12 중반부부터 8:13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번성과 그림자와 같은 악인의 삶을 진술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진술들 이후 다시 코헬렛은 8:14에서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들, 즉 의인들과 악인들이 각각 자신이 받아야 하는 형벌을 받지 않고 모순된 형태로 그 상벌을 받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코헬렛은 헤벨(헛됨)을 선언하면서, 희락을 찬양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최상의 신적 선물이라고 진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