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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88932919324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콜로니아 린다비스타
악의 비밀
산중 장로
대령의 아들
소돔의 현자들
옆방
미로
파국을 향한 표류
사건들
나는 까막눈이다
해변
근육
투어
다니엘라
선탠
울리세스의 죽음
말썽꾼
세비야가 날 죽인다
혼돈 주간
옮긴이의 말
로베르토 볼라뇨 연보
리뷰
책속에서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한없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을 만한 이야기이다. 거기다 완결이 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는 결말이 없기 때문이다.
- 「악의 비밀」 중에서
이튿날 이른 시간에 강의가 있는 크리스테바는 잠을 자러 가고, 이어서 솔레르스도 잠을 자러 가고, 두 사람은 각자 책을 들고 가서 잠자리에 누웠다가 졸음이 쏟아져 눈이 감기면 침대 옆 탁자에 책을 놓을 것이고, 필리프 솔레르스는 꿈속에서 세상을 파괴할 비결을 알고 있는 과학자와 함께 브르타뉴 지방의 해변을 산책할 것이고, 그들은 바위와 검은 절벽이 늘어선 인적 없는 긴 해변을 따라 동에서 서로 걸어갈 것이고, 불현듯 솔레르스는 그 과학자(말하고 설명하는 사람)가 바로 자신이며 자기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축축한 모래(죽처럼 걸쭉한)와 잽싸게 숨을 곳을 찾는 게와 두 사람이 해변 위에 남긴 발자국(족적으로 살인자를 확인하는 꽤 논리적인 방법이다)을 보는 순간 이를 깨달을 것이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몇 년 전에 세미나 참가차 방문한 독일의 작은 마을이 등장하는 꿈속에서 그 마을의 깨끗하고 인적 없는 거리를 볼 것이고, 작지만 초목이 우거진 광장에 앉을 것이고, 눈을 감은 채 한 마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새가 새장 안에 있는 새일지 아니면 야생에 사는 새인지 궁금해할 것이고,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으며 라벤더와 오렌지 꽃 향이 나는 완벽한 미풍이 목과 얼굴에 스치는 것을 느낄 것이고, 그 순간 세미나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시계를 확인하지만 시계는 멈추어 있을 것이다.
- 「미로」 중에서
극단적인 주관성을 추구하는 자아의 문학은 물론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유아론적인 글쟁이들만 있다면 문학은 전부 소자아의 병역 의무나 하수구로 직행할 자서전과 회고록, 일기의 홍수로 변할 테고 어김없이 종언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어떤 교수의 오락가락하는 감정 상태를 궁금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입에 침도 안 바른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이가 세련되었다고 해도 따분한 마드리드 교수의 일상이 그 유명한 괴짜 카를로스 아르헨티노 다네리의 악몽과 꿈과 야망보다 더 흥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저는 무턱대고 자서전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발기 상태로 자지가 30센티미터 되는 남자가 쓴 자서전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젊었을 때 창녀였다가 말년에 그럭저럭 돈방석에 앉은 여자가 쓴 책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대충 휘갈겨 쓴 졸작을 만들어 낸 그 작자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유아론자들과 막가파식 문학의 불량아들 사이에서 고르라면 저는 단연 후자 쪽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차악의 선택일 뿐이죠.
- 「파국을 향한 표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