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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2920429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하나: 내 영혼이 근심되어
둘: 시온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진작 말해야 했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나보다 그에게 더 의미가 컸지만, 나는 그의 기분을 안다.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일에 처했다. 포니는 스물둘이고, 나는 열아홉이다.
그가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정말이야?」
「아니, 거짓말이야. 그냥 장난친 거야.」
그가 웃었다. 이제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그렇게 물어 보는
모습이 소년 같았다.
「지우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키워야 할 것 같아.」
나는 포니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그는 남자다. 이 더러운 일을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남자다. 솔직히 때로는 겁이 난다. 누구도 이런 더러운 일을 마냥 참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견디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멀리 생각하면, 아니, 그런 시도만 해도 이 일을 이겨 낼 수 없다.
(...)
사람이 곤경에 빠지면 정신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걸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사히 하루를 헤쳐 나가긴 한다. 사람들 말도 알아듣고, 대화도 하고, 맡은 일을 해내거나 적어도 일이 되게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눈으로 본 사람이 없고, 들은 이야기도 없을 뿐아니라 그날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금방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런 동시에 ─ 이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사람들이 전과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이 면도날처럼 번쩍인다.
「제가 이 회의를 소집했어요. 아빠한테 아저씨네 식구를 모두 불러서 오늘 제가 포니에게 전한 소식을 말씀드리자고 했어요. 포니는 아빠가 될 거예요. 제가 포니의 아이를 가졌어요.」
(...)
「그 아기는 누가 키울 건데?」 헌트 부인이 물었다.
「아기의 부모죠.」 내가 말했다.
헌트 부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성령은 아닐 거야.」 프랭크가 말했다.
헌트 부인이 프랭크를 노려보다가 일어나서 내게 걸어왔다. 느린 걸음이었고 숨을 참는 것 같았다. 나도 일어나서 역시 숨을 참고 거실 가운데로 갔다.
「너는 그 음행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달라.」 부인이 말했다.
「나는 전부터 네가 내 아들을 망칠 줄 알았어. 네 안에는 악마가 있어. 처음부터 알았어. 하느님이 오래전에 알려 주셨어. 성령은 네 배 속의 아이를 시들게 하실 테지만 내 아들은 용서받을 거야. 내가 기도하니까.」
부인은 그토록 어리석고 당당했다. 그것이 부인의 간증이었다. 프랭크가 껄껄 웃더니 부인을 손등으로 때렸고 부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모자가 뒤통수로 밀려났고,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 앞에 프랭크가 서 있었다. 부인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프랭크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