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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88933707487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18-09-0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진의 세계
주 왕실의 세계
서론: 진국사의 재조명
제1장 상말주초 산시성의 정치지리와 진의 봉건
1. 서론
2. 상 후기 산시성의 고고학 지구들
1) 진샨고원: 리자야문화 | 2) 진남분지 | 3) 동남고원 |
4) 진중지구 | 5) 펀하 중류의 징제촌묘지와 차오베이묘지
3. 갑골문에 나타나는 상 후기 산시성의 세력판도와 그 추이
4. 전래문헌상 당숙의 분봉지 당과 갑골문의 양
5. 당숙 우 봉건 재검토
6. 소결
제2장 서주시대 진의 세계와 문화적 특성
1. 서론
2. 취촌묘지
3. 베이자오 진후묘지
1) M114/M113 | 2) M9/M13 | 3) M6/M7 | 4) M33/M32 | 5) M91/M92 |
6) M1/M2 | 7) M8/M31 | 8) M64/M62/M63 | 9) M93/M102
4. 양서촌 진후묘지
5. 베이자오 진후묘들의 연대와 진의 세계
1) 베이자오묘지 출토 청동기들의 상대연대
2) 청동기 명문상의 진후와 「진세가」의 진후
6. 베이자오 진후묘지에 나타난 진 문화의 성격
7. 소결
제3장 서주시대 진국 주변의 정치체들
1. 서론
2. 붕국과 패국의 연원과 위상을 둘러싼 논쟁
3. 세 묘지의 상장의례: 다허커우 파격의 양면성
4. 소결
제4장 군사사 측면에서 바라본 서주시대 진국의 발전
1. 서론
2. 서주 군사력 구성과 왕권의 성격
3. 제후국의 군사력 운용과 진의 특수 지위
1) 서주 전기의 상황과 진의 역할 | 2) 서주 후기 제후국들의 참전 양상 |
3) 서주 후기 진의 군사적 역할
4. 서주 후기 왕실 측근 세력으로서 진의 발전
1) 주 왕실과 산시성 서남부 | 2) 서주 후기 주와 진의 관계
5. 소결
제5장 주 왕실의 동천과 진 문후
1. 서론
2. 동천을 둘러싼 출토문헌과 전래문헌의 이중주
1) 서주 멸망과 동천에 대한 의문 | 2) 『계년』의 동천: 미스터리 해소 |
3) 동천기 역사 다시 쓰기: 소악과 “주망왕구년”
3. 전래문헌상의 진 문후
4. 진강정과 융생편종 명문상의 진
5. 소결
제6장 춘추 초 진국의 새로운 발전: 곡옥 소종과 상궈촌 청동기
1. 서론
2. 기원전 7세기 중엽까지의 중원의 역사적 상황
3. 진국 내전의 추이
4. 허우마유지와 상마묘지
5. 상궈촌묘지
1) 독특한 청동기 | 2) 북방 초원문화의 요소 |
3) 허우마 청동기와의 연결고리 | 4) 상마묘지와의 발전 수준 비교
6. 소결
제7장 헌공의 혁신과 문공의 패업
1. 서론
2. 헌공 시대 진의 재부상
1) 공족의 제거 | 2) 융적과의 관계 개선 | 3) 영토의 확장: 지역국가로의 도약 |
3. 헌공과 혜공 재위기 진과 주의 관계
4. 출토문헌에 나타나는 문공의 패업
1) 자범편종 명문에 서술된 문공 패업의 과정 | 2) 진공반 명문과 문공의 패업
5. 소결
총결: 초기 진국사의 재구성
중문 요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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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산시성 서남부의 초기 진 유적지들은 진의 발전뿐만 아니라 진과 주의 관계까지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서주 초인 기원전 11세기 중후반 산시성 서남부에 분봉된 진은 주와 동성同姓인 희성姬姓 제후국으로, 기원전 7세기 후반 문공文公 재위기에 급기야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했고, 춘추시대 말 한韓, 위魏, 조趙의 삼국으로 분열될 때까지 제후국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다. 전국칠웅 중 세 나라가 진의 유산을 이어받았을 정도로 중국 고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진의 문화는 이질적인 북방식 융적 문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샨시성 중심지 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주 문화의 영향이 강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룰 문헌과 명문 자료들 역시 기원전 679년 곡옥 소종의 찬탈이 있기 전까지 진국이 주 왕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 준다. 변경 국가라기보다는 중심 국가의 양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주공은 상 말기 친상 정치체인 양昜 혹은 당唐에서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곳에 성왕의 아우 숙우를 봉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조처는 “융이나 적이 아닌” 산시성 서남부에 잔존한 친상 세력의 압박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필자가 제시하는 진의 분봉 원인은 이른바 삼감의 난이 초래한 주공의 동정東征이 성공한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다른 제후국들의 분봉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