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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각국정치사정/정치사
· ISBN : 9788933708286
· 쪽수 : 388쪽
책 소개
목차
인사말 …… 최태원
발간사 …… 박인국
축 사 …… 이홍구
…… 하영선
제3부 냉전의 이완·해체와 한미일중
요약 … 마상윤
제10장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1972-1992) … 마상윤
Ⅰ. 서론
Ⅱ. 1970년대 데탕트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Ⅲ. 1980년대-1990년대 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미소 냉전의 해체
Ⅳ. 결론
제11장 중국, 대전환의 20년(1972-1992) … 이동률
Ⅰ. 서론: 대전환의 20년
Ⅱ. 탈안보위협의 대전환: 중국의 대미 데탕트
Ⅲ. 탈고립의 대전환: 단계적, 선택적인 국제체제 진입
Ⅳ. 주변외교의 강화와 한중 수교
Ⅴ. 결론과 토론
제12장 데탕트, 신냉전, 탈냉전 시기 일본의 외교(1972-1992) … 조양현
Ⅰ. 서론
Ⅱ. 데탕트 전기의 일본 외교: 사토, 다나카, 미키 내각(1969-1976)
Ⅲ. 데탕트 후기의 일본 외교: 후쿠다, 오히라 내각(1976-1980)
Ⅳ. 신냉전기의 일본 외교: 스즈키, 나카소네 내각(1981-1987)
Ⅴ. 냉전 해체기의 일본 외교: 다케시타, 가이후, 미야자와 내각(1987-1993)
Ⅵ. 결론
제13장 데탕트, 신냉전, 탈냉전 시기 한국의 외교(1972-1992) … 우승지
Ⅰ. 서론: 한국 외교의 여정
Ⅱ. 데탕트 시기 한국 외교(1970년대)
Ⅲ. 신냉전과 한국 외교(1980년대)
Ⅳ. 탈냉전과 한국 외교(1990년대 초반)
Ⅴ. 결론
토론 … 김승영, 이원덕, 이희옥, 김용호, 박인국, 박태균, 송민순, 신각수, 안호영, 이재승
제4부 탈냉전과 중국의 부상
요약 … 박철희
제14장 탈냉전 시기 미국의 대외전략과 동아시아: 단극구조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 차태서
Ⅰ. 탈냉전 30년 역산하기
Ⅱ. 탈냉전 시기 미국 대외전략의 흐름
Ⅲ. 탈냉전 시기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변동
제15장 탈냉전 시기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한미일중(1990년대-2010년대) … 박철희
Ⅰ. 서론: 탈냉전 시기 일본 국가전략의 변화와 시기 구분
Ⅱ. 1990년대: 미일동맹의 재정의와 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 화해 시도
Ⅲ. 2000년대: 동맹과 다자주의의 결합 속에 중국을 견제
Ⅳ. 2010년대: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는 광역지역전략 구상
Ⅴ. 결론: 탈냉전 시기를 관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
제16장 탈냉전 시기 중국의 대외전략과 한미일중(1990년대-2020년대) … 김한권
Ⅰ. 서론
Ⅱ. 냉전의 종식과 중국 대외전략의 변화
Ⅲ. 1990년대 장쩌민 시기와 ‘중국의 부상’
Ⅳ. 2000년대 후진타오 시기, ‘부상’에서 ‘G2’로
Ⅴ. 2010년대-2020년대 시진핑 시기, ‘도광양회’ 에서 ‘분발유위’로
Ⅵ. 결론
제17장 탈냉전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실리외교와 적대외교의 부정교합(1990년대-2010년대) … 박원곤
Ⅰ. 서론: 실리와 핵 개발 동시 추구
Ⅱ. 북한 대외정책의 원칙: 자주, 친선, 평화
Ⅲ. 1990년대: 개혁·개방 대 핵무장
Ⅳ. 2000년대: 전방위 외교와 2차 핵위기
Ⅴ. 2010년대: 핵 질주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Ⅵ. 결론: 핵 포기 없는 실리외교는 불가능
토론 … 김재철, 신성호, 김민석, 김숭배, 김승영, 김용호, 마상윤, 박영준, 박인국, 윤영관, 이미숙, 임혁백
좌담회 한미일중 100년의 교훈
토론 … 박인국, 박영준, 전재성, 마상윤
기획 및 편집 … 김용호
참가자 프로필
저자소개
책속에서
부시 행정부 당시 국제적인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 정세도 급변했다. 1991년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고, 12월에는 상호불가침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이 1991년 9월 27일 전 세계의 모든 지상 및 해상 발사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1992년 1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채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가시적 진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1992년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었다.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영변 원자력시설에 대한 사찰을 벌인 결과 신고되지 않은 플루토늄 추출량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인데, 이후 IAEA가 북한에 특별사찰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임의로 탈퇴하면서 제1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는 국제적 난제인 북핵 문제가 등장했다.
― 제10장
1989년 이후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연이어 한국과 수교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독 가장 뒤늦게 한국과 관계정상화를 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고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만큼 한국과의 수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과의 수교를 지연시켜 왔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북한 요인’ 때문이었다. 중국은 ‘북한발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가 사실상 한국과의 수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중국이 한국과의 경제협력 수요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적’ 수교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었다. 즉 남북한 관계 개선, 그리고 나아가 남북한이 상호 정치 실체를 인정하고 국제사회로부터도 사실상 ‘투 코리아 (Two Korea)’가 수용되어 중국의 ‘북한 부담’이 완화되는 것이었다.
― 제11장
1991년 1월 걸프전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분쟁은 세계평화 및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역할에 대해서 관심을 촉발시킨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 등의 공헌 요구에 대해서 파병이 아닌 재정적 지원으로 일관한 결과, 130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부담하였으면서도 국제사회로부터 일본의 협력은 ‘너무 작고도 너무 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쇄도하였다. 이는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일본이 추구해야 할 국가노선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촉발시켰고, 그 중심에는 ‘평화국가’ 일본의 취약성이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냉전 해체 후의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전망과 대응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채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던바,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가전략의 모색이 본격화하였다.
― 제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