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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중관계사 연구

20세기 한중관계사 연구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중관계)

배경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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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중관계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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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20세기 한중관계사 연구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중관계)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33708422
· 쪽수 : 712쪽
· 출판일 : 2024-09-30

책 소개

중국의 1903~1949년, 특히 신해혁명부터 국공내전 시기에 한정하여, 중국에서 펼쳐졌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당시 대중들의 인식과 본국 정부 및 임시정부가 수립했던 정책과 그 결과를 비롯하여 열강들의 다툼으로 재편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상 등을 상세히 다루었다.

목차

책머리에

서장 지구지역사 및 동아시아사 시각하의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중관계
―기존 연구성과 및 연구시각 검토
Ⅰ.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
Ⅱ. 새로운 관점의 모색: 지구지역사 및 동아시아사 시각하의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중관계
Ⅲ. 차례의 구성과 문제 제기

제1장 동아시아 공화혁명으로서의 신해혁명과 한국(1903〜1913)
들어가는 말
제1절 동아시아 공화혁명으로서의 신해혁명
Ⅰ. 청일전쟁 이후 중화제국체제의 와해와 한중관계의 변화
Ⅱ. 중국 공화혁명의 전개와 청조의 멸망
Ⅲ. 공화혁명의 확산-한국과 베트남의 경우
Ⅳ. 변방의 이탈-티베트와 몽골의 경우
제2절 신해혁명과 한국독립운동의 본격화
―상하이·난징 지역의 초기(1911~1913) 한인 망명자들과 신해혁명
Ⅰ. ‘중국혁명’과 초기 한인 망명자들
Ⅱ. 우창기의와 위안스카이 토벌전쟁에의 참여
Ⅲ. 쑨원·혁명파 인사들과의 교류
제3절 신해혁명에 참여한 한국인들 1
―김규흥의 광둥廣東에서의 활동
Ⅰ. 중국 망명 이전의 교육구국운동
Ⅱ. 중국 망명과 상하이·난징에서의 활동
Ⅲ. 신해혁명과 광둥군정부에의 참여
Ⅳ. 토원운동과 『향강잡지』의 창간
제4절 신해혁명에 참여한 한국인들 2
―김병만의 허난河南에서의 활동
Ⅰ. 중국 망명 이전 애국계몽운동과 『민권자치제』 번역
Ⅱ. 중국 망명과 허난행
Ⅲ. 허난·산둥 지역 혁명파 인사들과의 교유
Ⅳ. 신해혁명 이후 허난에서의 활동
나오는 말

제2장 1910년대 동아시아의 반제민족운동과 한중연대의 모색(1914〜1919)
들어가는 말
제1절 제1차 세계대전, 파리강화회의와 동아시아 반제민족운동의 고양
―신규식·동제사그룹의 중국 내 청원운동과 한중연대의 모색
Ⅰ. 1917년, 종전에의 전망과 강화회의 참여 준비
Ⅱ. 1918년 12월~1919년 1월, 광둥군정부 방문과 청원서 제출
Ⅲ. 1919년 1월~2월, 베이징정부와 미국 공사관에의 청원서 제출
Ⅳ. 강화회의 관련 청원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응
제2절 동아시아 반제민족운동으로서의 3·1운동과 5·4운동
Ⅰ. 3·1운동과 5·4운동의 동시성
Ⅱ. 한국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 전환
제3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과 지구지역사상의 의미
―동아시아 지역 민주공화, 반제연대의 출발점
Ⅰ. 근대적 국제도시 상하이 지역의 한인사회 형성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성립
Ⅱ. 상하이 한국임시정부 성립의 동아시아 역사상 의의
나오는 말

제3장 1920년대 동아시아 반제연대와 한중연대의 고양(1920〜1930)
들어가는 말
제1절 임시정부의 워싱턴회의 참석 외교와 중국
―신규식의 광저우 호법정부 방문과 쑨원
Ⅰ. 신규식 광저우 방문의 배경과 일정
Ⅱ. 임시정부 승인 문제와 쑨원의 입장
제2절 1920~1923년 중한호조사의 성립과 한중연대 활동
Ⅰ. 중한호조사의 성립과정
Ⅱ. 상하이 중한호조총사와 우산, 박은식
제3절 임시정부와 동아시아 반제연대
―장저우회의(1920년 4~5월)와 한·중·러 사회주의자들의 반제연대
Ⅰ. 임시정부 성립 직후 소비에트러시아·코민테른과의 접촉과 여운형
Ⅱ. 장저우회의와 여운형
제4절 임시정부와 국민혁명
―여운형의 중국국민당이전대회 참석과 반제연대 활동
Ⅰ. 코민테른에의 접근
Ⅱ. 국민당이전대회 참석과 ‘반제연대’ 연설
Ⅲ. ‘반제연대’로서의 북벌 지원
나오는 말

제4장 중일전쟁 시기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중관계(1931〜1940)
들어가는 말
제1절 중일전쟁 초기 국민정부의 한국독립운동 지원과 장기항전에의 “동원”
― 윤봉길의거 이후 김원봉·김구에 대한 지원과 장제스·국민정부의 입장
Ⅰ. 1·28 상하이사변과 윤봉길의거
Ⅱ. 장제스·국민정부의 김원봉·김구 지원과 ‘장기항전’
제2절 중일 전면전쟁 발발 직후 국민정부의 한국독립운동 지원과 그 성격
― 조선의용대 창설·운영에 대한 군통·군사위원회의 “지원”과 대적선전전에의 “동원”
Ⅰ. 국민정부의 군사정보기관, 군통의 성립과 역할
Ⅱ. 조선의용대의 창설과 역행사(군통), 군사위원회 정치부의 “지원”
Ⅲ. 조선의용대의 “대적선전전”에의 동원
제3절 중일전쟁 시기 장제스·국민정부의 한국 인식
―한국광복군에 대한 통제와 임시정부 승인 유보
Ⅰ.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장제스·국민정부의 입장
Ⅱ. 임시정부 승인 문제와 장제스·국민정부의 태도
Ⅲ. 한국임시정부 승인 문제와 중미관계
제4절 1941년의 “꿈”
―미국 참전 직전 한국광복군의 국제정세 인식과 종전에의 전망
Ⅰ.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한국청년』, 『광복』의 발간
Ⅱ. 『한국청년』, 『광복』에 나타난 국제정세 인식
나오는 말

제5장 태평양전쟁·국공내전 시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중관계의 변동(1941〜1949)
들어가는 말
제1절 카이로회담에서의 한국문제와 장제스·국민정부의 입장
Ⅰ. 장제스 국민정부의 카이로회담 준비과정과 한국문제
Ⅱ. 카이로회담에서의 한국문제와 장제스의 입장
제2절 종전 직전 중미·한미관계의 변화와 중국의 한국광복군 통제 완화
― 1944년 6월 미국 부통령 월리스의 중국 방문 전후 임시정부의 대미 접근과
국민정부의 한국광복군 통제 완화
Ⅰ. 월리스 부통령의 방중과 중미관계
Ⅱ. 임시정부의 월리스 면담 시도와 비망록 전달
Ⅲ. 국민정부의 대응: 구개준승의 철폐와 임시정부에 대한 “통제완화”
제3절 종전 전후 시기 중미관계와 국민정부의 대한정책
―종전 직전 전후 한국문제 처리 구상과 종전 직후 임시정부 환국 과정
Ⅰ. 종전 직전 국민정부의 한국문제 처리 구상
Ⅱ. 종전 직후 임시정부의 환국 문제와 국민정부의 입장
제4절 국공내전 시기(1946~1949) 국민정부의 대한정책
―국민정부의 둥베이 한인·한반도 관련 정보 수집 노력과 주화대표단
Ⅰ. 둥베이에서의 국공내전과 주화대표단
Ⅱ. 국민정부의 둥베이 한인·한반도 관련 정보 수집과 주화대표단
나오는 말

종장 20세기 전반기 한중관계와 21세기 한중관계와의 연속성
Ⅰ. 이 책의 내용 요약
Ⅱ. 20세기 전반기 한중관계와 21세기 한중관계와의 연속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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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배경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3년 경북 김천 출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난징(南京)대학 역사연구소 연구교수(1995~1996), 미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방문연구원(2006~2007), 중국 저장(浙江)대학 장제스연구소 객좌교수(2010~2024),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2001~2002),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2018~2022) 등을 지냈다. 1982년부터 2018년까지 신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부산대학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 『장개석연구―국민혁명 시기 군사적·정치적 대두 과정』(일조각, 1995), 『從韓國看的中華民國史』(北京,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4), 『20세기 초 상해인의 생활과 근대성』(편저, 지식산업사, 2006), 『쑨원과 한국―중화주의와 사대주의의 교차』(한울, 2007), 『왕징웨이 연구―현대 중국 민족주의의 굴절』(일조각, 2012), 『중국과 아시아―근현대 중국의 아시아 인식과 아시아주의』(한울, 2016), 『중국근현대사강의』(책임편집, 한울, 2021), 『한국독립운동과 중국』(공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3) 외에 국내외 공저 30여 권, 논문 9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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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하는 20세기 한중관계는 바로 이러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마찬가지로 서구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아식민지亞植民地, semi-colony로 전락한 중국의 관계가 어떠한 구조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아래 식민지에 버금가는 처지에 놓이게 된 중국과, 아시아의 신흥 열강 일본의 식민지로서 국가적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한국의 관계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20세기 전반기 한중관계사”에 해당한다. 이렇게 볼 때 20세기 전반기의 한중관계는 아식민지와 식민지 간의 동지적 관계를 가지는 한편으로 식민지 한국의 아식민지 중국에 대한 의존과 중국의 전통적 중화체제로의 회귀라는 다면적·비대칭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존성, 회귀성 및 비대칭성을 일차적으로, 그리고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 근대국가에 대한 모색 단계로서의 중국의 공화혁명, 곧 신해혁명과 연동하면서 전개된 중국 내 한국독립운동의 공화(민주)와 독립(자주)에 대한 지향과 이를 둘러싼 한중 간의 협력, 길항관계가 될 것이다. 이른바 중화제국체제의 와해라는 위기현상은 신해혁명의 또 다른 면모인 것이다.

- 제1장 「동아시아 공화혁명으로서의 신해혁명과 한국(1903~1913)」


중국혁명의 소식을 듣고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되는 경우는 1913년 초에 상하이·난징으로 망명해 갔던 정원택한테서도 확인되고 있다. 정원택은 1912년 초에 대종교 쪽과 연줄이 닿아 간도 지역으로 망명했다가 그곳에서 1년을 지낸 뒤 1913년 초에 다시 상하이·난징 쪽으로 유학을 갔던 것인데, 그의 중국 망명 결심은 당시 한 선비로부터 ‘중국에서 쑨원과 황싱黃興을 중심으로 한 혁명운동이 한창이고 뜻있는 한국의 청년들도 다수 참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또 1912년 초에 난징에 망명하여 기독교병원에서 일하며 그곳의 정치지도자들과 교류를 하고 있던 이태준李泰俊도 1911년 말 친구인 김필순金弼淳과 함께 망명을 모의하게 된 것이 “일제의 폭압으로 불만이 쌓여가던 중에 마침 이웃 대륙에서 혁명군의 소식이 천하에 진동하자 이에 감격되어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1913년 4월경에 상하이로 망명해 간 김규식金奎植의 경우에도 신해혁명(우창기의)의 성공이 주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 제1장 「동아시아 공화혁명으로서의 신해혁명과 한국(1903~1913)」


5·4운동 발발 전후까지 계속된 3·1운동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3·1운동의 반일 독립 주장과 산둥문제를 둘러싼 중국인들의 반일 주장을 하나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3·1운동 직후인 3월 14일자 『대공보』 제1면에는 중요기사로 「강화회의에 대한 로이터통신路透社의 보도」를 다루고 있는 동시에 베이징의 영자지 『Peking and Tientsin Times 京津泰晤士報』의 보도를 인용하여 「한인독립운동의 추가 소식餘聞」을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니 바로 옆에 붙은 이 기사들을 보는 경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산둥문제와 한국의 독립문제가 모두 일본의 침략에 의한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대공보』의 경우, 3·1운동 내지 한국독립운동과 파리강화회의 내지 산둥문제를 병렬하는 이러한 보도는 그 후에도 연이어 나타나고 있었으니 3월 26일자, 28일자, 29일, 4월 13일자, 14일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를테면 5·4운동이 발발하기 직전 시기 중국인들에게 3·1운동은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산둥반도를 회수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창구였던 것이다.

- 제2장 「1910년대 동아시아의 반제민족운동과 한중연대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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