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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34933939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4-09-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1부 사건과 사연
1장 역사와 유물, 그 숨은 연결 고리를 찾다
1. 짱돌로 지구를 정복하다: 360만 년 전 직립보행한 인류의 삶
2. 태풍 매미가 가져온 뜻밖의 선물: 신석기인의 배와 똥 화석이 둥실 떠오르다
3. 금제 띠고리의 주인공 낙랑인: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4. 침몰선이 전해준 900년 만의 증언: 고려청자를 꿀병과 참기름병으로 썼다고?
5. 기적의 극초정밀 유물 발견: 0.05mm 금박 화조도 선각단화쌍조문금박
6. 광화문광장 엿보기: 중국 사신 홀리고, 무대 붕괴 인재도 있었다
7. 백제 멸망의 장면들: 1,400년 전 최후의 순간을 증언하다
2장 과학부터 외교까지, 시대를 뒤흔든 사건들
8. 선도적 천문 기록: 케플러보다 먼저 초신성 폭발을 관측하다
9. 임진왜란 때 투항한 1만 명의 일본인: 그들은 왜 조선을 위해 싸웠나
10. 실록에 기록된 요절복통 사건 파일: 어전에서 방귀를 뀌었다고?
11. 외교 선물이 애물단지가 되다: 코끼리 유배 사건의 전모
12. 인간의 똥에서 추출한 화약: 화약 제조 비법서를 밀수한 역관의 용기
13.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 단돈 180프랑에 팔리다
14. 조선 호랑이는 왜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 한반도 침략 야욕의 희생양
15. 제2의 광개토대왕비인가: 향토 모임이 우연히 발견한 충주 고구려비
2부 인물과 인연
3장 왕과 백성들이 남긴 흥미로운 기록들
16. 동굴 속에서 발견한 비밀 통로: 신라 진흥왕의 낙서를 만나다
17. 민간인이 쓴 ‘난중 일기’: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전쟁의 비통함을 기록하다
18. 춤을 사랑한 효명세자: 궁중 예술의 총감독이 되다
19. 어진에 담긴 정신: 어진은 초상화가 아니라 사진이다
20. 임금도 눈치를 봐야 했던 현판 쓰기: 전하가 연예인입니까?
21. 왕조시대 군주들의 재난 대처법: 모두 과인의 책임이다!
22. 국새에 찍힌 기막힌 영어 낙서: 국새와 어보는 우리의 자산
23. ‘신일본인’을 선택한 이봉창: 그는 왜 일왕을 처단하려 했을까
4장 그때도 지금도 사람 사는 것은 다르지 않다
24. 1,500년 전 무덤에 묻힌 개의 정체: 신라인의 반려견, 가야인의 경비견
25. 신라에서 유행한 이모티콘과 줄임말: ‘수전(水田)’ 대신 ‘답(畓)’을 쓴 이유
26. 〈오징어 게임〉은 가라, 나한이 납신다: 호주도 열광한 ‘볼매’ 얼굴
27. 기로소가 무엇이기에: 50대에 노인 대접 요구한 숙종과 영조
28. 나라의 운명을 바꾼 소주: 세종조차 ‘임금도 못 막는다’고 인정하다
29. 조선 최초의 패션모델: 여성해방을 그린 혜원 신윤복
30. 최고 5만 대 1의 극한 경쟁률: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비밀
31. 조선이 조용한 은자의 나라?: 분통 터진 미국인 독립투사
32. 100년 전부터 시작된 꼴값 영어: 조선을 뒤흔든 영어 열풍
33. 19세기를 풍미한 조선판 댓글 문화: 쌍욕에 음담패설, 신상 털기까지
참고 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비봉리 유물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똥(糞) 화석’일 겁니다. 발굴 때 파낸 흙을 0.2~1mm 그물망으로 일일이 체질한 결과 찾아낸 보물이죠. 어떤 신석기인이 시원하게 배설을 했는데, 그게 따가운 햇볕에 굳어버렸고, 그 위에 계속 흙이 쌓여 결국 화석으로 변한 겁니다. 발굴에 참여한 당시 이정근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똥 화석을 보면 팥알 반 크기의 알갱이가 있습니다. 똥 속에 음식물 잔해가 남아 있는 겁니다.” 고고학 발굴 사상 처음으로 똥 화석을 찾아낸 조사단은 흥분 상태에 빠졌고, 이후 발굴 현장에서는 “똥 찾았어요?” 하는 게 인사였다고 합니다.
연구소는 이 작은 금박을 완전체로 복원한 뒤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0.3g의 금박 순도가 포 나인(four nine), 즉 99.99%였던 겁니다. 불순물이 0에 가까운 고순도 정련 기술을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확보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참고로 신라시대 금관(6점)의 금 함유량은 80~89%(19~21K)입니다. 무엇보다 끌이나 정으로 새긴 선의 굵기가 신비롭기 그지없는데,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0.08mm)보다 얇은 0.05mm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가무형유산 김용운 조각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요. “컴퓨
터로 도안한 그림을 레이저로 쏘면 가능할까요? 한번 시도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0.05mm 문양을 새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는 2만~3만 명(일본 측 자료) 또는 10만~40만 명(조선 측 자료)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일본군 포로는 얼마나 됐을까요? 다음은 1597년(선조 30) 5월 18일 도원수 권율이 적진에 밀파한 첩자들의 보고를 정리해서 조정에 알린 내용입니다. “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항복한 일본인)의 수가 이미 1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 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군거립니다.” 한 연구자가 실록에 등장하는 항왜의 수를 집계했는데, 모두 42건 600명에 달합니다. 기록된 것만 이 정도이니, 갖가지 이유로 항복하거나 귀화한 왜인이 꽤 많았겠죠. 그들 중에는 김귀순, 김향의, 이귀명 등의 이름도 보이는데, 귀순하고(귀순), 의를 좇았으며(향의), 천명에 귀의했다(귀명)는 뜻에서 조선 조정이 하사한 이름임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