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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2](/img_thumb2/9788934944645.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4944645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4-04-18
책 소개
목차
3부
창문 -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
기차에서 - 인생은 속력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쌀 한톨 - 6월의 무논을 바라보며
나무에 대하여 - ‘나의 나무’가 있었다
전쟁 없는 천국에서 영면하소서! -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새는 언제나 옳다 - 새는 인간의 영혼
시간에게 - 시간도 신(神)의 피조물이다
감사하다 - 태풍에 대하여
첫눈 - 그리운 아버지의 손
꿀벌 - 김현승(金顯承) 시인을 만나다
염천교 다리 아래 비는 내리고 - 그리운 서울역
소년부처 - 목 잘린 돌부처님
바닷가에 대하여 - 봄바다
뿌리의 길 -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별밥 -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많지 않다
시집 - 책은 모유다
통닭 - 도계장(屠鷄場), 닭들의 아우슈비츠
4부
밥값 - 나는 밥값을 하고 있는가
후회 -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 보내는 편지
생일 선물 - 가장 소중한 선물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하늘의 그물 - 모성의 힘
배반 - 춘란 이야기
옥수수죽 한 그릇 - 탈북시인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여행 - 인생은 여행이다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 신(神)에게 귀 기울이는 것 또한 기도다
타종(打鐘) - 에밀레종
고래를 위하여 - 바다가 아름다운 까닭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 - 아래를 먼저 보세요
손을 흔든다는 것 -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여름밤 - 네모난 수박
벼랑에 매달려 쓴 시 -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백두산 - 하느님이 쓴 시
구두 닦는 소년 - 별을 닦는 사람
저자소개
책속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낙엽도 직각으로 떨어진다’는 춘천 보충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전방 지역 어디로 배치받게 될지 몰라 두려움과 초조함에 떨고 있을 때, 이등병인 나를 누가 면회왔다고 했다. 나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넓은 연병장을 숨 가쁘게 달려갔다. 멀리 면회실이 있는 정문 위병소 옆에 조그마한 한 사내가 외투 깃을 올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였다. 뜻밖에 아버지가 대구에서 그 먼 춘천까지 면회를 오셨다.
“춥제?”
아버지가 외투 속에 넣어두었던 손을 꺼내 고된 훈련으로 거칠게 상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배고프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빵 먹을래?”
면회소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단팥빵을 연달아 몇 개나 급히 먹으면서도 핑 도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타이탄 트럭을 타고 참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얼핏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열댓 번은 더 한 것 같다. 그 까닭은 바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전세 임대차계약 기간이 2년인 요즘과는 달리 예전에는 6개월이 계약 기한이었다. 그러니 잘못하면 1년에 두 번을 이사하게 되고 만다. 이사할 때 타이탄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나면 내가 탈 자리가 없어 어떤 때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서울 시내를 달리게 된다. 그때 바라보게 되는 거리의 풍경은 쓸쓸하다 못해 참으로 서러웠다. 그래서 그때 타이탄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도시 한복판을 달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가난한 가장이 운전하는 타이탄 트럭이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멀리 암벽이 있는 해안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다. 타이탄 트럭까지 아름답게 해주는 봄바다가 고맙다. 바다는 가난의 추억까지 아름답게 해준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신설동 로터리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걷다가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해본 적도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 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나는 젊음을 잃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눈 내리는 거리를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