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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ISBN : 9788934950332
· 쪽수 : 752쪽
· 출판일 : 2011-04-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4
서설 은성했던 차 문화의 기억을 찾아서 8
제1부. 잊혀진 차 문화의 기억을 깨우다
1. 일곱 가지 향차 이야기 :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 27
저자 이운해에 대하여ㅣ『부풍향차보』는 어떤 책인가?ㅣ『부풍향차보』와 향약차
2. 마침내 찾은 우리 차 문화 고전 : 이덕리와 『동다기』 41
「기다」인가 『동다기』인가?ㅣ이덕리는 누구인가?ㅣ『동다기』는 어떤 책인가?
3. 18세기 차 문화의 실상은 어땠나? : 『동다기』의 차 이해 55
18세기 조선의 차 문화 실상ㅣ 차의 산지와 채다ㅣ차의 별칭
4. 떡차 마시는 법과 우리 차의 우수성: 『동다기』의 떡차론과 차 효용론 71
떡차와 엽차ㅣ떡차 마시는 법ㅣ우리 차의 우수성과 차의 효능
5. 차 무역의 구상과 운용 계획 : 『동다기』의 차 무역론 85
『동다기』의 저술 목적ㅣ차 채취 방법과 예상 수익ㅣ차시 운영 방법과 수익금 활용 방안
제2부.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
6. 역대 중국의 차 전매제도 : 다산의 「각다고」론 103
전대의 각다 논의ㅣ「각다고」의 내용ㅣ역대 각다 정책에 대한 다산의 태도
7. 아홉 번 찌는 구증구포의 제다법 :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 119
다산이 마신 차는 떡차ㅣ다산의 떡차에 대한 다른 증언들ㅣ구증구포의 실체ㅣ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ㅣ일제강점기로 이어진 떡차 제법
8. 스님! 차 좀 보내주소 : 다산의 걸명 시문 139
다산의 초기 차 생활ㅣ다산과 혜장의 만남과 걸명시ㅣ다산의 「걸명소」
9. 우리 차 문화 중흥의 산실 : 다산초당과 다산의 차 생활 153
다산초당의 다조와 약천ㅣ새로 찾은 다산의 차시와 차 편지ㅣ다산의 소실 정씨 모녀와 자족적 차 생활
10. 주머니에 담아둔 찻잎 : 아암 혜장의 차시 175
다산과 혜장의 교유시ㅣ혜장의 걸명 답시ㅣ혜장의 차시
11. 차 맷돌을 빙글빙글 돌려 : 『육로산거영』에 보이는 차시 189
『육로산거영』의 구성과 차시ㅣ『육로산거영』에 수록된 석옥 화상의 차시ㅣ다산의 차시ㅣ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의 차시ㅣ철선 혜즙의 차시
12. 적막히 스님 하나 찾아오누나 : 다산과 초의 209
다산과 초의의 첫 만남ㅣ다산초당에서의 강학ㅣ다산의 가르침과 내면 갈등
제3부.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13. 풀옷 스님의 이름 내력 : 초의 명호고 229
출가와 법명 의순ㅣ초의란 이름의 연원ㅣ중부란 자의 의미
14. 나뭇가지 하나로도 편안하다네 : 일지암 이야기 243
‘일지’에 담긴 뜻ㅣ일지암 건립 경과ㅣ일지암의 공간 배치
15. 남녘 차의 짙은 향기 :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몽하편」 263
초의와의 첫 대면과 「남차병서」ㅣ초의의 「증교」시 화답과 박영보의 답시ㅣ「몽하편」에 얽힌 이야기
16. 차 끓여 박사 이름 얻으셨구려 : 초의와 신위 275
신위의 「원몽」 4수ㅣ자하의 「남차시 병서」ㅣ삼여탑과 초의차ㅣ초의의 단차와 신위의 음다법
17. 차의 역사를 말씀드립니다 : 『동다송』 다시 읽기 297
『동다송』의 창작 동기ㅣ『동다송』 새 풀이ㅣ『동다송』의 내용 구성과 의미
18. 찻일은 차와 물의 조화 : 『다신전』의 의미 311
『다신전』은 왜 베꼈나?ㅣ『다신전』과 초의의 제다법ㅣ다신의 정체
19. 찌든 속을 씻겨주오 : 초의와 황상 325
추사와 황상ㅣ초의와 황상의 만남ㅣ교유와 걸명시
20. 소나무 아래서 수벽탕을 달입니다 : 초의와 홍현주 341
초의와의 첫 만남ㅣ초의가 해거에게 보낸 편지와 『동다송』ㅣ초의의 금강산 여행과 수증시
21. 눈을 녹여 차를 끓였네 : 해거 홍현주의 차시와 차 생활 359
눈물로 끓인 보이차ㅣ해거의 걸차시와 명집ㅣ해거의 차시와 차 생활
제4부. 차 문화를 앞장서 이끈 추사
22. 차의 삼매경을 깨달았구려 : 추사와 초의 377
추사의 차 입문과 차 생활ㅣ초의와 추사의 첫 대면ㅣ걸명 편지와 초의차의 종류
23. 차로 인해 물맛을 알고 : 추사의 차 생활과 그 밖의 걸명 편지 393
초의에게 준 시문과 글씨ㅣ쌍계사 승려들에게 보낸 차 시문ㅣ역관 제자들과의 차 인연
24. 차 바구니를 온통 뒤져서라도 : 추사와 다선 향훈 407
추사의 편지와 향훈의 차ㅣ향훈에게 준 추사의 게송ㅣ향훈에게 보낸 편지와 ‘다선’의 호칭
25. 차를 반쯤 마시고 향을 사르다 : 다반향초론 419
‘다반향초’는 무슨 뜻인가?ㅣ신위와 북선원의 다반향초실ㅣ‘다반향초’를 노래한 한시들
26. 신필의 장한 기운 : 추사 「명선」 진안변 435
「명선」 위작설의 경과와 논거ㅣ「명선」에 얽힌 초의와 추사의 인연ㅣ「명선」의 필획, 과연 추사의 것이 아닌가?
제5부. 그 밖의 후원자들
27. 차 만드는 법을 논함 : 산천 김명희의 「다법수칙」 459
새 자료 「다법수칙」에 대하여ㅣ「다법수칙」의 채다법ㅣ「다법수칙」의 초다법
28. 어찌 이리 웅장한가? : 산천 김명희의 「사차」시와 초의의 제2다송 471
산천과 초의의 인연ㅣ산천의 「사차」시ㅣ제2의 다송, 초의의 답시
29. 반드시 스님이 만든 차라야 합니다 : 정학연의 차 편지와 호의의 장춘차 483
정학연의 차시와 차 관련 기록ㅣ호의의 장춘차ㅣ정학연의 차 청하는 편지
30. 포장을 열자마자 맑은 향기가 : 정학유의 차 편지와 두륜진차 501
정학유의 차시와 초의의 화답시ㅣ호의의 두륜진차ㅣ수제진품차의 효능
31. 차의 원류를 묻는다 : 이규경의 「도차변증설」고 515
‘도(?)’와 ‘차(茶)’의 관계ㅣ‘차’의 용례와 다품, 우리 차에 대한 논의ㅣ차씨를 뿌리고 심는 방법ㅣ대용 차에 관한 논의
32. 그 운치 참으로 얻기 어렵네 : 신헌과 초의 529
신헌과 초의의 교유ㅣ신헌과 초의의 시문 수창ㅣ신헌의 차시
33. 다품 중의 으뜸 : 신헌구의 「차설」과 초의차 545
신헌구와 대둔사 승려의 교유ㅣ신헌구의 「차설」ㅣ신헌구의 차시
34. 돌샘물로 반죽해서 진흙처럼 이겨서 : 백운동 별서와 월산작설차 559
백운동 별서의 공간 구성과 내력ㅣ다산의 『백운첩』과 초의의 「백운동도」ㅣ백운동과 월산작설차
35. 돌솥의 푸른 차 연기 : 우선 이상적의 차시와 차 생활 577
일상 속의 차시ㅣ차를 통한 삶의 성찰ㅣ우리 차와 외국 차에 대한 기록
36. 작은 용이 꿈틀꿈틀 서려 : 가야사 탑에서 나온 700년 된 용단승설차 597
이상적의 「기용단승설」ㅣ황현의 『매천야록』에 보이는 기록ㅣ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ㅣ가야사의 옛 모습
37. 내 다옥 나 홀로 좋아할밖에 : 이유원의 다옥과 차시 611
다옥을 짓고 차를 즐긴 차인ㅣ우리 차에 대한 애정과 감식안ㅣ중국차와 일본 차에 관한 기록
38. 참기 어려운 차 생각 : 범해 각안의 「차약설」과 「차가」 635
「차약설」의 차 효용론ㅣ「차가」의 차론ㅣ초의차에 대한 증언과 그 밖의 차시
에필로그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전망과 과제’ 649
부록 ‘조선 후기 차 문화 활동 연보’ 653
미주 665
참고문헌 731
찾아보기 73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조선 후기 차 문화는 다산과 초의, 추사에 의해 다시 일어났다. 이 책은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집필되었다. 대부분의 기록은 다산에서 출발하여 초의로 수렴된다. 그 사이에 추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초의차의 명성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탁월한 안목과 실천이 명맥이 다 끊어진 차 문화의 불씨를 되지펴놓았다.
이들이 마신 차는 대개 떡차였다. 잎차가 없지 않았지만 소량이었다.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식습관으로 인해, 차의 강한 성질을 눅이기 위해 구증구포 또는 삼증삼쇄의 제다법이 발달한 것도 새롭게 확인했다. 이들이 마신 차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녹차와는 다른 차다. 이런 것은 이 책 속에 수없이 많은 용례가 나오니, 옳다 그르다 시비할 일조차 못 된다.
이 책은 사적 계통과 맥락을 정연하게 갖춘 차 문화사가 아니다. 주제별로 분석하여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부풍향차보』와 『동다기』 외에 수많은 차 관련 1차 자료들을 발굴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한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편지글과 문집 자료로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빈 공간을 채워가는 과정은 괴롭고도 즐거웠다. 다산과 추사의 차 관련 친필 편지와 만난 기쁨, 박영보의 수십 권 문집과 마주했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그 밖에 초의와 황상, 신위와 신헌 등 주요 인물들의 글 속에서 차와 관련된 금싸라기 같은 정보를 얻게 될 때마다 신나고 기뻤다. _「머리말」 중에서
잊혀졌던 차 문화는 18세기로 접어들며 비로소 새롭게 되살아났다. 그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부안현감 이운해는 고창 선운사 차밭의 존재를 알고서, 이곳의 찻잎을 따와 7종 향차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방법을 『부풍향차보』란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이것은 고창 사람 황윤석의 일기에 잠깐 기록되고 말았을 뿐 이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졌다. 그로부터 40년 뒤, 진도로 귀양 온 죄인 이덕리가 『동다기』를 지었다. 그는 역모에 관련된 죄인이었으므로, 저술을 남기고도 자기 이름 석 자조차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이후 이 책은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 실물도 없이 고전이 되었다.
이덕리가 『동다기』에서 펼친 차 무역 주장은 지금 안목으로 보더라도 참으로 놀랍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처럼 명쾌하고 실천 가능한 차 무역 주장은 누구에게서도 나온 적이 없다. 차 무역에 관한 논의는 우리에게서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나, 개화기 때 원세개 같은 중국인들의 입에서 늘 먼저 거론되었다. 이 좋은 자산을 왜 그저 썩히느냐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덕리의 이 참신한 주장도 한낱 유배 죄인의 반향 없는 메아리로 흩어지고 말았다. 그의 차에 대한 이해는 지금에 와서 보면 충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차를 만들어 마셨고, 차의 효능과 가치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_「서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