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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영국사

앙드레 모루아 (지은이), 신용석 (옮긴이)
  |  
김영사
2013-06-11
  |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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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책 정보

· 제목 : 영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영국사
· ISBN : 9788934963356
· 쪽수 : 752쪽

책 소개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평론가, 역사가인 앙드레 모루아가 영국사의 정치, 문화, 사회상을 객관적인 시각과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그려낸 20세기 역사서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목차

Ⅰ 영국의 기원
1. 영국의 위치
2. 인류 최초의 흔적
3. 켈트인
4. 로마인에 의한 정복
5. 로마의 후퇴
6. 앵글, 주트, 색슨
7. 앵글로 색슨인의 개종
8. 그리스도교와 게르만 정신
9. 덴마크의 침략과 그 영향
10. 알프레드 왕에서 크누트 왕까지
11. 노르만 정복

Ⅱ 프랑스계 왕조
1. 노르만 정복의 성과: 중앙정부
2. 노르만 정복의 영향: 봉건제도와 경제생활
3. 정복왕의 왕자들
4. 무정부상태-헨리 2세-토머스 베켓
5. 통치자로서의 헨리 2세: 사법과 경찰
6. 헨리 2세의 왕자들
7. 대헌장
8. 도시와 동업조합
9. 대학
10. 탁발 수도회
11. 헨리 3세와 시몽 드 몽포르

Ⅲ 봉건제도의 성쇠
1. 에드워드 1세의 법제 개정과 내정
2. 의회의 기원과 성장
3. 에드워드 1세와 에드워드 2세
4. 백년전쟁(전기)
5. 흑사병과 그 결과
6. 최초의 자본가
7. 교회 내의 무질서
8. 농민 폭동
9. 백년전쟁(후기)
10. 장미전쟁
11. 중세의 종말

Ⅳ 튜더 왕조 또는 군주정치의 승리
1. 헨리 7세
2. 튜더 시대의 지방제도
3. 영국의 종교개혁가들
4. 헨리 8세
5. 교회의 분리와 박해
6. 프로테스탄트의 반동
7. 메리 튜더와 가톨릭의 반동
8. 엘리자베스와 국교 화해
9. 엘리자베스와 해양
10.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
11.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12. 한 시대의 종말

Ⅴ 의회의 승리
1. 제임스 1세와 종교문제
2. 국왕과 의회의 갈등
3. 버킹엄과 찰스 1세
4. 의회 없는 국왕
5. 장기의회
6. 제1차 내란
7. 군대와 의회의 대결
8. 크롬웰의 집권
9. 청교도의 항구적 영향
10. 왕정복고
11. 제임스 2세와 1688년 혁명
12. 왕정복고 정신

Ⅵ 군주제와 과두제
1. 왕위에 오른 네덜란드인
2. 앤 여왕의 치세
3. 월폴의 시대
4. 1700~1750년의 정신
5. 피트의 시대
6. 조지 3세와 아메리카 식민지
7.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8.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9. 감성혁명
10. 결론: 유혈 충돌 없이 난국을 극복한 영국

Ⅶ 귀족정치에서 민주정치로
1. 전후시대
2. 1832년 선거법의 개정
3. 자유무역의 성공
4. 파머스턴의 대외정책
5. 빅토리아 치하의 영국
6.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
7. 19세기의 대영제국
8. 자유주의의 종말
9. 무장평화
10. 제1차 세계대전
1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2. 제2차 세계대전
1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4. 영국, 유럽에 합류하다
15. 결론: 영국이 걸어온 길

저자소개

앙드레 모루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전기작가, 역사가. 본명은 에밀 헤르조그(Emile Herzog). 1885년 프랑스 엘뵈프에서 태어나 루앙에서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대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로 손꼽히는 알랭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역사서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7년 《영국사》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1943년 《미국사》를 펴내며 역사가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책도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인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를 거듭했지만 끈질긴 설득과 지식인으로서의 책무, 프랑스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을 시작한다. 마침내 1947년 모루아 특유의 객관성과 냉철함, 통찰력이 빛나는 수작 《프랑스사》가 출간된다. 그는 《풍토》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특유의 명쾌한 강의로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셸리의 일생》, 《바이런》, 《마르셀 프루스트를 찾아서》, 《발자크》 등을 내놓으며 전기작가로서도 높은 명성을 얻었다. 또한 《애정과 관습》, 《어느 미지의 여인에게 보낸 편지》, 《사랑의 일곱 가지 형태》, 《여성의 사랑에 대하여》 등 역사와 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통해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명료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안에 담아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미국으로의 망명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창작활동을 계속한 그는, 1967년 10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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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인천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화학과와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7대학교에서 석사과정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사 과정을 수료했다. 조선일보사 파리 특파원을 두 차례 역임한 후 국제부장과 사회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과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하고 프랑스 문화훈장과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중견 언론인단체 관훈클럽 총무,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위원장과 대외협력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과 (주)상미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유럽합중국」, 「현장에서 본 프랑스의 교육」, 「권력이 통하지 않는 사회」, 「지금 누구에게 돌을 던질때인가」 와 역서로 「영국사」, 「미국사」, 「프랑스」 사 3부작이 있다. 구한국 우편역사자료와 구한국 시대의 외국신문 화보와 그림.사진.엽서 수집가로 국제전에 수차례 출품하여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도 10여회 전시회를 개최하여 언론학계와 인천 향토사 연구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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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명백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의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중세문명도 서서히 사멸하게 되었다. 캑스턴의 인쇄기가 수도원의 사자생寫字生과 바뀌고 영어가 라틴어와 경쟁을 하고 도시의 공민은 부유해지고 촌락의 기사는 빈한해지며 대포가 성벽에 구멍을 내고 상인은 동업조합으로부터, 신자는 성직자로부터, 농노는 영주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15세기 말은 틀림없이 하나의 명확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수세기 동안 위세를 자랑하던 하나의 사회가 몰락하고 또 하나의 사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어떠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485년의 영국은 행복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작인과 장인들이 부유해지고 국민의 정신활동이 성숙한 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영국에 없는 것은 단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강력한 정부였다. 모든 예상과는 반대로 이 젊은 헨리 튜더와 그의 후손들은 강력한 정부를 영국에 정착시키게 될 것이었다.


영국인으로서는 프랑스 혁명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들은 혁명의 성격과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유혈의 참변을 예상하지 못했다. 영국에는 지주귀족과 농민계급, 궁정귀족과 상인계급 사이에 프랑스의 엄격한 계급차별이 조성해놓은 심각한 대립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에도 계급적인 불평등이 적지 않았으나 재능에 따라 출세하는 길도 열려 있었고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했다. 1789~1792년 사이에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도 심한 혼란을 겪지 않고 영국과 비슷한 제도를 갖게 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폭스는 바스티유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사건을 세계 역사상 가장 중대하고 통쾌한 사건이라면서 환영했고 많은 사상가와 작가들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트까지도 혁명을 반대하는 유럽의 군주들과 동조하기를 거부했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혁명을 지원한 것 같은 흔적마저 있었다. 1789년 당시의 피트는 토리당 지배하의 일반국민처럼 경쟁 상대인 프랑스가 국내분쟁으로 약화되어 간신히 소생될 것임으로 영국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버크는 프랑스의 군사력이 오랫동안 질식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소감을 기록했다. 이것은 발미의 전투가 있기 수개월 전 보나파르트가 궐기하기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1792년에 피트는 영국 함대의 상비 병력을 2,000명으로 감원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역사상 유럽의 정세로 보아 15년간의 평화를 기대한다는 것이 현재보다도 확실한 시기는 없다.”
예언한다는 것은 예언자에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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