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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은이), 신용석 (옮긴이)
  |  
김영사
2016-06-10
  |  
3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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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책 정보

· 제목 : 프랑스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프랑스사
· ISBN : 9788934974741
· 쪽수 : 848쪽

책 소개

프랑스 지성 앙드레 모루아가 자국의 역사를 대문호적 통찰과 섬세한 문학적 필치로 풀어낸 역사서술의 완결판. 절대 권력의 왕정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의 국민국가로 발돋움한 프랑스의 고귀한 힘과 정신을 한 권으로 만난다.

목차

해제

서문

제1장 프랑스의 기원에서 중세기까지

1. 골 지방의 로마화

2. 갈로-로마인과 야만족의 혼합

3.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제국 재건

4. 봉건제도의 발전과 카페 왕조 창건

5. 왕조의 영토 확장과 프랑스 왕국의 건립

6. 루이 9세와 4세 시대의 치적

7. 중세기 프랑스 문명의 형성

8. 백년전쟁 Ⅰ

9. 백년전쟁 II

10. 백년전쟁 이후 프랑스의 부흥

11. 14~15세기에 이뤄진 중세기에서 근세기로의 이행

12. 중세기에 형성된 프랑스의 항구적 특징

제2장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1. 문예부흥의 시발점

2. 이탈리아 원정의 결과

3. 게르만 세계와의 투쟁

4. 프랑수아 1세와 앙리 2세 시대의 풍조

5. 정치적 색채를 띤 종교개혁 운동

6. 종교전쟁에 따른 프랑스의 분열과 황폐

7. 앙리 4세의 프랑스 재통일

8. 앙리 4세 이후의 통치

9.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에 따른 프랑스의 변화

제3장 절대왕정의 시대

1. 앙리 4세의 과업을 강화한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2. 하나의 혁명이던 프롱드 난

3.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4. 루이 14세 왕정의 번영과 쇠락

5. 섭정으로 약화된 왕정

6. 루이 15세의 국위 손상

7. 18세기의 정계와 계몽주의의 영향

8. 루이 16세의 개혁 실패

9. 혁명을 맞은 1789년의 정세

제4장 프랑스 혁명

1. 혁명의 시작

2. 국민의회의 헌법제정

3. 왕정의 멸망

4. 국민공회와 공안위원회

5. 공포정치에 대한 열월의 반동

6. 총재부의 통령정치와 제정까지

7. 제1통령의 프랑스 재통합

8. 황제의 유럽 정복

9. 유럽제국의 붕괴

10. 황제의 왕정 전복

11. 혁명과 제정을 통한 프랑스의 변모

제5장 체제 동요의 시대에서 혼란의 시대로

1. 단명에 그친 왕정복고

2. 7월 왕정의 몰락

3. 1815~1848년 프랑스의 사상과 의식

4. 단명한 제2공화국

5. 전제주의적 제2제정 시기

6. 자유주의적 제정과 1870년 전쟁

7. 낭만주의의 쇠퇴

8. 결론: 체제 동요 이후의 프랑스

제6장 제3공화국

1. 국방정부

2. 공화국 수립

3. 공화주의자의 공화국

4. 공화국을 흔드는 세 가지 위기

5.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분쟁

6. 1914년까지의 전성기

7.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

8. 1919~1939년에 소멸된 승리

9. 제2차 세계대전 Ⅰ

10.제2차 세계대전 II

11. 해방 후의 프랑스

제7장 제4, 5공화국

1. 제4공화국의 성립과 종말

2. 제5공화국 출범

3. 결론: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길

부록: 프랑스 역대 왕조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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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앙드레 모루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전기작가, 역사가. 본명은 에밀 헤르조그(Emile Herzog). 1885년 프랑스 엘뵈프에서 태어나 루앙에서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대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로 손꼽히는 알랭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역사서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7년 《영국사》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1943년 《미국사》를 펴내며 역사가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책도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인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를 거듭했지만 끈질긴 설득과 지식인으로서의 책무, 프랑스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을 시작한다. 마침내 1947년 모루아 특유의 객관성과 냉철함, 통찰력이 빛나는 수작 《프랑스사》가 출간된다. 그는 《풍토》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특유의 명쾌한 강의로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셸리의 일생》, 《바이런》, 《마르셀 프루스트를 찾아서》, 《발자크》 등을 내놓으며 전기작가로서도 높은 명성을 얻었다. 또한 《애정과 관습》, 《어느 미지의 여인에게 보낸 편지》, 《사랑의 일곱 가지 형태》, 《여성의 사랑에 대하여》 등 역사와 문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통해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명료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안에 담아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미국으로의 망명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창작활동을 계속한 그는, 1967년 10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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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인천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화학과와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7대학교에서 석사과정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사 과정을 수료했다. 조선일보사 파리 특파원을 두 차례 역임한 후 국제부장과 사회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과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하고 프랑스 문화훈장과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중견 언론인단체 관훈클럽 총무,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치위원장과 대외협력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과 (주)상미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유럽합중국」, 「현장에서 본 프랑스의 교육」, 「권력이 통하지 않는 사회」, 「지금 누구에게 돌을 던질때인가」 와 역서로 「영국사」, 「미국사」, 「프랑스」 사 3부작이 있다. 구한국 우편역사자료와 구한국 시대의 외국신문 화보와 그림.사진.엽서 수집가로 국제전에 수차례 출품하여 수상했으며 국내에서도 10여회 전시회를 개최하여 언론학계와 인천 향토사 연구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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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랑스 인종이란 것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 현재 프랑스를 구성하는 지역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라 침략을 마무리하거나 침략자가 정착하는 곳이었다. 기원전 10세기경 알프스 산중에는 리구리아인, 피레네 산중에는 바스크인의 선조로 추정되는 이베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지중해를 건넌 페니키아인의 선원들도 와 있었다. 당시 셈족 상인들이 진주, 토기, 화려한 색깔의 직물 및 노예를 교역했다. 그 뒤를 이어 그리스 항해자들이 해안지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동방 문명, 종교사상, 신비주의, 화폐, 올리브 재배법, 비교적 완전한 언어 등을 들여왔다. 그리고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그리스인이 건설한 식민 도시 니스, 아그데, 앙티브 등이 남프랑스 해안지대에 산재했다. 프로방스 지방의 풍물은 그리스인의 풍습으로 바뀌었다. _제1장 <프랑스의 기원에서 중세까지>에서

중세기는 고대 문명과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있었으나 그렇다고 참담한 암흑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세기 문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인간에게 도덕적, 사회적 평등을 부여하는 한편 서유럽의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았다. 프랑스 중세기 문명의 독창성은 지중해적 요소와 야만족의 요소를 융합해 새롭게 빚어낸 데 있었다. 프랑스 문명은 주변 문명이다. 인류의 새로운 개화 현상은 여러 가지 영향을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지역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일찍이 10세기에 태동해 12세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 사상과 예술은 전 유럽에 널리 전파될 기세였다. _제1장 <프랑스의 기원에서 중세까지>에서

프랑스의 문예부흥은 하나의 정신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혁명이 스스로 고대 철학과 스콜라 철학 간의 사상적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믿는 동안 사실은 그 속에 국가주의, 프랑스 혁명, 근대 과학, 심지어 세계대전의 싹까지 잉태되고 있었다. (…) 문예부흥에 따르는 지적혁명은 종교개혁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문예부흥의 기본적인 본질은 계시된 진리라는 관념과의 절연이었다. 사실은 신교도 계시를 전혀 부인하지 않았고 단지 계시의 한계를 성서의 권위로 제한하려 했을 뿐이다. (…)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은 실제로는 대립하는 운동이었다. 나중에 프랑스의 신교도는 기타 소수파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이었고 문예부흥의 조류와 사실상 합류했다. _제2장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에베르와 당통이 죽자 로베스피에르가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다. 지나치게 힘을 얻은 그는 자기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했고 계속해서 혁명재판소에 보다 많은 사람의 목을 요구했다. 로베스피에르는 전능했으나 전도가 막연했고 감각조차 상실한 상태였다. 목월 22일에 발표된 법령이 개회 중에도 의원의 불가침권을 박탈해 생명을 위협하자 가장 겁이 많은 의원들도 이제 국가를 위해 행사하지 않던 용기를 발휘했다. (…)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되었음을 알게 된 파리 코뮌은 교도소에 명령해 로베스피에르의 수감을 거부하고 시청으로 연행하게 했다. 다음 날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일당과 함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단두대에 올랐다. 군중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_제4장 <프랑스 혁명>

1815~1870년 프랑스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정치체제가 불안정하고 다양했다는 점이다. 권력이란 피통치자 대다수의 지지 없이는 권세를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다. 지지가 없어지는 순간 무정부 상태나 민심 동요가 일어나고 심하면 내란이 발생한다. 대혁명은 국왕에게서 존엄성을 박탈했고 그 후부터 프랑스에서는 정통성의 존재가 모호해졌다. 일부에서는 정통성이 부르봉 가문의 속성이라 믿었고 1870년에도 앙리 5세를 왕위에 추대하려고 완강히 고집하는 왕정주의자가 적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샤를 10세의 그림자는 왕가의 존엄성을 흐려놓았다. 파리의 민중은 부르봉 가문의 국왕을 두 번이나 타도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공화주의자들은 이 가문이 반동과 복수를 벼르는 당파의 수령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분가는 상속권뿐 아니라 국민의 지지마저 잃어 아무런 정통성이 없었다. _제5장 <체제 동요의 시대에서 혼란의 시대로>

10월 5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 선출을 광범위한 선거인단에 위임했다. 이제 국가원수 선출을 의회가 아니라 프랑스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선거인이 담당한 것이다. (…) 프랑스 국민은 그들이 되찾은 자신감이 외국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지했다. 곧 자본이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과거의 음울하던 정세는 일변했다. 그동안 프랑스 통화는 외국의 불신을 받았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외화보유고가 20억 달러에 달했고 새로운 차관을 요청하는 대신 과거의 차관을 상환할 정도가 되었다. 경제적 지위가 강화됨에 따라 프랑스는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을 통합하는 구상을 지지했고 경제공동체와 프랑스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강조하는 대서양공동체 등의 결성에도 찬성했다. _제7장 <제 4,5 공화국>


1. 세계에서 프랑스의 페리고르 지방을 흐르는 베제르 강 유역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곳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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