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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메리카사 > 미국/캐나다사
· ISBN : 9788934972198
· 쪽수 : 776쪽
책 소개
목차
해제
서문
제1장 유럽인의 아메리카 발견
1. 토지와 주민
2. 인디언
3. 아메리카의 스페인인
4. 아메리카의 영국인Ⅰ
5. 아메리카의 영국인Ⅱ
6. 아메리카의 프랑스인
7. 전쟁시대
8. 식민지 생활의 실태
9. 식민지의 경제 상태
10. 결론: 본국과 식민지의 관계
제2장 기로에 서다
1. 전후의 제반 문제들
2. 제2회전
3. 독립을 향하여
4. 독립선언
5. 군사행동
6. 프랑스의 참전
7. 로샹보와 승리
8. 평화공작
9. 결론: 독립전쟁의 의의
제3장 국가의 탄생
1. 중대한 시기
2. 헌법
3. 정당의 탄생
4. 프랑스 대혁명
5. 연방주의의 쇠퇴
6. 제퍼슨 시대
7. 패전의 고통
8. 화평시대
9. 불화시대
10. 변모
11. 결론: 새로운 시대의 도래
제4장 성장기에 따르는 고통
1. 앤드루 잭슨의 시정
2. 작은 마술사의 영광과 몰락
3. 남부의 특수제도
4. 천명의 계시
5. 최후의 타협
6. 타협의 실패
7. 남북전쟁을 향하여
8. 남북전쟁Ⅰ
9. 남북전쟁Ⅱ
10. 결론: 연방의 승리와 사회 발전
제5장 유복한 시대
1. 재건
2. 새로운 남부
3. 대륙의 개방
4. 그랜트의 시정
5. 부패와 무질서
6.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그의 시대
7. 황금 십자가
8. 세계무대에 진입한 아메리카
9. 결론: 산업국가로의 등장
제6장 세계적인 강국
1. 시어도어 루스벨트
2. 우드로 윌슨의 등장
3. 중립
4. 제1차 세계대전
5. 평화조약
6. 행동과 반동
7. 승리 없는 승리
8. 새로운 아메리카
9. 결론: 아메리카의 안정과 평화
부록_ 미국 역대 대통령과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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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유럽인은 신대륙에서 문명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분명 같은 인간인 여러 부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원주민을 인디언(Indians)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지리학자들이 인도가 대서양 서안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색 피부, 높은 광대뼈, 거칠고 검은 머리털이라는 특징을 보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인도인이 아니라 몽고족(Mongols)과 비슷했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의 기원이 아메리카 대륙일까? 신대륙에서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고대 인류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추정은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 인디언이 아시아의 어느 지방에서 왔든 이미 먼 옛날에 세대 단절이 이뤄졌고 아메리카 문명은 수천 년간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인디언은 쟁기도 없이 토산 농산물인 옥수수, 강낭콩, 감자, 카사바, 카카오, 담배, 목화 등을 재배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인디언은 석재로 사원과 궁전을 건축했고 다른 지역 인디언은 나무껍질 오두막집, 들소가죽 천막, 목조 오두막집, 흙벽돌집 등에서 살았다.
_p23~25 〈인디언〉 중에서
최초의 식민지 제임스타운(Jamestown)의 참의회가 선출한 의장은 에드워드 마리아 윙필드였다. 하지만 이 작은 식민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열여섯 살 때부터 모험을 즐긴 명문가 출신의 청년 선장 존 스미스였다. 햇볕에 그을린 아름다운 용모에 끝을 뾰족하게 깎은 검은 수염을 한 존 스미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오랜 궁중신하였다. 물론 몇몇 사람은 그를 시기하고 미워했지만 원주민을 달래거나 그들에게 식량을 구할 필요가 있을 때면 누구나 그를 찾았다. 처음에 인디언은 이들의 작은 함대에 빗발 같은 화살을 퍼부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리구슬과 털 담요를 받고 옥수수를 내놓았다. 하지만 인디언의 감정은 매우 변덕스러웠다. 때론 친구처럼 제임스타운에 와서 물건을 받고 답례도 하다가 또 때론 도끼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려 배에 있는 대포를 쏘아야 할 경우도 있었다.함대를 이끈 뉴포드 대장은 다른 임무를 위해 함대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갔고 제임스타운에는 이민자들만 남았다.
_p51~52〈아메리카의 영국인Ⅰ〉 중에서
영국 식민지의 반란을 주시하던 프랑스는 버고인 장군의 항복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는 수년 전 파리조약으로 영국에 굴복한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자부심 강한 국가가 도저히 견뎌내기 힘든 한 조항을 설정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것은 프랑스 영토 내에 있는 케르크 요새의 방어시설을 철거하고 그곳에 영국 감독관을 주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영국을 약화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보복 감정은 궁정이나 국민보다 대신과 군인들에게 더 강렬했다. 그 무렵 지식인들은 영국에 심취해 있었고 특히 볼테르와 몽테스키외가 영국의 사상을 널리 퍼트리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런던으로 건너가 사상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려 애썼다. 르 투르뇌르가 번역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열광적인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양국이 우호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양국 정부는 전략적 적개심을 품고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영국은 눈에 띄지 않게 코르시카(지중해 북부의 프랑스령 섬)의 반란을 선동했고, 프랑스의 재상 슈아죌은 런던에 폭동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기쁨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_p222~223 〈프랑스의 참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