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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북유럽소설
· ISBN : 9788935668038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8-10-29
책 소개
목차
제1장 살갗 13
제2장 흉터 125
메모 329
옮긴이의 말 331
리뷰
책속에서
나도 벌거벗고 있는 내 꼴이 우습다는 건 잘 안다.
나는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짝을 찾았다. 이 말은 곧 집에서 규칙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매일 저녁 여인의 육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나는 그 상황에 빨리 익숙해졌다. 아기를 낳은 이후 구드룬은 그녀의 몸에서 나의 접근이 허용되는 부분을 정해놓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양팔로 그녀의 복부를 얼싸안을 수 없게 되었고, 제왕절개 수술 자국이 난 부분도 만질 수 없게 되었다.
“네 손을 여기 대봐. 아니 그렇게 말고. 그렇게 하고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숨도 너무 깊게 쉬지 마.”
구드룬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구드룬의 양 어깨를 끌어안거나 내 손을 그녀의 흉곽, 그러니까 젖가슴 바로 아래쪽에 얹고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금지 사항을 잊어버리고는, 맨살을 더듬어 길을 찾기라도 하듯이, 어느새 손을 복부 아래쪽으로 가져가곤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구드룬이 물었다.
“아무것도.”
“그럼 내 배 건드리지 마.”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후, 구드룬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님페아는 당신 딸이 아니야. 우리가 이혼하려는 마당이니 만큼, 지금이라도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첫 번째 데이트에서 고통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는 당신 말고는 본 적이 없어. 당신이 우리는 모두 죽어, 라고 말했을 때, 난 그게 인생을 시작하는 데 괜찮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어. 그래서 바로 그 순간에 님페아는 당신 딸이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일기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에는 날짜가 빠져 있다.
나는 살덩어리다.
그 문장을 끝으로 나는 현실에 대해 논평하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나에게 살덩어리는 머리 아래쪽에 있는 모든 부분을 가리킨다. 살덩어리는 삶에서 제일 중요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때─내가 태어났고, 나의 심장과 허파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까─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나는 나의 살덩어리에서 비롯된 살덩어리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며, 머지않아 내 몸은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엄마가 세상의 이치에 대해 강의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나스, 너 그거 아니, 위대한 역사는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시작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