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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200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23-07-03
책 소개
목차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만년필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아,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만 벽에 부딪히고 말았주. 글을 쓸 수가 없었어. 먼저 그 참사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라. 아아, 영미야, 창근아, 이 할아비는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 사건 이후론 모든 것이 헛것으로 만 보이는 거다.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그건 당최 무서워서 엄두가 나질 않았던 거다…… 그래, 오냐오냐, 이제 그 얘길 해보자! 영미야, 창근아, 이 만년필을 줄 테니 받아라. 정두길 선생이 나한테 이 만년필을 줄 때는 내가 살아남아서 그 참사에 대해 써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 나를 대신해서 너네들이 해보거라, 내 자세히 말할 테니. 자, 그럼 그 얘기를 해보자! 모진 세월 내 가슴을 썩여온 그 얘기를
해보자. 그 얘기를 내가 얼매나 말하고 싶었던고!”
포구 밖 바다에 잠시 정박한 군대환에 거룻배 네댓척이 오고 가며 분주히 승객과 화물을 실어날랐다. 낡은 트렁크와 고리짝, 륙색, 보따리와 이불짐 들이었다. 떠나는 청년들의 짐 속에는 무명천에 곱게 싼 고향 땅의 흙 한줌도 들어 있었다. 그들은 항해 중에 그 흙냄새를 맡으면서 심한 뱃멀미를 견뎌냈고, 낯설고 서러운 타국 땅 노동판에 떨어져 애옥살이를 할 때도 그 한줌의 흙은 버리지 않고 부적처럼 방 한구석 짐짝 속에 보관했다. 떠난 자들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 그 땅은 그들 자신이었고 그들은 그 땅의 일부, 한줌 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