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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제주도우다 3](/img_thumb2/9788936439408.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408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3-09-27
책 소개
목차
저자소개
책속에서
집단 총살 뒤, 그 떼주검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오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 한 청년이 떼주검 가운데서 살아나왔다. 일차 사살 후 확인 사살까지 했음에도, 총알을 맞아 턱이 부서졌지만 용케 목숨만은 건졌다. 계속 시신 더미 속에 있다가 밤이 되어 어두워지자 자기 몸 위에 엎어진 시신을 밀어내고 일어났다. 자기 피에 남의 피까지 뒤집어써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로 뱅뱅 둘린 섬이라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고, 산에 다시 올라가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집에 숨어 있어도 오래지 않아 발각될 터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거라곤 군 주둔소의 불빛뿐이었다. 너무도 큰 충격에 넋이 나간 그가 허청허청 군 주둔소 천막으로 걸어갔다.
“나 살았수다. 날 죽여도 안 죽어졌으니, 다시 죽여줍서. 여기서 죽이든지 그 밭에 데려가 죽이든지, 날 다시 죽여줍서!”
“그래, 우리가 죽으면 이 조그만 굴은 우리 두 사람의 합장묘가 되는 거라.”
“아아, 그래, 합장묘!”
“대림아, 이 굴을 우리의 무덤이 아니라 대지의 자궁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대지의 자궁 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따뜻한 자궁! 아아, 따뜻하고 아늑하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두길은 두 무릎을 안고 가슴팍으로 끌어당겨 자궁 속의 태아처럼 몸을 말았다.
“대지의 자궁! 멋진 말이네. 역시 시인은 달라.”
“우리는 죽지만 다시 태어날 거다. 대지의 자궁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니까.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러나 어머니 대지는 죽은 자식들을 끌어안을 거여. 땅속 혈맥들이 고동치는 소리가 지금 내 귀에 들려. 대지가 자기의 자궁 안으로 죽은 자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 낭자한 피와 총성과 비명도, 죽창, 철창에 묻은 살점도 대지는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아, 그리고 마침내 그 자궁에서 새 생명들은 솟아나 대지 위에 다시 번성할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