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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460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3-12-29
책 소개
목차
폴이라 불리는 명준
미친개의 처분에 관한 보고서
dmswl
은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호수
쓰러질 듯 말 듯 도도하게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해설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할머니는 신문에 실린 조그만 사진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그 남자라고 말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알파벳까지 외운 첫번째 영어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신문과 잡지에서 그에 관한 기사나 사진을 발견하면 스크랩을 했고,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뜻을 찾아내 영문 옆에 한글로 적어 넣었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그를 만나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소년의 엄마는 가장의 부재가 남긴 재정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의 상점을 그만두고 급료가 더 높은 일을 찾았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쩌면 앤디 워홀이 그곳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폴이라 불리는 명준」
“햇빛로 32단지 주민들에게 아래와 같은 사실을 통지함. 하나, 햇빛로 32단지에서 기르는 개들 중에 미친개가 있으니 찾아내서 제거하기 바람. 둘, 미친개를 식별할 수 있는 건 햇빛로 32단지에 거주 중인 십대 청소년들뿐임. 단, 그들도 다른 세대의 개만 식별 가능함. 셋, 그들은 타인의 개에 대한 정보를 같은 세대의 구성원은 물론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됨, 법률적으로 타인의 재산권과 명예에 대한 훼손 행위가 될 소지가 있음. 넷, 미친개의 제거는 오직 미친개의 주인만 할 수 있음. 이를 어길 경우 법률적 분쟁의 여지가 있음. 다섯, 빠른 시일 내에 작업에 착수하기 바람. 만약 상황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을 경우 적절한 행정조치가 있을 예정임. 본 통지문은 전문가들의 엄격한 감수와 충분한 법적 검토를 거친 후 작성된 것임을 보증함. 작성 및 발신, 국가관리국.”
―「미친개의 처분에 관한 보고서」
군 제대 후 십년을 최대한 짧게 요약하려 했지만 쉽지 않다. 차라리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 지랄을 하더니 결국 이 꼴이구나.”
종일 잠만 자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어중간한 오후에 일어나 찬밥을 물에 말아 휘젓고 있는 내 앞에 달걀부침을 내려놓으며 엄마가 한 말이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다가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듯 책을 펼쳐 들었다. 엄마는 동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모임의 열성 회원이어서 매달 한권씩 책을 읽고 감상을 발표해야만 했다. 식탁에 머리를 처박은 채 밥을 퍼 넣다가 엄마에게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책의 제목을 말했다. 나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 손에 있던 책을 낚아채서 표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신미영 소설집 『은하』.
―「은하」